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함덕 해변에는 육해공의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만성 염증은 가라앉았지만, 유지도 무척 중요했다. 건강을 위해 외식을 주말로 제한했다. 무엇보다 집밥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워킹맘으로 살았던 지난 날, 내게 주방일은 굉장히 낯설고 귀찮은 존재였었다. 한 번 먹고 나면 끝인 음식인데, 준비 시간은 왜 그리도 길고, 설거지감은 어쩜 이리도 많을까. 세상에 요리처럼 가성비 떨어지는 일은 또 없어보였다.
그랬던 내가 딱 하루 한 시간을 엄마의 주방놀이 시간으로 정했다. 편한 외식과 배달 음식의 유혹을 이기는 사투를 벌였다. 조엘 펄먼은 ‘아이를 변화시키는 두뇌음식’에서 아이의 잘못된 식습관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무섭지만 무시못할 말이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부모의 중대한 역할이었다. 집밥 먹기와 함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좋은 음식을 두려고 노력했다. 고구마, 옥수수, 밤, 단호박을 수시로 쪘다. 단 것이 당기면 사과와 바나나, 견과류, 말린 과일로 당을 보충했다. 자주 먹게 된 음식에 입맛은 서서히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정말 아이들은 배가 고플 때면, 주변에 있는 음식을 먼저 먹었다. 내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을 외식만큼 맛있게 만들기는 어려웠다. 외식만큼 즐거운 식사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요리에 참여시켰다. 흥미를 돋우는 요리 동영상도 함께 봤다. 내가 주방에 있으면 아이들은 “와, 좋은 냄새가 나요”라며 이내 달려왔다. 조리대 위의 야채와 고기를 조몰락거렸다. 계란을 섞어주었다. 야채 다듬기도 열심히 도왔다. 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옆집 아주머니가 뜯어다 준 호박잎을 함께 다듬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잎사귀의 푸른 향기가 온방을 메웠다.
“엄마 어릴 땐, 외할머니랑 이 호박잎이며 고구마 줄기, 어린 깻잎, 고춧잎들을 자주 손질했단다. 그것들이 반찬으로 변신하면 얼마나 신기하던지.”
“엄마, 우리도 이렇게 요리 돕는 거 좋아해요. 자주 시켜주세요. 네?”
“저 너무 잘 다듬지요? 보세요. 제가 누나보다 속도가 더 빨라요. 슈우웅!”
그날 저녁, 큼지막한 호박잎을 입에 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행복했었다. 진수성찬보다 더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냈다.
식재료는 주로 로컬푸드 직매장과 하나로 마트에서 공수했다. 제주의 햇살과 바람이 키운 배춧잎을 연한 된장물에 넣어 달큰한 된장국을 끓였다. 아이들과 봉지를 들고 가서 서우봉에서 직접 쑥을 캤다. 그 쑥으로 향긋한 봄국을 마셨다. 향이 진하고 통통한 한라산 고사리로 만든 나물은 쇠고기만큼 쫄깃쫄깃하고 맛있었다. 캠핑을 다녀와서는 노곤한 몸을 치유해 줄 떡만둣국을 끓였다. 진한 멸치 육수에 볶은 표고버섯, 불린 현미 가래떡과 무항생제 고기 만두를 넣어 보글보글 끓였다. 국물을 후루룩 마시던 남편이 엄지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주말 내내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네. 역시 집밥이 최고야!” 남편의 최애 음식인 탕수육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집밥은 쌈박하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매번 요술을 부렸다. 무엇보다 식사 후엔 속이 편했고, 통증과 가려움도 없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는 일이 이렇게 흐뭇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무엇보다 집밥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내가 주방을 사랑하게 되자,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따뜻하고 포근한 온기가 흘렀다. 건강한 영양소는 아이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또 아이들은 집밥을 통해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분별력과 절제력,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을 얻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은 아이의 자존감을 한껏 북돋았다. 이렇게 제주 살이를 통해 나는 요리하는 엄마가 되었다. 치유의 섬 제주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