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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Jan 20. 2023

원점으로 되돌리다.

훗날 인생반전의 계기로 기억할까?

원상 복구

분주한 하루였다. 아침에 브라이언에게서 세 가지 미션을 받았다. 캠퍼스인(Campus inn)에서 Safety class 수강, 트레이닝 패드에서 운전 평가, Safety 담당자 면담을 순서대로 마쳐야 한다.

셔틀 버스를 타고 캠퍼스인으로 갔다. 클래스는 1시다. 미리 도착해 식사를 먼저 했다. 바디샵에 전화해 블루버드를 주차한 위치를 알려주고 시동키는 꽂혀 있다고 알려줬다.

캠퍼스인은 5년전 나를 트럭운전 세계로 처음 안내한 장소다. 낯 익은 얼굴은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당시 학생들로 북적대고 활기 넘치는 모습은 간데 없고, 한적하고 조용했다. 요즘 프라임에서는 예전만큼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세이프티 클래스 수강생은 나 혼자였다. 비디오 3개를 시청하고, 시뮬레이터로 3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모두 날씨와 관련한 과제였다. 내가 빙판길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내리고 안개가 낀 환경에서 도로 공사나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하나를 본다. 나는 와이퍼, 윈드실드 디프로스터, 비상등까지 상황에 맞게 사용하며 완벽하게 대응했다. 관건은 역시 서행이었다. 약간 속도를 높이자 눈길에 차가 미끌했다. 침착하게 속도를 줄였다. 역시 실제와 비슷하다. 끝난 후 강사의 반응은 "Good job"이었다.

다시 셔틀을 타고 트레이닝 패드로 갔다. 내가 실기 시험을 보고 CDL을 받았던 곳. 션(Sean)을 만났다. 내 트럭은 수리 중이라 연습용 트럭을 이용했다. 평가 항목은 후진 주차와 외부 도로 주행이다. 5명의 학생을 가르친 트레이너인 내가 운전 실력을 평가받는 상황이 되다니. 션은 내 경력을 물었다. 거의 5년이라고 하니 그는 굳이 평가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했다. 아무튼 절차는 밟아야 하니,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역시나 굿잡이다.

마지막으로 세이프티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내 크리티컬 이벤트 기록을 보고,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 정직하게 답해 줬다. 그는 사건 당시의 데이터와 구글맵 스트리트 뷰로 현장 모습을 보며 분석했다. 결론은 미끄러운 도로에서는 크루즈 사용하지 말고, 속도를 좀 줄이고 다니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러겠노라 했다. 안 그래도 사고 이후로는 시속 62마일로 다닌다. 65마일까지 속도낼 수 있지만, 62마일이 내게는 가장 편했다. 프라임 트럭은 가뜩이나 느린 것으로 유명한데 나는 더 천천히 다닌다.

브라이언은 따로 만나지 않고 메시지만 주고 받았다. 화물은 내일 아침에 받아서 나가기로 했다.

트럭 수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밀레니엄 빌딩 2층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수리가 다 됐다며 연락이 왔다. 이야~! 감탄했다. 감쪽같다. 블루버드가 다시 새 트럭이 됐다. 내일 세차만 하면 완벽하다.

직전에 타던 피터빌트는 학생이 낸 사고 손상을 수리하지 못 해 1년 가까이 찌그러진 차체를 운전하고 다녔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속상했다. 그런데 핏스톤 터미널에서는 도무지 수리할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수리는 열흘 이상 걸리며, 트럭 내부 짐을 모두 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스프링필드 본사에서는 이틀만에 수리를 마쳤다. 본사 터미널과 다른 지역 터미널의 수준 차이가 확연하다. 사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경미한데다 프레이트라이너여서 부품을 구하기 쉬운 까닭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프레이트라이너, 역시나  국민 트럭이다.  

사고와 관련한 모든 수습이 끝났다. 재교육도 받았고, 트럭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사고로 각성해 인생을 다른 태도로 살기로 했다. 전화위복인가. 일은 줄이겠지만 나는 더 바쁘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동시에 읽고 있는 책도 4권이다. 한 권씩 빨리 순서대로 끝낼 수도 있지만, 지식이 여물어 뇌에 흡수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밥 짓는데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50대 중반에 트레이더라는 새로운 경력을 내 삶의 여정에 추가하기로 했다. 공부는 어렵지만 재미 있고 즐겁다.

P.S
어제 밤에 대수롭지 않게 쓴 글이 다음(Daum) 포털 화면에 올랐단다. 평소 내 브런치는 일일 방문자가 평균 20명 이하다. 그런데 그 글의 조회수가 하루도 안 돼 9천건을 넘었다. 포털의 힘을 실감한다. 무엇이 담당자의 눈길을 끌었을까? 제목과 사진이 먹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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