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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황후, 아름다움 너머의 빛

자유와 사랑의 빛을 헝가리에 뿌리다

by 은하수반짝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엘리자베트 시시 황후

오스트리아인들이 사랑하는 엘리자베트 황후. 기념품 샵마다 그녀 얼굴이 새겨진 초콜릿과 굿즈가 가득했다. 달걀형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망울. 마치 동화 속 왕비처럼 아름답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우린 그녀에 대해 궁금했고, 시시 황후가 왜 이토록 사랑받는지 알고 싶어졌다.

1837년 바이에른 뮌헨 근교에서 태어난 엘리자베트는, 귀족답지 않게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막시밀리안 요제프 공작과 어머니 루도비카 공녀는 자녀들에게 자연과 시, 철학을 가까이하도록 교육했다. 시골 소녀처럼 말을 타고 숲을 달리던 아이, 그녀가 훗날 오스트리아 황후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시시는 원래 황후가 될 운명이 아니었다. 원래 황제의 신부는 언니 헬레네였다. 그러나 1853년 바트이슐 연회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시시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결국 시시는 16세에 황후가 되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가 하루아침에 유럽 최강 제국의 황후로 들어선 순간, 그녀의 외로움과 갈등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궁정에서 늘 이방인이었다. 까다로운 궁정 예법은 그녀를 옥죄었고,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는 시시 황후가 아이들을 기를 교양과 자격이 없다며 세 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았다.


궁중의 냉대를 벗어나려 세계를 떠돌던 그녀는 아들 루돌프의 비극적인 자살 이후 무너져 내렸다. 이후 평생 검은 드레스만 입었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늘 검은 부채와 베일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1898년 9월 10일, 그녀는 스위스에서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암살 당했다. 코르셋과 검은 옷 때문에 피가 흐르는 것도, 상처의 심각성도 인지하지 못했고, 결국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시시를 “예쁘지만 불행했던 황후”라고 말한다. 맞다, 그녀의 삶에는 아들의 자살, 딸들의 죽음,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의 외도와 같은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과연 불했했을까? 그녀는 결코 비극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중해의 햇살 아래, 헝가리 평원 위에서, 자유롭게 달리며 상처를 달랬다. 황후의 모든 역할을 다 잘 하지 못했어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작품’처럼 가꿔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또 말년에는 유산을 고아원과 여성 교육 기관에 기부하며 삶을 마무리했다.


또 시시는 헝가리를 사랑했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헝가리의 기질이 그녀와 닮았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헝가리어를 배우고, 민속 의상을 입고, 헝가리 귀족들과 교류했다. 그 노력 덕분에 헝가리인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이 성립되었다. 시시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는 오스트리아 황제이자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했고, 시시도 헝가리의 황후가 되었다. 헝가리인들은 지금도 그녀를 ‘민족의 어머니’라 부른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도망치는 황후였지만, 헝가리에서는 품어주는 어머니가 된 것이다.

이처럼 시시 황후는 외모뿐 아니라, 성품과 가치관까지 아름다웠기에 오스트리아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시시 황후의 초상화


호프부르크 궁전의 시시 박물관에는 그녀의 흔적이 많았다. 당시 유럽 여성들의 키는 150cm였지만 시시는 172cm의 장신이었다. 허리 사이즈 19인치(약48센티), 몸무게 50킬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제한된 식사와 고강도의 운동을 고집했다. 또 벽면을 붉게 장식한 살롱, 금빛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화장대와 가구,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빗기 위해 쓰였다는 거대한 빗,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별 머리핀은 무도회 속 황후의 영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암살당한 날 입었던 검정 드레스는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실감케 했다.


궁전을 나오며 아이들이 물었다.
“시시 황후의 삶이 슬프면서도 멋져요. 만날 여행을 다녔다니 부럽기도 하고요.”
“그치, 아빠도 그게 제일 부럽다.”

남편이 진심으로 맞받아쳤고 이내 내가 질문했다.

“엄마 생각에 시시는 단순히 불행한 황후는 아닌 것 같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알고, 그것으로 지금까지 기억되잖아. 너희들은 뭘 잘하고 싶어?”

아이들은 또 그 질문이라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온유가 대답했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요. 근데 화가는 돈을 못 벌텐데....”

온유의 말을 들은 다솔이도 말했다.

“그렇긴 하지. 힘내 온유야! 그래도 네가 그린 로마수도교 스케치는 볼만했어.”


사춘기 누나가 동생을 오랜만에 칭찬했다. 여행 내내 아이는 마음을 넓고 곱게 썼다. 이게 여행의 힘인가? 엘리자베트도 숙제 같은 궁중 생활을 피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하던데,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역시 여행인가보다.

황제 요제프와 아침을 먹었던 대형 살롱과 시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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