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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Apr 20. 2022

얘들아 제주에서 일 년만 살아볼까?

교사 엄마의 제주 감성 육아

 

봄이면 꽃 피우느라 바쁜 나무처럼

엄마들은 모두 바쁘다. 전업 주부의 경우 요리와 장보기, 청소는 물론이고, 집안 대소사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아이 하원 시간이 된다. 엄마표로 직접 영어, 수학, 독서를 가르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학원 정보에 발빠르게 대처하느라고 결국 지친다. 그렇게 아이와 저녁을 먹고 나면, 한켠에는 설거지더미와 빨래감이 가득 쌓여있다. 워킹맘은 직장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소진을 한차례 한 후에 퇴근을 한다. 집에 오자마자 보이는 건, 고스란히 엄마 몫인 집안일과 육아이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한 셈이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조르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미안한 일이다. 아이와 놀이터로 나갈 체력도 없어서, 유투브를 틀어주고 만다. 이렇게 당장 엄마부터 바쁜데 아이 마음을 챙길 여유가 대체 어디서 난다는 말인가? 


     

 내가 그랬다. 아이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 중요한 걸 알고는 있었다. 수시로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물었고, 마음을 읽어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막상 내 몸이 힘들면, 괜한 짜증부터 아이에게로 흘러갔다. 실수로 밥그릇이라도 엎지르면, “괜찮아. 다음부턴 조심하자”라는 말보다는 “그러니까 엄마가 딴짓하지 말고 밥만 먹으라고 했잖아.”라며 화부터 불쑥 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치우며,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책읽기 동화책 음원을 틀어주며, 곁에서 내가 먼저 골아 떨어졌다. 주말에는 피곤하니까 또는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면 혹시 아이가 아플까봐서 가까운 대형마트에서 무료함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특별한 추억도 없이 매일 캄캄한 어린이집에서 장난감만 매만질 아이 모습이 늘 맘에 걸렸다. 이대로 아이의 유년기를 흘려보내면, 후회할 게 분명했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부모가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행복하기를 배울 것인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직감했다. 먼저 내 번아웃을 회복하고, 행복한 엄마가 되야, 공감육아도 가능할 것이었다.



 큰맘 먹고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그곳은 구름 위를 걷는 듯 자유로웠고, 층간 소음과 미세 먼지, 코로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코발트빛 바다와 구름, 초원의 말들까지 생기가 넘쳤다. 추위를 잊은 채 모래놀이에 푹 빠져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만 제주에서 살아볼까?’ 이토록 좋은 곳이 외국도 아닌 한국이어서 말도 통하고, 마트와 병원이 많다. 그러니 독박육아라 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제주는 아이와 자주 눈을 맞추며 웃고, 체험을 통해 즐겁게 배우는 공감육아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한달살이가 아닌 일년살이를 택한 건, 아이는 물론 나도 제주를 충분히 누리고 싶어서였다.      


  

“얘들아, 엄마 휴직하고 셋만 제주에 살아볼까? 딱 일 년만”

“그럼, 매일 모래놀이하고 수영도 할 수 있어요? 캔디원이랑 초콜렛 박물관도 가겠네요.”

“엄마랑 데이트할 수 있어요? 어린이집 안 가고, 2층 버스 타고 서울 가면 좋겠다.”

온유의 물음에 다솔이가 대답했다.

“온유야, 제주에는 2층 버스가 없단다. 대신 말을 타겠지. 그런데 엄마! 아빠는 주말마다 제주에 오시는거죠? 야호, 당장 제주도 가요!”

 아이들은 지난 제주 여행이 좋았던지, 내 제안에 열광을 했다.    


 

  제주살이를 가려면 두 개의 산을 넘어야했다. 첫번째는 비용이었다. 천만 원이 훌쩍 넘을 연세, 양쪽 집의 관리비와 공과금, 남편의 주말 비행기 삯을 일 년치로 계산했더니 중고차 한 대가 눈앞에 지나갔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순 없었다. 결국 모든 인간은 탐욕스럽게 붙잡고 있던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 때가 오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게 돈보다 중요한 건, 한정된 시간이고 가족간의 사랑 그리고 추억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유년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최인철 교수는 그의 책 《굿라이프》를 통해 행복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를 통해 정체성의 결핍을 은폐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경험을 사서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다.


 돈으로 경험과 평생의 추억을 사자. 다르게 살기(live) 위해 다른 것을 사자(buy). 게다가 제주에 일 년 사는 건, 가족의 일주일 해외여행 비용과 맞먹었다. 이처럼 가성비 좋은 모험이 또 어디 있겠는가!  


   

 두 번째는 자발적인 기러기부부 생활이었다. 남편의 외로움, 고단할 독박육아, 아빠를 향한 아이들의 그리움을 생각하니, 결정은 어렵기만 했다. 제주살이의 혜택과 남편의 부재라는 손익 계산서는 도통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아이들과 자주 제주살이에 대한 꿈을 꾸었다.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 치유의 산림욕, 이것을 만끽할 우리들.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들이 “날 보러 와요.”라고 손짓하면, 선심 쓰듯 골라 누리는 특별한 일상이라니...... 아,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남편을 보면 맘이 바뀌었다. ‘이 모든 걸 아빠 없이 누리는 게 과연 좋을까?’     


 그러던 중, 장기화된 코로나는 육아휴직과 제주살이를 부추겼다.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지)의 심정으로 둘째 아이의 유치원을 제주로 지망했다. ‘설마 3:1의 경쟁률을 뚫겠어?’ 감사하게도 신은 제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인생은 B(Birth)로 시작해서 예외 없이 D(Death)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이 B와 D사이에 있는 많은 C에 의해 인생은 달라진다. 제주 일년살이는 인생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분명히 가치있는 C였다. 즉 아이들과 처음으로 선택(Choice)한 도전(Challege)과 용기(Courage)였고 기회(Chance)이자 변화(Change)였다. 그렇게 우리도 저 바다를 매일 만나는, 제주 도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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