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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Jan 16. 202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재수 없는 화물일까, 새옹지마일까.

생각하기 나름

01/15

지난 화요일 받아서 지난 목요일에 끝냈어야 할 화물을 아직도 갖고 있다. 일년에 한두 번 이런 재수 없는 화물이 있다.

수요일 새벽 빙판길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도로 폐쇄로 배달 지연은 불가피했다. 목요일 아침, 첫번째 배달처에 도착했다. 별 얘기 없이 곧 닥을 배정받았다. 트레일러 도어를 열 때 조마조마했다. 솔직히 화물이 무사하길 기도했다. 화물은 무사했다. 타이슨은 랩핑을 잘 하는 곳이라 한쪽으로 치우치긴 했어도 팰럿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내친김에 마지막 배달처까지 달렸다. 미네소타는 겨울 왕국이다. 얼마 전에 눈이 왔는지 온통 얼음판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라 조금만 길이 미끄러워보이면 신경이 곤두섰다. 배달처에 도착하니 이미 접수 시간이 지났다. 오전 5시에서 오전 11시까지다. 바로 앞 도로에 세우고 하루 밤을 지샜다. 기온은 -3F(-20C)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블루버드는 난방이 잘 됐기에 춥지는 않았다.

금요일 새벽, 마지막 배달을 마쳤다. 정상적으로 서류를 받았고, 클레임도 없었다. 다음 배달처는 아이오와에서 알라바마로 가는 화물인데, 나는 스프링필드까지만 배달하면 된다. 거기서 안전 담당자와 면담도 하고 트럭도 고칠 생각이다.

토요일 밤에 화물이 준비된다니 오다가 사우스 다코다에서 하룻밤을 났다. 점심 경에 발송처에 도착했다. 미리 트레일러를 내려 놓고, 근처에서 기다리거나 쇼핑을 할 생각이었다. 여긴 자체 와쉬아웃 시설이 있다. 설명문에 아주 지저분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트레일러 와쉬아웃을 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입구에 도착해 트레일러 문을 열었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안쪽 깊숙히 팰릿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뭐지? 배달처에서 All set이라고 했는데. 트레일러 문을 닫을 때도 못 봤다. 날이 어둡고, 안개가 가득 차 안쪽 깊은 곳은 안 보인다. 최근에는 클레임이 어지간하면 없었기에 방심했다. 빙판길 잭나이프 사고의 정신적 충격이 남았던 것일까, 별 생각 없이 트레일러 문을 닫았던 모양이다. 날이 몹시 춥기도 했고.  

남은 화물은 소시지였다. 발송처에서 잘못 실었을 가능성이 크다. 리퍼를 다시 작동하고 회사에 연락했다. 클레임 부서와 통화 후 얻은 답변은 비영리기관에 기증하고 영수증을 챙기라는 말이었다. 주말인데다 월요일은 공휴일(마틴 루터 킹 데이)이다. 연락되는 곳이 없다. 어제 아침에만 발견했어도 어떻게 처리 가능했을 것이다. 다음 발송처가 와쉬아웃 시설이 없는 곳이었다면 청소를 위해서라도 내가 트레일러를 열어봤을 것이다. 일이 꼬이려니 이렇다. 다음 화물은 자동으로 취소됐다. 이 애물단지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진행이 안 된다.

마음을 비웠다. 내가 애쓴다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회사에 얘기 안 하고 어디 갖다 버려도 모르겠지만, 음식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구호기관에 기증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음식이다.

이번에 빙판길 사고를 당한 후 일을 줄이고 시간을 벌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이제 나는 적어도 이틀, 어쩌면 사흘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내가 결정한다.

지난 주부터 정신차리고 틈틈이 옵션 매매를 하다보니 약 2천불의 수익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수익을 올렸다기보다는 손실을 만회했다. 한 3만불만 더 벌면 본전이다.) 투자와 트레이딩 공부를 제대로 깊이 해야겠다. 단편적인 지식들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각 거래에서 얼마를 벌고 잃는지 기록도 없다.

목표를 세웠다. 5년 안에 투자 수입이 노동 수입을 넘어선다. 연 10만불 정도 꾸준한 수익을 올린다면 노후에 끼니 걱정은 면할 수 있겠지. 트럭 운전은 앞으로 10년만 더 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그때는 자율주행 트럭이 일상화되어 더 이상 트럭 운전을 하고 싶어도 못 할 수도 있다.

아이오와 소도시 트럭스탑에서 갈 곳도 없고, 오로지 공부다. 학습 계획을 세우고 당장 필요한 내용부터 집중 공부했다. 옵션 트레이딩은 한국 자료가 거의 없다. 덕분에 영어 공부는 덤이다. Covered Call과 Cash secured put을 번갈아 사용하는 바퀴 전략(Wheel Strategy)은 웬만큼 이해했다.

이달 초, 연회비가 $239인 시킹 알파(Seeking Alpha) 프리미엄 구독료를 $45에 할인하는 프로모션 뉴스를 보고 얼른 가입했다. 1년 후에는 원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 전에 본전을 뽑아 먹어야지. 기업 분석에는 시킹 알파가 편리하다. 아마존 킨들과 Pdf drive라는 사이트에서 관련 서적을 구해서 읽는다.

지금은 옵션 매매가 취미 생활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든든한 부수입원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노후 생활 지킴이 역할도 할 날을 기대한다.

P.S
빙판길 사고로 정신이 딴 데 있다보니 금요일 경품 추첨을 잊고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결과는 꽝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한국인 드라이버도 아무 것도 건진 게 없다. 이거 말이 나올 것 같다. 당첨된 사람이야 대박이지만, 수천 명의 드라이버들이 이번 연말연시 아무런 보너스를 못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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