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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Jan 17. 2023

껍질을 깨라

이번 사고는 액땜이 아니다.

삶이 던지는 경고

1월 16일

마틴 루터 킹 데이. 분명 연방 공휴일인데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공공 기관이 아닌 어지간한 회사는 근무한다. 나로서는 다행이다. 비영리기관인 푸드뱅크도 일을 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샤워 하는 데, 브라이언에게서 연락이 왔다. 트레일러를 비웠냐는 것이다. 브라이언은 주말 내내 일하더니 오늘도 일 하네. 샤워하고 각 단체에 연락해볼 것이라 답변했다. 샤워가 끝나기도 전에 클레임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푸드 뱅크에 기증하란다. 원래 이게 정상이다. 회사에서 알아봐 줘야지. 드라이버 보고 기증 단체까지 알아서 찾으라니 말이다.

Food bank of Siouxland는 트럭스탑에서 5마일 거리였다. 위성사진으로 봤을 때는 넓어 보였는데, 실제로는 트럭을 돌릴 공간이 안 나왔다. 맞은 편 회사의 야드를 이용해 트럭을 돌려 후진해 닥에 댔다. 도로를 횡단하는데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 에어혼을 울렸다. 그 덕분인지 오던 차량들이 멈춰서 기다려줬다. 영수증까지 확실히 챙겼다.

내가 알아본 곳 중 그나마 푸드뱅크가 가장 큰 곳이었다. 다른 작은 기관들은 연락이 됐더라도 접근 조차 어려웠을 것 같다.  

다시 트럭스탑에 도착하니, 다음 로드가 들어왔다. Des Moines, IA에서 Laredo, TX로 가는 화물이다. 물론 나는 스프링필드까지만 배달한다. 이번에도 Tyson Foods 화물이다. Sioux City에서 Des Moines까지는 200마일. 내일 아침 픽업이니 오늘은 근처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주유도 하고, 트레일러 와시아웃도 했다. 빙판길 사고에도 멀쩡히 버텨주었고 화물까지 안전하게 지켜준 고마운 트레일러다.

이번 사고가 내 트럭 경력에 전기(轉機)가 될 것 같다. 이전까지는 최대한 성과를 내기 위해 애썼다면, 앞으로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을 좀 살살할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하자. 억지로 하려 말고. 나는 이번 사고를 내 삶에 보내는 경고로 받아 들였다. 그저 재수 없는 일이니 액땜 잘 했다 차원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변화가 시급하다.

솔로 드라이빙으로 몇 주 일해보니 계산이 나온다. 일주일 70시간을 최대한 쓰면 약 3천불 정도 번다. 예정보다 일찍 배달하고, 다음 화물을 빨리 받은 결과다. 그냥 원래대로 일정이면 평균 2천불 정도다. (이번 주에는 1천불이나 될까 모르겠다.)

내 주식 거래 계좌에서는 내가 운전으로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액수가 매일 오르내린다. 지난 달에는 하루에 2~3천불씩 연일 깨지는데도 손 놓고 있었다. 다시 오르겠지하는 희망으로. 그래서는 안 됐다. 뭔가 대응을 했어야 했다. 지난 주부터 대응을 시작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효과가 있다.

어제 거래 내역을 일부 정리해봤다. 감으로 대충 생각하다가 장부에 적어 확인하니 달랐다. 이래서 트레이딩 저널(매매일지)을 쓰라고 하는구나. 어떤 종목, 어떤 거래에서 얼마를 벌거나 잃었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기록을 쌓아나가면 승률을 높일 수 있겠다. 종국에는 나만의 방법론도 정립할 수 있겠다.

마음을 달리 먹어서인지, 오늘은 운전하며 정신이 맑고 편안했다. 오랜만의 영상의 날씨에 노면 걱정도 없었다.

나는 숫자나 돈계산에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확률과 수학의 영역인 옵션 거래에 관심을 갖고 파고 들어야 하니 아이러니다. 그런데 현재 내 삶이 그것을 요구한다. 인생의 과제로 받아 들이고 마스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간 사람이 됐다. 이 변화가 쌓여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리라. 껍질을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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