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연습이었다. 오늘이 진짜 악몽이었다. 트럭 운전 시작한 이후 주행 중 사고에 가장 근접했다. 사고를 피한게 더 신기하다.
이른 새벽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제설 상태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차량 통행이 드문 도로에서 내 뒤를 한참 따라오던 픽업 트럭이 블루버드를 추월해 나갔다. 눈길에 좀 빠르다 싶었다. 얼마 후 중앙분리대를 박고 멈춘 픽업 트럭을 발견했다. 운전자가 걸어나오는 것으로 봐 큰 사고는 아니다. 조심 좀 하지.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 곳곳에서 사고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중앙분리 지역이나 갓길 밖으로 떨어진 승용차나 트럭이었다.
켄터키는 은근히 산지가 많다. 언덕길을 달리는데 앞에 어떤 트럭이 꾸물거리길래 속도를 줄이며 옆으로 비켜나갔다. 그 앞으로는 여러 차선에 걸쳐 승용차와 트럭이 기다시피 미끄러지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블루버드 역시 그냥 미끄러진다. 도로 전체가 빙판이었다. 암담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진행 방향으로 서서히 미끄러지는 기분이란. 앞에서 꾸물거리는 승용차는 내 사정을 알까? 이건 백프로 추돌 사고를 직감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했다. 브레이크와 핸들을 조작해 기적적으로 충돌을 면했다. 트럭이 휘청거리며 중앙분리 지역으로 향했다. 거기 빠지면 자력으로 못 나온다. 토잉 트럭 부르면 기본이 천 단위로 논다. 차량 손상이라도 생겨 수리라도 들어가면 돈과 시간은 물론 싣고 가는 화물 운임료도 날아간다. 차라리 가벼운 추돌이 나았으려나? 본능적으로 핸들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겨울철 안전 운행 교육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빠지기 직전에 통제력을 회복했다. 이때부터는 모든 차량이 기어갔다. 갓길에는 잭나이프된 트럭이 서 있는데 그 바퀴 밑에 승용차가 깔려 있다. 운전자는 최소한 중상이리라.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71번 하이웨이가 스파르타에서부터 경찰에 의해 차단됐다. 그저께 1인치 정도 내린 눈으로 고속도로가 폐쇄되다니. 조금만 더 가면 오하이오인데. 블루버드를 고속도로 램프에 세우고 우회도로를 알아봤다. 길은 있지만 하이웨이가 차단될 정도면 국도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다. 아니나다를까 국도 진입로도 경찰차로 막혔다. 길은 어제부터 차단된 모양이다. 언제 뚫릴지 모른다. 내일까지 갈 지도. 주말 디스패처에게 연락하고 여기서 셧다운 하기로 했다. 어제 지어 먹고 남은 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램프에 주차한 트럭들을 쫒아냈다. 몰려 오는 차량으로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서다. 길은 막아 놓고 주차도 못하게 하면 어쩌라고? 루이빌로 다시 돌아가 인디애나폴리스로 우회하기로 했다. 200마일 정도 더 돌아간다. 시간도 더 걸리고 연료비도 더 든다. 빙판 고속도로를 되돌아 갈 생각을 하니 짜증 나지만 방법이 없다.
루이빌에서 65번 하이웨이를 타고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하다 국도로 빠졌다. 인디애나에 들어서니 도로 상태가 달랐다. 들판에 쌓인 눈을 보니 켄터키보다 조금 더 많다. 그런데도 고속도로는 보송거릴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마음껏 속도를 내도 불안하지 않았다. 켄터키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저 커브길에서 잘못하면 미끄러져 밖으로 떨어지거나 다른 차량과 부딪힐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인디애나는 심지어 국도도 켄터키 하이웨이보다 사정이 나았다.
다시 71번 하이웨이로 들어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오니 도로 사정이 켄터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하이오 잘 사는데 왜 이러지? 미국 주별 GDP 순위에서 켄터키는 28위, 인디애나는 17위, 오하이오는 7위다. 켄터키가 가난해서 제설 능력이 부족한 줄 알았더니,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평소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은 제설 능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오하이오라도 북부 쪽은 다르다. 하긴 GDP 2위인 텍사스도 작년 폭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인디애나보다는 훨씬 못하고 켄터키보다는 아주 약간 나은 제설 상태를 보인 오하이오의 71번 하이웨이를 달리다 제퍼슨빌의 트럭스탑에 들어왔다. 시간도 다 됐고, 날도 어두워 여기서 자고 가야 한다. 추운 날씨에 워셔액 스프레이가 작동하지 않아 오늘도 종일 불편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내일은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