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년살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가치있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아, 학교 생활을 가지고 하브루타 하면 어떨까?’ 여기서 하브루타는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는 대화법’이다. 하지만 내가 실천했던 ‘일상 하브루타’는 본격적인 하브루타를 위한 워밍업 과정이었다. 세 개의 질문으로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했다. 서로 신뢰를 쌓았다. 더불어 아이의 표현력과 생각하는 능력도 자랐다. 더 발전된 하브루타를 하기 토대가 되었다. 해안가를 산책하며 아이와 수다 떨기, 이것은 내가 아이 맘속에 새겨주고 싶은 제주살이 풍경이었다.
질문 세 개만 기억하면 되니, 사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첫 번째, 기억할 질문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니?”이다. 너무 심각하게 말고,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질문을 던지자. 수다쟁이 딸들은 대체로 질문을 받기 전부터 이미 “오늘 아주 기쁜 소식이 있어요!”라며 달려오곤 한다. 선생님께 칭찬받은 이야기, 장난꾸러기의 엉뚱한 행동 등 신변잡기 스토리를 끝없이 말한다. 크게 놀라울 것 없더라고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기분 좋았겠네, 어떻게 그렇게 엉뚱할 수 있지?” 등의 추임새를 한껏 넣어주는 것은 귀여운 수다쟁이에 대한 예의이다.
사실 처음에 이 질문을 들은 아이는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몰라 당황할지도 모른다. 아들이라면 더 그렇다. 그럴 땐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꿔 물어야 한다. “오늘 급식에서 맛있는 반찬은 뭐였어?, 바깥놀이 때는 무슨 놀이를 했니?, 선생님이 읽어주신 동화책 주인공은 누구였어?, 오늘은 블록으로 뭘 만들었어?” 등. 자기 맘에 드는 질문을 발견하면 그제서야 자랑을 섞어가며 수다를 떨 것이다. 이때, 무용담을 늘어놓는 영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엄지척까지 해준다면, 아이는 엄마와 떠는 일상 수다를 즐거워할 것이다.
제가 엄마보다 더 잘 하지요
두 번째, 기억할 질문은“네 생각은 어때?”이다. 아이도 학교에서 문제를 겪는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해결책을 찾기 전에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물었다. 생각하는 힘과 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코칭하는 것이다. 방과후 수업을 다녀오자마자 다솔은 말했다.
“수업 시간에 한자 선생님이 화를 내고 야단을 쳐도, 언니랑 오빠들이 계속 떠들어요.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말을 안 듣나?”
순진한 저학년에게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모습은 너무나 낯선 광경이었다.
“그럴 때, 넌 어떤 생각이 들어?”
“한자 선생님이 너무 안 됐어요. 시끄러워서 저도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고요.”
“집중 안 돼서 속상했겠다. 급수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선생님도 많이 힘드실테고.”
“다음엔 1, 2학년만 있는 A반 수업을 들어야겠어요.”
“그러면 좋겠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다솔이 생각은 어때?”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요.”
“그렇지. 불편하고 힘들게 하지. 그래도 한자 선생님은 우리 다솔이 덕분에 수업할 맛이 나시겠다. 엄마도 학교에서 수업할 때 그렇거든. 그 선생님 대신해서 엄마가 다솔이에게 고맙구나. 아이스크림 먹을래?”
뜬금없는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아이는 신나게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마지막 질문은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이다. 유대인 엄마들은 하교한 아이들에게 매일 이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 10명이 모이면 11개의 다른 의견이 나오나보다. 유대인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다. 또 교사는 아이들이 공격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계속 유도한다. 논쟁으로 시끄러운 교실. 언젠가는 한국의 교실도 이런 광경으로 변하길 꿈꿔본다. 하지만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질문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한다. 유대인들의 후츠파 정신인 뻔뻔함과 당돌함이 필요하다. 아무리 아이에게 질문은 자연스러운 학습 과정이라고 가르쳤지만 쉽지가 않았다. 권위와 예절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이다. 효과적인 당근이 필요했다. 다르게 생각하고, 질문까지 한 날에는 간식 마음껏 골라먹기.
당돌하게 아름다운 제주에 살면서, 내 아이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생각하고, 질문하기를 바랐다. 아동기만큼 아이에게 쏟은 정성이 풍성한 열매로 돌아오는 가성비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 저기 하교한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선 “엄마~”하고 뛰어 온다. 그러니 이제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넣는다. 두 팔 벌려 아이를 힘껏 안아주며 질문을 한다. “다솔아,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