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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Jan 12. 2023

사고는 한 순간

5년만에 잭나이프

과욕이 부른 참사

무소식이 희소식은 오늘 딱 맞는 말이다. 일을 다시 시작한 첫 주에 호된 신고식을 가진 후 무난한 나날이었다.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이 떨어질 듯한 추위를 겪고나니 영하의 날씨에 티셔츠 하나 입어도 견딜만 했다. 트레이닝하다가 혼자 다니니 일정은 내 편한대로 잡았다. 피곤하면 쉬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먹었다. 최소한의 휴식과 장시간 운전에 익숙한지라 매일 오래 일했고, 주당 최대 업무량인 70시간은 부족했다.

남은 5시간을 이용해 아침 8시 배달시간 전에 도착하고, 짐 내린 후 한 시간 남짓 운전해 트럭스탑이나 휴게소에 가서 쉬려면 부지런히 달려야했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출발할 때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비가 살짝 내렸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도로 상태도 괜찮았다. 어느 순간까지는. 앞 트럭과 400피트 거리를 유지하고 달렸다. 그 트럭이 속도를 늦추길래 옆으로 추월해 나갔다. 그때 눈치 챘어야 했다.

몇 분 후 곡선길에서 핸들을 살짝 돌렸을 때 트레일러가 휘청거렸다. 차체가 제어되지 않았다. 직감했다. 잭나이프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는 줄어들지 않은 채 휘청휘청 거리며 트랙터가 옆으로 90도 꺾어졌다. 뚜둥 날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신발. 트레일러는 트랙터를 그대로 밀어 붙였다. 전면 유리창에 옆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이 보였다. 무사히 세울 방법은 없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도 핸들을 부지런히 돌렸다. 도로 우측 도랑으로 떨어지며 트럭이 멈췄다. 캐비닛이 열리며 물건이 쏟아졌다. 트럭 운전 5년만에 나도 이런 사고를 내는구나.

잠시 후 뒤따르던 트럭들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1,000피트 앞에는 이미 추돌 사고가 났다. 한 트럭은 간신히 멈췄는가 싶었는데, 뒤에서 오던 트럭이 트레일러를 받아 함께 길 밖으로 밀려났다. 몇 번의 사고가 더 있은 후 트래픽이 멈췄다.

트럭 밖으로 내렸다. 발을 딛자마자 쓰러질 뻔했다. 두 발로 걸을 수 없을만큼 미끄러웠다. 블랙아이스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얇은 살얼음이 노면을 덮었다.

트레일러는 보기에 괜찮았다. 화물은 쏠려서 넘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트랙터의 손상도 사고에 비해 경미하다. 길 위로 끌어올려만 주면 다시 달릴 수 있다.  

사람은 남의 더 큰 불행을 보고 위안을 얻는다. 불운한 사고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동안 주변에 아무 차량이 없었다. 겨울철에는 무리 지어 다니기 싫어하는 내 운전습관 덕분이다. 설령 운 좋게 도로에 섰더라도 뒤따르던 차량이 충돌할 수 있었다. 도로 밖으로 떨어진 게 다행일 수도 있다. 400피트만 더 갔더라면 급경사에 트럭이 쓰러졌을 것이다. 내가 멈춘 곳은 옆에 언덕이 막아주었다.

사진을 찍고 회사에 사고 보고를 했다. 크리티컬 이벤트 두 개가 동시에 떴다. 하드 브레이킹과 차체 불안정 경고. 당시 속도가 67마일이었다. 내 트럭 최고 속도가 65마일인데. 미끄러지며 더 가속도가 붙었다는 얘기다. 지난 달에 크리터컬 이벤트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브라이언은 이번 배달 마치고 본사가 있는 스프링필드 터미널로 나를 부르겠다고 했다. 안전 담당자와 삼자 대면을 해야 한다. 예전에 컴퍼니 드라이버일 때 삼자대면 한 적 있다. 당시에도 크리티컬 이벤트와 몇 번의 사소한 사건이 겹쳐 인터뷰를 했다. 그때 내가 프라임에서 가장 위험한 드라이버 랭킹 6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들었다.

12시간이 넘게 걸려 도로가 다시 열렸다. 내 앞의 트럭들을 치우느라 내 순서는 밀렸다. 하이웨이 패트롤은 내게 워낙 사고 트럭이 많아 오래 걸릴 것이라 했다.

토잉 트럭 두 대가 붙어 블루버드와 트레일러에 각각 와이어를 걸어 당겼다. 갓길로 차량이 무사히 올라왔다. 손상이 좀 있지만 당장 달리는 데는 문제 없다. 신기하게도 떨어져나간 날개가 트랙터와 트레일러 사이 공간에 놓여 있었다. 도로에 떨어졌으면 다른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재활용의 가능성은 낮지만, 번지 코드로 묶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일단 바디샵에 가져가보자. APU 머플러도 덜렁거리는 것을 끈으로 묶어 고정했다.

배달 약속이 하루씩 밀렸는데 아직 시간이 확정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갔다. 이곳엔 전에 눈이 많이 왔었는지 바닥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울퉁불퉁했다. 프랜차이즈 트럭스탑인데도 이렇다.

겨울철 눈이 많이 왔을 때는 동네 작은 트럭스탑은 안 가는 게 좋다. 제설 능력이 부족해 자칫하면 눈에 빠진다.

이 사고의 근본 원인은 급하게 서두른 나에게 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처음부터 시간 부족을 들어 화물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 시간을 따져 보니 딱 맞을 것 같아 받은 것이 화근이다. 평소 같으면 잘 처리해 냈으리라. 겨울철, 눈비 내리는 도로는 예상이 어렵다.

일주일 동안 옵션 매매로 천불 가량 벌었는데, 그 보다 몇 배의 사고 처리 비용이 들게 생겼다. 욕심 줄이고 살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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