얼마 전, 근처 목욕탕에 갔습니다. 사우나에 앉아 있던 중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여럿 들어와 천진난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용한 사우나실에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죠. 그중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 바나나우유랑 삶은 달걀 먹고 싶다.”
이어지는 말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빠랑 목욕탕에 가면 꼭 바나나우유랑 삶은 달걀을 사주셨는데, 안 사주시면 그렇게 서운했어.”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만 그런 추억을 간직한 줄 알았는데, 이 단순한 조합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나도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났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는 ‘도라지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꼭 아들 셋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목욕탕 가는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억센 손으로 때를 밀어주실 때마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 시간이 싫어서 목욕탕에 가기 꺼려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따라나섰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목욕 후에 기다리고 있던 바나나우유와 삶은 달걀 때문이었습니다.
그 달콤한 보상을 떠올리며 어린 나의 고통을 참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의 삼 형제는 이제 모두 중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자주 목욕탕에 가게 된 우리들은, 목욕탕에 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따뜻한 물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목욕탕의 추억이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어쩌면 유전자처럼 전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사진을 자주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사진은 적지만, 그때의 기억은 사진보다도 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목욕탕의 습기, 아버지의 힘찬 손길, 그리고 바나나우유의 시원한 맛—이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추억의 서랍장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달 동안 쌓인 자식에 대한 미안함을 때를 밀어주며 목욕탕에서 벗겨내셨습니다.
때를 밀어주시던 손길에는 자식들을 향한 애정이, 바나나우유 한 병에는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었겠지요.
그 기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식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쌓인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아직 자녀가 어린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각으로 기억되는 추억을 자녀들과 함께 쌓아보세요. 촉각, 시각, 미각이 어우러진 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자녀들은 그 기억의 사진을 통해 우리를 추억하며 미소 짓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도라지 목욕탕.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그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진 추억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나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의 유산이 되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