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배달 완료

1월 27일

by Hermit Trucker

타로카드가 맞았다. 어제 시카고를 100마일 앞둔 South Beloit, IL 로드레인저에서 주유 후 오랜만에 카드를 꺼냈다. 두 가지를 물었다. 여기서 자고 새벽에 출발할까, 시카고로 바로 갈까? 내일 하루에 세 곳 모두 배달할 수 있을까? 타로는 여기서 자고 가라 했고, 내일 모두 배달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일정은 월요일 두 곳, 화요일 한 곳이다.


새벽 3시,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시카고 근처에 배달한 적은 있다. 시카고를 관통해 들어가 시내 배달은 처음이다. 시카고도 엄청 크구나.


배달처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꽉 찼다. 옆의 큰 사업장 때문이다. 내가 배달할 곳은 주차장 한쪽에 닥 2개가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닥 앞에 한 자리가 비어 거기에 주차하고 기다렸다. 내 뒤에 온 트럭은 거기도 못 대고 주차장 가운데서 엉거주춤 기다렸다.

새벽 5시 30분이 넘으니 사람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주차장 한쪽은 승용차로 차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가니 사람이 있었다. 2번 닥에 대란다. 내가 이렇게 후진을 잘하는 줄 몰랐다. 최상위급 난이도다. 닥 바로 앞에 주차한 트레일러가 첫 번째 장애물이다. 닥이 높아서 두 갈래로 만든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트레일러 바퀴를 정확히 위치시켜야 한다. 그냥 바닥 전체를 높이지 그랬어.


이렇게 어려운 곳은 피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실력을 쌓을 기회다. 쉬운 곳만 가서는 실력이 더디 는다. 이왕 하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후진이 가능하니까 그 사람들도 사업하는 것 아니겠는가. 너무 어려워서 대부분 트럭 드라이버가 후진에 실패한다면 그 사업장은 망했겠지.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서류다. 어찌 된 일인지 서류에 항목이 제대로 없다. 배달할 세 곳 중의 한 곳만 그나마 절반의 항목이 표시돼 있다. 나머지는 내용도 없고, 숫자도 0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화물을 내리고 내용과 수량을 파악해 손으로 적었다.


어제 화물을 받고 서류를 검토하다가 내용이 이상해 발송처 사무실로 돌아가 물었다.


“이게 뭐냐? 내용이 없다. 수량도 없고.”

“아마도 거기서 다른 곳으로 갈 물건을 싣나 보지?”


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이런 발송장은 처음이다. 어떻게 되겠지 싶어서 그냥 출발했다.


두 번째 배달처. 첫 번째에 비하면 후진은 쉽다. 여기 서류는 모든 게 0이다. 받는 쪽도 황당하다. 뭘 얼마나 내리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스에 스탑 표시가 돼 있다. stop 1, stop 2, stop 3로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여기서도 화물을 내리고 수량을 파악해 손으로 적었다.

세 번째 배달처. 세 곳 모두 1마일 이내 거리에 있다. 걸어가도 될 정도다. 이곳은 원래 내일 약속이다. 일단 가서 부딪혀 보자. 안 되면 내일 다시 오고. 이곳은 도로를 가로막고 후진해야 한다. 닥에 대면 한 차선의 절반 정도를 트럭 앞부분이 차지한다. 일단 도로에 대고 건물로 들어갔다. 일단 트럭에 가서 기다리란다. 아 받아 주는구나. 다행이다. 하루 벌었다. 작은 곳은 융통성이 장점이다. 월마트나 타켓 DC같이 큰 곳은 약속 1시간 이상 전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 세 곳에 나눠 배달하니 양도 얼마 안 되고 보관의 부담이 적었던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렸다. 다른 트럭들이 와서 먼저 짐을 내렸다. 직원이 오더니 서류를 문제 삼는다.


“도대체 항목이 뭐냐?”

“돼지고기다. 그리고 12 상자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디스패처에게 연락해 물어봐라.”


브라이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세일즈 부서에 내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얼마를 더 기다려 직원이 나왔다. 닥에 대란다. 브라이언은 팩스번호나 이메일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배달을 마쳤다. 세 곳을 이렇게 빨리 배달하다니.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고, 작은 곳이라 앞서 두 배달처에서 별로 안 기다려서 가능했다.


트레일러 내부는 핏물이 얼어붙어 지저분했다. 트레일러 와쉬아웃할 곳도 가까이 있었다.


배달처 주변에 한산한 길이 있었다. 주차금지 표시가 없어 트럭을 세워도 될 것 같았다. 트럭스탑에 가지 않고 여기서 다음 화물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 화물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이오와로 가는데 배달처가 세 곳이다. 그것도 내일 하루에 모두. 도시는 제각각이다. 오전 10시가 첫 배달이고 오후 6시 30분이 마지막 배달이다.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마지막 배달을 마치기도 전에 근무시간을 다 쓴다. 하루 14시간 일할 수 있으니 오전 5시에 일을 시작해야 오후 7시까지 일할 수 있다.


지금껏 2년 가까이 일하면서 배달처가 두 곳 이상인 적이 별로 없다. 배달처가 세 곳인 화물을 연달아 받다니. 이게 무슨 조화냐.


시카고 인근에 있는 발송처로 갔다. 혼잡한 곳이다. 후진은 단순한데 주변에 트럭을 피하는 게 관건이다. 어렵게 후진했다. 아침의 실력은 어디로 갔나? 실력이 이렇게 들쭉날쭉해서야.


계획이 어그러졌다. 짐 싣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새벽 3시에 시작했으니 오후 5시에는 끝내야 한다. 기다리다 시간 다 갔다. 67마일 떨어진 트럭스탑이 지금 시카고 인근에서 유일하게 주차 가능성이 있다. 규정을 위반하고 가느냐? 여기서 밤을 나느냐? 서류받으면서 물어보니 야간 주차가 가능하단다. 한쪽으로 세우란다. 그 위치에 주차한 트럭 때문에 다들 후진에 어려움을 겪는데? 안쪽에 좀 한가한 부분이 있었다. 당장 짐을 싣거나 내리지 않고 트레일러만 있다. 트레일러가 선박용 컨테이너라 길이가 짧다. 그렇다면 내가 거기 세워도 큰 지장을 주지는 않겠군.

밤이 되니 사업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야간작업은 안 하나? 새벽부터 시작하려나? 아무튼, 나는 내일 새벽 5시에 이곳을 떠날 거다.


바로 옆이 철로인데 2층 통근 열차가 간간이 지나간다. 바로 옆 철로에는 트레일러를 2층으로 실은 화물열차가 몇 시간째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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