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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Sep 14. 2021

트럭운전의 실체

양집사님의 햔타

0913 트럭킹의 실체

사흘간 홈타임 후 다시 솔로로 길을 나섰다. 양집사님이 다친 허리를 치료하는 동안 이번 주는 혼자서 일한다.

양집사님은 처음 2주 정도를 잘 따라오길래 큰 문제 없이 수련 과정을 마칠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모양이다. 뉴저지에서 LA가는 화물을 받은 날, 양집사님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여기서 캘리포니아 가는 화물을 받으면 어떡하냐고. 당황스러웠다. 서부로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은 양집사님이었다.

양집사님은 자신은 그렇게 장거리를 갈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브라이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로드를 취소 시키겠단다.

양집사님은 내가 시간 여유가 많은데도 일정을 서두른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가능하면 미리 움직여 도착지 가까운 곳에서 쉬는 게 내 원칙이다. 여유부리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 시간에 쫒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찍 화물을 받아 주는 곳도 있다.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 트럭커에게 시간은 돈이다.

양집사님은 장시간 연속 운전을 못한다. 두세 시간마다 쉬어야 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뭐라 하진 않았다. 졸음운전은 곤란하니까. 오히려 1시간 30분을 운전하고 30분을 주무시라고 했다. 그렇게 5번 반복하면 교대 시간이다. 그런데도 양집사님은 내가 태도나 표정으로 자신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지 아느냐고 항의했다. 표정관리를 못한 내가 잘못이구나. 나는 양집사님께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다.

양집사님이 내게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사실에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먹은 게 채했다. 머리가 아파 하루 동안 나는 거의 운전을 못 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내 기준에 양집사님이 따라 오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양집사님의 상태에 맞추기로 했다.

양집사님은 트럭 운전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트럭을 몰고 경치 좋은 곳을 다니며 가끔 호텔에서도 자고 전국 맛집은 다 찾아 다니는 줄 알았단다. 달리 돈 들어갈 곳이 없다면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단지 생계를 위해 일하는 대부분의 트럭커에겐 먼 얘기다.

양집사님은 트럭킹의 실체를 깨닫고 현타가 온 것 같았다. 잘 하는 듯 싶었던 ELD 조작도 대게는 까 먹었다. 내가 자꾸 지적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듯하여 몰래 수정해 놓고는 했다. 수련이 끝나기 전에 무작정 따라하기 식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드려야겠다. 그래야 솔로 드라이버가 된 이후에도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트럭킹은 98%의 따분하면서도 반복적인 작업과 2%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페북에는 2%의 반짝이는 순간을 올린다. 사람들이 맛집의 화려한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지, 매일 먹는 식탁 사진을 안 올리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은가. 2%의 반짝이는 순간과 그 추억으로 살아간다.

내가 너무 각박하게 살고 있나?

그동안 나는 지인들에게 트럭 운전을 해보라고 권하는 입장이었다. 양집사님 사례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는주되 내가 먼저 나서지는 말자. 트럭킹은 모든 이에게 맞는 직업은 아니다.

양집사님을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은 더 이상 훈련시키지 않으려 한다. 트레이너는 어쩔 수 없이 악역도 맡아야 한다. 잘 대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다시는 얼굴 안 봐도 그만인 사람만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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