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mit Trucker Oct 13. 2021

나의 첫 트레이닝은 절반의 성공

TNT 수련 종료

10/12

TNT 종료



내 역할은 끝났다. TNT 충족 요건인 3만 마일을 넘기고도 3,500마일 가량을 더 탔다. 핏스톤 터미널로 돌아와 양강원 집사님을 내려드렸다. 양집사님은 집으로 돌아가 업그레이드 일정이 잡힐 때까지 대기한다. 



나의 첫 TNT 트레이닝은 절반의 성공이다. 양집사님은 내 생각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수련을 마친 지금도 양집사님이 혼자서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수련 첫날부터 했던 얘기를 매번 반복하기도 지쳤다. 나는 양집사님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알아듣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수십 번째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나를 발견하고서야 양집사님이 내가 설명하는 내용을 못 알아듣는 걸 깨달았다. 양집사님은 매번 처음 듣는 얘기처럼 반응했다. 내가 노트를 하라고 조언했지만 그냥 귀로 듣고 넘겼다. 



나는 네이슨에게 배울 때 노트에 사소한 것까지도 메모했다. 내가 솔로 드라이버가 됐을 때 그 노트는 귀한 참고서 역할을 했다. 



양집사님은 처음에는 트럭 운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실토했다. 막상 운전과는 별도로 서류 작업, 로그 기록 등 트럭 실무가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그런 일들을 척척 수월하게 해내서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막상 자신이 해보려니 어렵고 복잡했다. 



내가 수련을 마칠 즈음에 네이슨은 내가 충분히 준비됐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나 스스로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신이 없는 부분은 후진이었다. 그 외 트럭 실무는 다 이해한 상태였다. 양집사님은 반대다. 트레이너인 나는 미심쩍은데 양집사님은 이제 다 알고 문제 없다고 한다.  



양집사님은 후진은 논할 것도 없고, 트럭 실무도 제대로 익하지 못했다. 후진과 실무를 논하는 것은 사치였다. 가장 기본인 장거리 운전이 안 됐기 때문이다. 두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트럭스탑에 멈추기 일수였다. 



밤운전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스스로도 인정했다. 밤에는 졸려서 운전이 어렵다고. 밤에는 트럭을 세우고 서너 시간은 자야했다. 어느 날 요란스런 경적 소리에 깨어보니 양집사님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캔자스 고속도로에서 하이빔을 켜고 시속 40마일로 서행 중이었다. 차가 갈지자로 왔다갔다 했는지 추월하는 트럭이 위협을 느끼고 에어혼을 울린 모양이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나는 가급적 양집사님에게 밤운전을 시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졸리면 트럭을 세우고 몇 시간이라도 자라고 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내가 공연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트럭 일은 양집사님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당장 회사에 보고하고 수련을 중단했을 것이다. 



TNT는 팀 드라이빙이다. 내가 트레이너라고 별도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양집사님의 주급을 내가 지불한다. 그러니 맡은 화물을 제 때 배달해 수입을 올려야 된다. 양집사님이 하루 3~4백 마일을 주행하니 모자라는 거리 만큼을 내가 더 달려 채워야 했다. 내가 더 고되게 운전하며 힘들게 가르치는데 진도는 안 나가니 답답했다. 애초에는 기간별로 내가 생각한 진도표가 있었다. 그러나 기본 운전이 안 되는 마당이니 모두 어그러졌다. 



양집사님은 운전 자체는 잘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콜택시를 운전한 덕분인지 트럭도 부드럽게 몰았다. 운전대를 맡기고 뒤에서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문제는 지구력이었다. OTR은 장거리 운전이다. 장시간 운전이 기본이다. 두어 시간마다 몇 십분씩 쉰다면 효율성이 급감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양집사님은 처음에 내가 자신을 혹사시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중에 한인 트럭커 단톡방 멤버들을 만난 후에야 오해가 풀렸다. 아마존 화물을 운송하는 장석천 씨 팀은 일인당 하루 700마일 이상을 주행하고, 둘이서 하루에 1,500마일 정도를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한 장소에서 한 시간 이상 주차도 못 한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소풍이나 다름 없었다. 이에 자극받은 양집사님은 운전 거리를 늘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양집사님과는 두어 번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을 전했다. 솔직한 대화는 서로의 오해를 푸는데 도움이 됐다. 양집사님이 처음 품었던 환상은 차차 현실화했다. 양집사님은 수련이 끝나면 컴퍼니 팀 드라이빙으로 경력을 더 쌓기로 했다. 최종적으로는 컴퍼니 솔로 드라이버로 정했다. 다른 팀 드라이버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련 종료 며칠을 앞두고 양집사님의 주행 상태가 갑자기 좋아졌다. 쉬는 빈도도 줄고 서너 시간 이상을 주행할 때도 있었다. 그 결과 하루 주행거리가 500마일 이상 나왔다. 500마일 넘게 달릴 수 있다면 솔로 드라이버로 어찌어찌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통 표지판이 아니라 GPS에 의존해 운전하는 습관, 좁은 사거리에서 다소 좁게 회전하는 경향 등 극복할 문제가 산적했지만 양집사님의 몫이다. 



나 역시 TNT를 마치고 솔로 드라이버로 시작했을 때 부족함 천지였다. 매일 실수했다. 더러 사고도 냈다. 그럼에도 프라임은 내게 기회를 줬다. 그 결과 나는 성장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트레이너가 됐다. 지난 달에는 우리 플릿에서 이달의 드라이버로 선정되기도 했다.  



양집사님과 TNT 기간 중 천만다행으로 교통사고는 물론 한번의 배달실패도 없었다. 100% 임무 완수다. 나 혼자가 아니라 양집사님과 함께 이룬 결과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양집사님이 당당한 한 사람의 트럭커로 설 날을 기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