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워킹맘의 여유
저는 11살 딸과 8살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에요. 또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죠. 교사가 된지 15년차, 첫째 아이가 6살 둘째 아이가 3살 때 육아휴직을 했어요. 아이 둘을 출산하고 키우면서 일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쳤었거든요. 휴직은 삶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뭉쳤던 어깨와 함께 긴장도 ‘휴~’하는 깊은 날숨과 함께 풀렸죠. 이젠 꿈에서나 그렸던 혼자만의 시간이 왔어요. 식탁 정리를 대충하고 안마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었어요. 새소리가 정다우면 책 들고, 뒷산으로 숨기도 했죠. 아! 이렇게 한가한 오전이라니, 책에서만 읽었던 ‘금빛 햇살, 상쾌한 공기’가 현실이 됐습니다. 산소만큼 여유가 중요하고, 사람과 상황보다는 생각과 내면에 집중하길 좋아하는 내향인인 저에게 휴직 후 일상은 복권 당첨이라도 된 듯 매일 설렜습니다. 건강을 회복했고, 아이들과 제주도일년살기도 다녀왔어요. 신나게 누린 여유와 고독 덕분에 저의 장점과 약점을 찬찬히 살폈죠. 꿈꾸던 ‘책 쓰기’에 도전했고, 3월,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를 드디어 출간했습니다.
엄마의 휴식과 성장은 아이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어요. 엄마에게 여유가 있어야 아이들도 예뻐 보이거든요. 지금껏 아침마다 출근하느라 포옹할 여유도 없는 엄마였어요. 하지만 매일 아침 아이의 팔다리를 쭉쭉 늘리며 통통한 볼살에 입을 맞출 수 있었죠. 황홀한 감각 파티와 함께 한가로운 산책의 여유는 새콤달콤했어요. 모두가 바쁜 아침, 아이는 등원을 미루고 엄마와 아침 데이트를 즐기며 그네를 탔거든요. 함박 웃는 아이를 보면서, 뿌듯했어요. 돈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선택한 일상의 여유는 아침마다 벅찬 행복으로 치환 됐습니다.
엄마에게 여유가 생기니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어요. 주말 저녁마다 힘들다는 언성이 오갔는데, 그런 짜증과 다툼이 수그러들었죠. 예전엔 죽이기도 어렵다던 스투키마저 말라 죽었는데, 점점 실내에 화초가 늘었어요. 한가롭게 마른 잎을 떼 주며, 애정으로 돌봤어요. 제법 초록초록한 베란다를 보면서, 아이들과 같이 외우는 식물 이름도 늘어갔어요. 식탁에도 인스턴트 음식 대신 엄마표 음식이 자주 등판했어요. 오후에는 아이들과 책 읽고, 독후 활동을 했고, 안 하던 엄마표 영어를 한답시고 하루종일 부산을 떨었어요. 누군가는 휴직 후, 집에만 있으니 무료하고 답답해서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고 한다던데, 저는 아이와 저 자신을 함께 키웠던 4년의 휴직 기간이 참 좋았어요. 외부 자극이 최소화된,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은 내향인인 저에게 충만하고 벅찬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나요? 어떤 성취를 위해선 꾸준한 인내와 투쟁이 필요하죠. 벅찬 행복을 뒤로하고 복직을 했어요. 대출 이자율이 껑충 올라 망설일 여지조차 없었죠. 주변에 친척 하나 없었기에 우리는 마음을 비장하게 먹었어요. 4학년인 첫째 아이는 괜찮았지만, 초등 1학년인 둘째가 마음에 많이 걸렸어요. 워킹맘에게 ‘시간’이란 자원은 아무리 노력해도 충족되지 않은 물리적인 한계잖아요. 부모의 바쁨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에게 받고 싶은, 충분한 사랑과 보호를 잃어버릴 수밖에요.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먼저 출근하면, 등교를 아이들끼리만 늦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교한 아이들이 태권도와 미술 학원을 잘 갈 수 있을까?’
‘퇴근하면 피곤할 텐데, 생활과 학습 습관은 어떻게 잡아주지?’
‘건강한 집밥을 먹고, 운동을 해야 활력이 생기는데, 워라밸을 지킬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열이 나도 학교는 보내야 할텐데, 어떻게 하지?'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려면 초등 저학년까지는 부모가 알림장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줘야 해요. 하지만 정신없는 워킹맘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하죠. 자주 빠뜨리고 또 실수를 하겠지요. 그러면서 아이에게 자주 미안할 테고요. 엄마가 죄책감을 가지면 아이가 불안해하니까 전문가들은 그러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솔직하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워킹맘이 전업 주부가 아이에게 쏟는 관심과 정성을 따라갈 순 없으니까요. 고심 끝에 아이들을 집 근처 대안 학교에 보내기로 했어요. 시설은 좀 낙후됐어도 오후 늦게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고 학생 수가 적어서 선생님들이 학생 개개인에게 신경을 써 줄테니까요. 학교 뒤에 산이 있고, 수시로 공원 산책을 간대요. 고양이, 강아지, 닭과 칠면조까지 키우는 자연친화적인 환경도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 영어와 성품, 자기주도학습에 큰 무게를 두는 커리큘럼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대안학교는 아이에게 최대한 덜 미안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워킹맘은 매일 투쟁의 연속을 버티겠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직장과 가정에 남김없이 쓰면서도 회복할 시간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워라밸을 지키면서 건강과 여유를 잃지 않고, 육아와 일을 모두 잘 할 수 있을까요? 과한 욕심인 걸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복직해서도 여유있는 엄마, 다정한 선생님으로 살고 싶어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제 책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에 쓴 것처럼 아이에게 계속 행복한 엄마를 선물하기 위해 분투하려고요. 반타작의 성취라도 옳은 방향으로 나가다보면, 비슷하게 살아질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