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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Jan 13. 2022

통창문 바다뷰, 선물같은 제주집

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통창문 바다뷰, 선물같은 제주집
아이와 새벽 해안가 조깅

통창문으로 함덕 바다가 환히 보였다. 환상적인 바다와 하늘의 자태는 매번 독특하게 아름다웠다. 햇살이 반짝이는 아침, 커튼을 열면 층층이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와아!”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비 갠 직후의 하늘 풍경은 또 어떤가! 빛살이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바다를 환히 비추면, 광활한 왕 무지개가 서우봉의 능선을 따라 떠올랐다. 이처럼 아름다운 함덕 바다 앞에 터를 잡은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창밖의 수평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은 매일 내 눈을 치료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걸어서 해변에 갈 수 있다며 좋아했다. 하원하면 바닷가에서 종일 모래 놀이를 하다가 핑크빛 석양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는 키 큰 야자수가 줄줄이 서 있었고, 넓은 잔디밭도 펼쳐져 있었다. 하와이 어느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는 법이다. 이렇게나 좋은 바다 뷰 통창문 때문에 불편할 점도 있었다. 외풍이 심해서 보일러를 틀어도 방에는 자주 한기가 돌았다. 또 한여름에는 직사광선이 강해서 에어컨이 무색할 정도로 방안은 후끈거렸다. 바닷가 앞이라 습도가 높았기에 후덥지근한 수증기는 그대로 집안 곳곳에 곰팡이로 내려앉았다. 사실, 제주 집에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따로 있었다. 그건 아파트 화장실 배관을 타고 들어오는 담배 연기였다. 깨끗한 공기가 그리워서 제주에 왔건만 아, 생각지도 못했던 화장실 담배 연기라니.....처음 한두 달 동안에는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야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 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창밖의 바다를 보며 위안을 얻을 것인가? 담배 연기를 피해 이사를 갈 것인가? 만족(滿足)의 한자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가득할 만’과 ‘발 족’의 두 한자가 만나 한 단어를 이루고 있었다. 만족은 넉넉한 물로 몸 전체를 흠뻑 씻는 것이 아닌 물이 딱 발목까지만 오는 상태였다. 수조에 발을 담그는 족욕만으로도 피로가 풀리고 생기가 도는 ‘적당한 행복’의 상태, 그것이 만족이었다. 그래, 어차피 완벽한 만족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니 내게 좋은 51을 선택하고 나면, 나머지 49는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택할까? 바다가 보이는 통창문과 바닷가 해안 산책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니 화장실 담배 연기는 감수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은 후, 정면 돌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파트 관리자와 여러 번 통화를 한 끝에, 흡연의 근원이 옆집 아저씨임을 알아냈다.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미니 포스터를 만들었다. 알록달록 귀여운 제주 하늘과 바다 그림도 그려 넣었다. 엘리베이터와 복도 곳곳에 이 포스터를 붙였다.

큰 맘 먹고 제주에 일 년 살러 왔어요. 집에서도 제주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요. 모두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흡연은 화장실이 아닌, 건물 밖에서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또 옆집 아저씨를 보면, 멀리 계시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가서 밝게 인사를 드렸다. 여러모로 노력한 덕분에 담배 냄새는 확실히 줄어들 수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아저씨와 단 둘이서 맞닥뜨렸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 때문에 많이 불편하시죠? 노력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저씨는 다소 놀란 눈으로 나를 보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니에요. 안 불편해요. 덕분에 담배도 덜 피우고 있네요.”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옆집 아저씨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서 무척 뿌듯하고 기뻐했다.  적당한 만족을 위한 어떤 결정을 했다면, 그 선택을 믿고 감사하면서,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지혜이다. 내친김에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에, 제주 집이 감사한 이유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내가 먼저, 명랑한 목소리로 감사의 물꼬를 텄다.

 “바닷가 통 창문에 감사, 마음껏 해변 산책을 할 수 있음에 감사, 집이 아담해져서 청소가 간편해지니 감사, 옆 건물이 동쪽 창문을 가려주니 사생활 보호가 잘돼서 감사, 담배 연기 덕분에 환기를 더 자주 시킬 수 있어서 감사해요. 당신과 아이들은 이 집에 어떤 점이 감사하고 만족스러워요?”  

 

아이들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박에 대답했다.

 "집이 좁아져서,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보이니 좋아요.”

 “맞다. 우리가 엄마를 찾지 않아도 되잖아요.”

 “아, 그렇구나..... 어디서든 엄마를 볼 수 있어서, 그렇게 좋아? 당신은 어때요?”

 “나야 뭐, 당신이랑 아이들이랑 함께 있으니까 좋은 거지.”     

 가족들의 간결한 답변에 난 순간 당황했다. 가슴 속에서 찡한 무언가가 올라왔고, 환하고 따뜻한 빛이 우리를 감싸는 걸 느꼈다. 아, 나는 너무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게 다시 제주 우리집이 좋은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아름다운 제주에, 가족이 머무를 집이 있어서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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