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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Apr 02. 2022

모래놀이, 너와 나의 완벽한 윈윈

얘들아 제주에서 일 년만 살아볼까?

너와 나의 완벽한 윈윈

어쩌면 모래놀이 때문에 제주에 왔다. 아이들을 바다에 방목하는 자유로운 육아를 꿈꿨다. ‘바다와 모래가 아이들과 놀아주면, 난 바다에서 멍 때리며 쉬어야지.’하며 말이다. 정말 모두가 윈윈하는 행복한 풍경이 아닌가? 3월까지는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어서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4월이 되자 훈풍이 불었고, 이제 본격적인 모래 놀이의 계절이 왔다.     

드디어 모래놀이의 계절이 왔다

 도서관 책을 실어 나르던 카트는 모래놀이 전용으로 바뀌었다. 그 안에는 모래용 장난감, 크록스 신발, 생수와 수건을 담아뒀다. 커피와 책을 챙겨, 캠핑 의자 하나 어깨에 둘러매고 바다로 가면 됐다. 집 앞이 해변어서 좋았다. 동네 마실 나가듯 카트 끌고 나갔다가 모래를 털며 집으로 걸어왔다. 그래도 태양이 강한 날엔 아무리 무거워도 파라솔이나 우산은 필수품이다. 제주 햇빛은 선크림도 뚫는 초강력 자외선을 발사하니까 말이다.     


 주로 함덕이나 서우봉 해수욕장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자석처럼 해안가로 달려갔다. 모래가 그렇게나 좋을까! 주무르고, 흩뿌리더니 이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 구덩이를 판다. 점점 영역을 넓히더니 거대한 수로를 팠다. 온유는 한라산을 쌓으며, 꼭대기는 백록담이라며 움푹 떠낸다. 곳곳에 공주성을 짓는 건 다솔이의 몫이다. 이젠 바닷물을 열심히 퍼 나를 차례, 둘은 힘을 합하여 임무를 완성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를 찾지도 부르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말을 시켜도 대꾸도 없다. 그야말로 모래놀이 삼매경이다. 드디어 수로에 물이 넘실대는 꿈의 도시가 완성됐다.      


 백사장은 아이들의 완벽한 창의 놀이터이다.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면서 아이들의 창의력은 자란다. 푸르고 넓은 해변, 짭쪼름한 바다 냄새, 보드랍고 고운 모래와 차가운 바닷물, 쏴아 파도소리. 이 다양한 자극들은 놀이에 집중하도록 아이들을 격려한다. 또 아무리 써도 끝없는 모래와 물, 보물 찾듯 우연히 발견한 막대기와 돌, 조개 껍질 등 이렇게 넉넉하고 유동성있는 자연물은 창의력을 키우는 고마운 장난감이 된다. 원하고 바라는 세상이 탄생한다.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된다.


게다가 모래 놀이는 아이들 주도의 프로젝트이다. 얼마나 즐겁겠는가! 만들고 싶은 대로, 크기도 높이도, 위치도 모두 마음대로다. 무엇보다 신나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아이들은 기꺼이 협동한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도 동지가 되고 만다. 이처럼 모래놀이는 창의력, 상상력, 주도성, 집중력, 협업 능력 등 미래 인재 역량을 길러주는 최고의 감성 교육이다.        


이것이 찐 카르페디엠

 나도 아이들 못지않게 행복했다. 한가한 분위기 삼매경에 빠졌다. 크림색 파라솔 아래에 릴렉스 하게 앉아 코발트빛 바다를 보고 있으면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 무료하면 피아노 선율에 취해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었다. 이런 게 천국이 아닐까?      


 제주에 와서야 카르페디엠(carpediem은 ‘Seize the day’라는 뜻의 라틴어임)을 비로소 체득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건, 스펜서 존슨의 《선물》에 등장한 지혜로운 노인의 말처럼, 지금 일어나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고통스런 상황이 와도, 그걸 피하려고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중요하고 옳은 일’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면 활력, 자신감, 평안이 고통도 이기며, 현재 속에 살도록 이끈다.


‘지금 여기와 이 순간, 이 일'은  Present이다. 여기서 Present는 그 의미가 선물도 되고 현재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이고,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소중한 선물이 된다는 건 의미심장한 인생 통찰이었다. 바다 멍때리기를 하면 두근대던 심장이 진정됐고, 쓸데없는 후회나 불안은 잊혀졌다. 마술처럼 현재가 선물이 됐다.        


 눈앞에 예비 신랑과 신부가 웨딩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다와 찰떡인 순백의 드레스를 보며 다솔이가 벌떡 일어나 말한다.

 “와, 신부 예쁘다. 나도 나중에 결혼할 때, 제주도에 와서 사진 찍어야지!”

 “다솔이 결혼할거야? 그런데 누구랑 할거야?”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온유는 이렇게 쫑알댄다.

 “나랑 결혼해야지! 그래야 엄마랑 같이 오랫동안 살 수 있잖아.”

 “뭐! 온유야 너랑 결혼 안 해! 형제끼리는 결혼할 수 없단다. 넌 모르는 여자랑 결혼해야지”

 “히잉, 엄마랑 결혼할 수도 없고.... 그러면 엄마가 우리 집에 자주 올 수 없잖아.”

  동심과 모래성, 저 바다는 우리의 완벽한 카르페디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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