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에게 크리스마스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도 눈길과 빙판을 헤치며 열심히 달릴 뿐. 오늘은 더 분주한 하루였다.
어제보다는 제설 상태가 좋았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지날 때는 온통 빙판길이다. 켄터키보다 더 하잖아. 고속도로는 괜찮은데 도시 구간만 지나면 엉망일까? 시예산이 없나? 덕분에 오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전에 집중이다. 어제 오하이오 턴파이크에서 50중 추돌 사고가 있었단다.
펜실베이니아에 들어서니 제설 상태가 훌륭하다. 역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다르다. 그런데, 제설이 잘 된 곳은 또다른 딜레마가 있다. 바로 소금물이다. 워셔액이 얼어서 안 나오기 때문에 20분만 지나도 앞이 안 보일 정도다. 수시로 휴게소에 들어가 닦았다. 급할 때는 갓길에도 세웠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트럭에서 내리지 않고도 물 한컵으로 운전석 앞만 닦았다.
펜실베이니아는 산길을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보통은 고속도로 진출로로 나가면 다시 진입할 수 있다. 재진입이 안 되는 곳은 No re-entry to north bound 이런 식의 사인을 붙여 놓는다. 재진입불가 표시가 없길래 진출로로 나갔다. 그런데 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있어 직진해서 반대편으로 나갈 수 없다. 좌회전해서는 진입로를 지나친다. 우회전하여 갓길에 세우고 급한대로 윈드실드는 닦았지만 차량을 돌릴 일이 문제다. 좁은 2차선 국도에서 유턴은 꿈도 못 꾼다. 유턴할 공간을 찾을 때까지 산골 시골길을 달렸다. 급하다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한참을 가도 없다. 이러다 어느 산골에서 막다른 길에 이르는 거 아냐? 중간중간 공터가 넓은 사업장이 한두 곳 보였으나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눈이 쌓여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공터인지 풀밭인지 알 수 없다. 예전에도 시골 트럭스탑 출입구를 놓쳐 한참 고생해 돌려나온 적이 있다.
더 가도 돌릴만한 곳은 없겠다. 휴일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다.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사거리에서 T자로 유턴하기로 했다. 정직각의 십자로는 아니지만 후진은 가능하겠다. 일단 우회전해서 들어갔다. 따라오는 차량을 먼저 보냈다. 뒤가 안 보이기 때문에 차량을 통제해야 한다. 눈길에 내리막을 달리던 승용차가 후진하는 트럭을 봐도 미처 세우지 못하고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럴 때는 팀 드라이버라도 있으면 좋은데. 언덕길을 내려오는 승용차를 손짓해 세웠다. 거기서 내가 후진할 동안 다른 차량을 막아 달라는 뜻이었는데, 내가 트럭에 타자 그냥 쌩 가버렸다. 다행히 반대 방향에서 오던 픽업 트럭이 멈추더니 상향등으로 내게 신호를 주었다.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대로 후진해 반대편 길로 들어섰다. 다시 우회전 해 돌려 나왔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팝업창에 뜰 것 같다. 어제부터 많은 경험을 했다. 덕분에 겨울철 안전 운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언제 한번 따로 정리해서 다른 트럭커와 공유해야겠다. 그래야 고생한 보람이 생기지.
펜실베이니아 동부로 오니 소금물이 별로 안 튄다. 여기는 눈이 덜 왔나보다. 목적지 도착 두어 시간을 앞두고 프리플랜(Preplan)이 들어왔다. 이거 배달하면 70시간 주간 근무시간이 얼마 안 남아 터미널 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 남은 몇 시간 조차도 알뜰하게 굴려주시는군. 나야 좋다. 제섭(Jessup)으로 가는 화물인데, 메릴랜드 제섭인 줄 알고 처음에는 못 간다고 했다. 알고보니 핏스톤 터미널 근처 제섭이다. 166마일인데 850달러 준다니 마일당 5불 30센트다. 오전에 잠깐 일하고 이 정도면 수지 맞다.
오늘은 513마일을 달렸다. 눈길에 천천히 달린 구간도 있고, 국도에서 트럭 돌려나오느라 시간도 소요했고, 중간중간 계속 서서 차유리 닦았고, 트럭스탑 주유 펌프가 고장나 이리저리 다녔더니 배달 마치고 14시간이 거의 다 지났다. 보통은 11시간 운전시간이 모자라지, 14시간 근무 시간은 남는데 말이다. 다행히 여기서 하룻밤 묵게 해준다. 휴일이니 업무에 방해될 일도 없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주면 된다. 분주한 하루였다.
워셔액은 고농도 알코올을 섞으면 얼지 않는다고 하니 조만간 구해서 써봐야겠다. 지금으로서는 날이 풀리길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