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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May 19. 2020

대장정을 마치고

5월 18일

스프링필드 프라임 본사에 왔다. 재선 형님의 신체검사를 위해서다. CDL 소지자는 2년에 한 번 공인된 의료기관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다. 나는 지난 3월에 받았다. 재선 형님은 클래스 B CDL을 2년 전에 땄다. 장롱면허다. 프라임 입사 전에 클래스 A를 따고 트럭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      

3,600마일 대장정은 무사히 마쳤다. 내가 받아본 최장 거리다. 대륙 횡단이라는 뉴욕시에서 LA까지 거리가 2,778마일이고, 시애틀까지는 2,852마일이다. 그러니 여간해서 3,600마일짜리 화물을 받기란 어렵다. 이번 경우에는 네바다에서 캘리포니아로 짐 실으러 갔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위아래로 세 곳을 다니며 짐을 실었기 때문에 이 거리가 나왔다. 베이징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 거리가 3,600마일(5,794Km)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덴버에 이르기까지 여정은 대략 70%가 그 자체로 관광이었다. 사막과 산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풍광에 압도당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덴버에서 시작되는 평원은 익숙한 풍경이라 다소 지루하다. 끝없이 달린다. 거대한 미국을 절감한다.      


코스를 약간 바꿔 핏스톤 터미널에 들렀다. 재선 형님의 실기 테스트를 위해서다. 금요일 일정을 놓치면 월요일에나 가능하다. 재선 형님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나 혼자 배달을 갔다.      


짐을 내리고 있자니 재선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요?”

“이런 X됐네. 나는 실기 연습장으로 가라는데.”     


재선 형님은 시뮬레이터 운전으로 끝날 것을 기대했었다. 스프링필드보다는 핏스톤이 다소 느슨하다. 나도 수련을 마치고 핏스톤에서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나 자신 없는데. 다음에 한다고 할까 봐.”

“가보세요. 밑져봐야 본전 아닙니까.”     


하차를 마치고 핏스톤으로 향할 때였다. 재선 형님에게 전화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겠어. 통과한 것 같은데?”     


운전 연습장에 가니 예전에 봤던 감독관이 있더란다. 그가 세팅해주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확히 후진이 됐단다. 앞서 PSD 수련 후 테스트에서도 그가 잘 봐줘서 쉽게 넘어갔다고.      


잘 됐다. 충분히 연습을 못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코스를 바꿔 핏스톤에 들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트럭 APU가 고장 났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정차 중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했다. 핏스톤 터미널 트랙터샵에 가서 수리 접수를 했다. 캐리어 APU는 프라임에서 잘 사용하지 않아서 부품을 구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럭에 돌아와 청소하고 기다리며 APU 시동 스위치를 눌렀더니 작동했다. 이럴 수가. 고칠 필요가 없어졌다.    

  

재선 형님의 신체검사를 위해 29일 전에 스프링필드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곧바로 세인트루이스 인근으로 가는 화물을 줬다. 허쉬 초콜릿이다.     


초콜릿 배달을 마치고, 다음날 세인트루이스에서 오클라호마주 포토로 가는 맥주를 실었다. 우리는 이 화물을 스프링필드까지 운반한다. 포토는 네이슨이 사는 동네다. 네이슨이 집에 있을 가능성은 작다.      


스프링필드 본사에 오니 예전과 달리 야드에 트레일러가 가득했다. 주차할 곳이 없어 별도 마련된 저지대 야드에 가야 했다. 그곳에도 자리가 별로 없었다. 간신히 주차하고 트레일러를 내려놓으니 도착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본사 식당은 24시간 문을 연다. 펜데믹 이후 유일하게 테이블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장소다. 건물에 입장할 때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밥 먹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벗어야 하지만.     


재선 형님은 이제 학생이 아니라 나와 동등한 동료 기사다. 그간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정상 급여를 받는다. 한편으로는 나는 트레이너 수당이 없어져 섭섭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원래 트레이너도 아니고 예정에 없던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밤낮없이 달리는 팀 드라이빙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글쓰기도 자주 못 할 정도로 피곤하다. 어쩌면 팀 드라이빙이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팀 드라이빙에 적응하거나, 재선 형님이 독립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면 다시 솔로로 운전해야겠다. 재선 형님은 나보다 더 피곤해한다. 재선 형님도 솔로가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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