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mit Trucker Feb 06. 2023

페친 자르기

유타 경관

페친 남기기

02/05

시간 여유는 좋다.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도 없고. 충분히 자고 날이 밝은 후에 움직였다.

어제 배달 후 받은 빈 트레일러는 깨끗했다. 어디서 와쉬아웃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짐을 실을 곳은 와쉬아웃 영수증을 요구한다고 적혀 있다. 불필요한 와쉬아웃을 할 것이냐, 그냥 갈 것이냐. 가까운 곳에 와쉬아웃을 하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갔다. 영수증이 필요하니까. 직원도 상황을 알았는지 물만 대충 뿌리고 1분만에 마쳤다. 페북 프라임 리퍼 그룹에 질문을 올렸더니, 영수증 책을 가지고 다니라는 답변이 많았다. 내가 직접 써서 가짜 영수증을 만들라는 얘기다. 합리적인 방안이다.

정작 발송처에 도착하니, 영수증 보자는 얘기는 없고 트레일러 검사만 했다. 이후 작업은 빠르고 깔끔했다. 빈 트레일러는 내려 놓고, 화물이 든 트레일러를 연결해 나왔다. 고개를 넘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국 처음 와서 신기했던 것이 일기예보가 꽤 정확하다. 시간 단위까지도 맞다. 몇 시에 비 온다면 오고, 몇 시에 그친다면 그친다. 이 지역에 오후부터 눈 내릴 것이라는 상황은 알고 있었다. 조심스레 속도를 줄여 운전했다.

눈발이 더 강해졌다. 어제 쉬었던 트럭스탑 근처 더 큰 트럭스탑에 주차했다. 시간도 넉넉한데 굳이 악천후에 운전할 필요 없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정도는 껌이지 하며 무시하고 달렸다. 사고 이후 쫄보가 된 나는 멈추는 편을 택했다. 밥 지어 먹고 쉬다가 눈이 그친 틈을 타서 다시 움직였다. 내일도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더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120마일 정도를 더 달려 대형 트럭스탑에 주차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이곳도 내일 낮부터 눈이 내릴 예정이니 아침 일찍 출발하면 괜찮을 것이다.

유타와 애리조나는 경치로 유명하다. 내가 가는 경로도 그렇다. 내일은 Glen Canyon Dam에서 숙박할 계획이다. 예전에 이곳을 지나가며 경치에 감탄했다. 이번 배달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내일은 제대로 관광을 해볼 작정이다.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페친 줄이기다. 원래 하루에 10명씩 줄이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재미가 있어 속도가 더 붙었다. 2,300명이 넘던 페친이 1,957명으로 줄었다. 목표는 500명이다. 목적은 페친 줄이기가 아니고 의미 있는 페친 남기기다. 나와 교류가 있거나 오프라인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남을 것이다. 500명 정도의 지인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숫자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삭제는 쉽지 않다. 친구 목록에는 나와 교류가 있는 사람이 먼저 뜨기 때문에 지울 사람을 찾으려면 한참을 스크롤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지우다 포기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좋은 방법을 찾았다. 바로 친구의 친구 목록을 이용하는 법이다. 거기서 나와 공통 친구를 찾으면 간단하다. 처음 보는 이름을 지우면 된다. 내 글에 댓글이나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많이 잡아도 100명 안팎이고 그 이름은 기억한다.

낯선 이름이라고 무조건 지우지는 않는다. 광고 목적으로 만들어 나와 교류할 가능성이 없는 계정, 수년 동안 방치된 계정이 우선 삭제 대상이다. 유익한 글을 올리거나 자기 컨텐츠를 생산하는 계정은 남겨둔다. 아니 오히려 좋아요를 누른다. 그 덕분인지 최근 내 페북 뉴스피드가 다채로워졌다. 생전 안 뜨던 사람들이 쓴 글이 뉴스피드에 뜬다.

5월이나 6월에는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정예 페친 500명만 남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서행이 답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