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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Oct 08. 2021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어떨까?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이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누리는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건강한 자존감은 물론 감성과 남다른 창의력, 공감 능력 등 부모로서 주고 싶은 ‘모든 좋은 것’들이 몽땅 내 아이에게 자연스레 덧입혀질 것 같았다. 그래서 비록 일 년이지만 우린 제주 땅을 디디며 살아보았다. 자연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 그 힘을 제주에 살면서 아이들을 통해 온전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제주 아이들은 역시 순수했다. 원래 섬 지역의 특성상 제주에는 괸당 문화°가 강하다. 제주어를 주로 사용하는 학교에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잠시 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등교 첫날부터 육지에서 전학온 아이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기꺼이 친구가 돼 주었다. 딸은 매일 매일 새 친구들 사귀는 재미에 흠뻑 빠져 지냈다. 학기 초에는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내게 조르고 졸라 피아노 학원에도 등록했다. 주말에도 약속을 잡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았다. 급작스런 아이의 성장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줄넘기와 훌라후프를 돌리고, 놀이터에서 시장놀이를 하고 노는 순수한 소녀들은 팔랑 나비들처럼 사랑스러웠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톡톡히 붙인 아이는 이젠 제주어까지 배워 와서는 나를 열심히 가르쳤다.

 “엄마, 우리 반은 모두 제주어를 써요. ‘지금 몇 신(시야)?, 너 연필 몇 자루 인(있니)? 밥 먹언(먹었어)?’ 쉽죠? 엄마도 제주에 왔으니까 제주어 써야죠! 자 따라해 보세요”

 “지금 몇 시에요잉? 연필 몇자루용?”

  어설픈 내 제주어에 아이는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제주는 청소년들도 순수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많지 않기에 고입부터 문턱이 높다. 중학교 내신 50%에 안에 들어가야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이 가능하다. 때문에 학구열이 있는 가정이라면 적어도 초등 고학년부터는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 한다. 학원가가 잘 형성된 노형동, 아라동, 삼화지구의 집값이 비싼 이유이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그토록 흔한 당구장과 PC방이 거의 없다. 독서실도 없어서 삼화지구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귀가를 해야 하지만, 여기 청소년들은 버스타기 귀찮아서라도 담배연기 가득한 당구장과 PC방을 즐겨 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제주에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물론 이들도 여느 한국 청소년들처럼 학업 경쟁과 벅찬 스트레스를 어깨에 무겁게 지고 있다. 아니 이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은 이미 고입부터 시작한다. 아이돌에 열광하며, 화려한 도시의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이들에게선 표현하기 힘든 맑은 빛이 흘러난다. 제주의 깊고 파란 하늘과 희디흰 조각 구름을 닮은 투명한 순수의 기운이 몽글몽글 서려 있다.     

 제주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연을 보고 누리고 느끼면서 그 ‘순수’를 몸으로 체득했으리라. 축구장 3개는 족히 합쳐 놓은 것 같은 광활한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뻥하고 날리며 속시원한 골을 수차례 넣었으리라. 

후덥지근한 가습기를 틀어 놓은 듯, 덥고 습한 여름에는 자연스레 웃통을 벗은 채 시원한 바다에 풍덩 뛰어들며 열기를 시켰으리라. 


아름다운 한라산을 가족과 함께 때론 친구들과 등반하며 철마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인내심을 길렀으리라. 

자연스레 생긴 한라산 중턱에서 눈썰매를 타며 찬란한 눈꽃처럼 반짝이는 유년을 보냈으리라. 제주에는 삶의 여유와 독특한 개성이 넘쳐나는 감성 카페과 관광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친구들과 삼삼오오 무리지어 제주의 핫플레이스를 다니며 푸른 꿈을 꾸었으리라.      

 제주의 자연은 그 속에 깃든 문화와 사람까지도 순수하고, 교유의 빛깔대로 다채롭고, 아름답게 빚어내는 힘이 있다. 이것은 PC방으로 제한된 인공 놀이터와는 비교될 수 없는 행복한 환경이다. 그러니 범접할 수 없는 ‘영혼의 투명도’는 어찌할 제주 아이들만의 특권인 것이다.  

    

 난 순수를 언제나 소망한다. 순수한 아이들을 사랑한다. 푸르고 맑은 자연을 닮고 싶다. 늘 곁에 두고 싶다.   

“아, 제주도로 이주해서, 섬아즈망 선생님 하고 싶어라! 여보, 어떻게 좀 안 될까?”     


낭만과 감성이 흐르는 제주 카페들


하늘 반, 운동장 반, 광활한 함덕초 운동장

 °괸당 문화: 혈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섬지역의 특이한 정서


푸르른 나무 놀이터, 함덕병성유치원
신나는 하굣길, 아이들과 제주 일 년
예술의 섬 제주에서 미술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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