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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Dec 24. 2022

따뜻함은 단단함을 이긴다.

이걸 제설이라고 했어.

고비는 넘겼다. 내일도 춥지만 오늘 보단 덜 춥다.

오늘 새벽 트럭 시동은 무리 없었다. 약간 털털 거리는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다행이다.

그 다음은 트레일러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제 비를 맞으며 왔기에 그대로 얼어 붙었을 가능성이 있다. 평소 트레일러는 스프링 브레이크로 잠겨 있다. 트랙터에서 호스로 공기를 주입해야 스프링 브레이크가 풀려 바퀴가 굴러간다. 추운 날에 스프링 브레이크가 얼어 붙기도 한다.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달리면 바퀴가 땅에 끌리다 닳아서 터진다.

예전에 아주 추운 날 밤,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 타이어 하나가 터진 적 있다. 바퀴가 터져도 느낌이 없다. 우연히  사이드 미러를 보다가 타이어 쪽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갓길에 세우고 타이어 서비스를 불렀는데, 그 추운 밤 타이어를 교체했던 젊은 친구의 고생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 이후로 날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면 항상 트레일러 타이어가 돌아가는 지 확인한다. 밤에는 사이드 미러로 확인이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분필로 트레일러 타이어에 표시를 한다. 트럭을 조금 움직인 후 분필 표식이 위치가 바뀌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 외에도 분필은 용도가 다양해 트럭에 하나 정도 갖고 다니면 좋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제설 작업이 어설풀 줄이야. 켄터키가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제설 장비나 인력이 부족하다. 수십 대 장비로 눈을 밀어내고 소금을 쏟아 붙는 북동부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설 상태가 허술하다. 눈이 많이 안 왔기 망정이지 조금만 더 왔어도 대난리가 났을 것이다. 도로에 남은 눈이나 풀밭에 쌓인 눈이나 비슷하다.

새벽이라 고속도로에 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다. 운전에 초집중하여 조심스레 운전했다. 날이 밝고 나서도 다니는 차량은 적었다. 학교는 모두 휴교한 모양이다. 차량 운행이 적어서 그런지 사고 차량도 별로 없다.

리퍼 연료나 채우고 가려고 트럭스탑에 들렀다. 어떤 트럭이 헛바퀴를 돌리며 입구를 막고 있다. 그 뒤로 나오는 트럭이 줄을 섰다. 잽싸게 그 앞에서 유턴했다. 트레일러 연료가 ¾ 남았으니 그냥 가자. 주유소를 나와서 우회전하는데 어두운데다 눈으로 도로가 덮혀 있어 하마트면 역주행할 뻔 했다.  

무사히 배달처에 도착했다. 문제는 도착해서 생겼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트레일러를 잠궜던 자물쇠가 얼어 붙어 꼼짝을 않는다. 손으로 당기다 나중에는 망치로 내려쳤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온컵에 남아 있던 커피를 자물쇠에 부었다. 뜨겁기는 커녕 식어서 미지근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저절로 자물쇠가 슥 빠졌다. 따뜻한 것은 차갑고 단단한 것을 이기는구나.

같은 장소에서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화물을 다시 받았다. 이런 경우 럭키다. 어제 미리 사전 계획이 떴다. 이번에도 아이스크림이다. 세 번의 배달 모두 고객이 같다. 첫 화물을 실었던 헤이즐턴(Hazelton)으로 간다. 900마일 조금 넘는데 3천 불이니 단가가 괜찮다. 품목이 같다 보니 리퍼 온도도 -15도로 같다. 여기 사람들도 친절하다. 드라이버들 먹으라고 냉장고에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을 넣어 두었다. 여름이라면 인기 있었을 텐데. 아이스콘 하나 먹고 아이스바 두 개는 나중에 먹으려고 챙겼다.  

새로운 트레일러를 연결해 나왔다. 제설 상태는 안 좋아도 시야가 좋으니 밤보다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내 옆 차선으로 다른 트럭이 추월해 달려 나왔다. 갑자기 내 차선 전방에 비상등을 켠 트럭이 보인다. 도로 복판에 정지해 있다. 내 옆으로는 다른 트럭이 있어 차선 이동도 불가능하다. 정지 밖에 방법이 없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이 기우뚱했다.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다행히 블루버드는 차선 이탈 없이 감속에 성공했다. 옆 트럭을 보낸 후 아슬아슬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해 비켜 지나갔다. 눈길에 도로 가운데 서 있으면 자칫 큰 사고 난다.

 윈드실드 와이퍼 스프레이가 얼었다. 소금물이 튀어 시야가 안 좋다. 갓길에 세우고 물을 뿌리니 그대로 얼어 붙었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다음 트럭스탑에 도착할 때까지 참고 가는 수밖에. 트럭스탑 주유펌프에는 윈드실드를 닦을 수 있는 세정액과 길다란 밀대가 마련돼 있다. 윈드실드 세정액이 광고로는 영하 20도까지 얼지 않는다지만 실제로는 좀 춥다 싶으면 스프레이 노즐이 얼어 못 쓰는 경우가 잦다. 다른 트럭도 마찬가지다. 겨울철 운전의 고충 중 하나다.   

오늘은 아직 해가 남았을 때 켄터키 매디슨빌에서 멈췄다. 어차피 내일 중으로는 도착 못한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일요일에 도착할 것이니 무리할 필요없다. 헤이즐턴에서 핏스톤까지는 30분 거리니 다음 로드가 없으면 터미널에 가서 쉬고 월요일에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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