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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 Trucker Jan 24. 2023

사흘만에 받은 화물

트럭 운전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스프링필드 탈출

지난 화요일 저녁, 도착한 후 엿새만이다. 사흘 넘게 화물을 기다린 건 처음이다. 마음 비우고 공부했으니 괜찮다. 예전 같으면 조급해 하거나 짜증 났을 것이다.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을 뿐.

McLeansville, NC로 가는 화물인데 내일 오전 8시 약속이다. 늦어도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되는데, 내가 트레일러를 받은 시각이 새벽5시 넘어서다. Cactus, TX에서 발송한 화물인데, 이전 드라이버가 발송처에 늦게 도착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부족했는지 스프링필드에도 늦게 왔다. 그러고보면 나처럼 제 시각에 배달하는 드라이버도 드물다. 배달 시간에 맞추기 위해 개인 시간을 줄여서라도 최선을 다 하는데, 그렇지 않고 개인 볼 일 다 보고 움직이는 사람도 많다.   

자다가 문자 소리에 깨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트레일러가 도착했단다. 준비하고 야드를 다 둘러봐도 트레일러가 안 보였다. 공간이 부족해 다른 곳에 세웠나 싶어, 드라이브라인업에 가서 트레일러 위치를 물었다. (트레일러에 전송 장비가 있어 GPS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아직 인바운드에 있단다.

그 시각 들어오는 트레일러는 두 대였다. 이런 희안한 일도 있나. 내가 가져갈 트레일러는 200078인데, 200076이 있었다. 뭐지 번호가 잘못 됐나 싶어 확인해도 200078이 맞다. 다른 트레일러를 확인하니 200078이다. 이런 우연도 있네.

트레일러 가져온 드라이버를 만나 가까운 곳에 내려 놓으라고 했다. 그로서도 잘 된 일이다. 나는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와쉬베이로 가서 트레일러와 트랙터를 세차했다. 이왕 늦었으니 세차한다고 한 15분 더 쓴다고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블루버드는 이제 말끔해졌다. 지난달 처음 받았을 때와 같은 상태다.

미주리 60번 국도는 길이 다소 험하지만,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무리없다. 예전에 반아님과 에릭님이 살았던 Seymore를 지난다. 스프링필드에서 약 40분 거리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16년전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온 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Seymore에서 얼마간 지냈다. 그후 캔사스시티에서 덴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스프링필드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탔다. 그로부터 11년 후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스프링필드에 도착해 프라임에 입사했다. 16년 전에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이렇게 바뀔 줄 상상도 못 했다.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는 것인가? 여러 우연과 그때마다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인가? 모르겠다.

900마일 거리 중에 오늘 560마일을 달렸다. 내일은 340마일을 가면 된다. 900마일이니 450마일씩 나눠서 달려도 되지만, 내일 7시간 걸려 배달처에 도착하면, 5시간을 더 쓸 수 있다. (하루 11시간 운전할 수 있다.) 그러면 내일 중, 다음 화물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내일 내가 배달 후 2시간 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 다음 날에나 화물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일해야 효율이 높다. 같은 일주일을 일해도 드라이버마다 버는 돈이 제각각인 이유다. H.O.S (Hours of Service) 규정을 잘 모르거나, 사용이 서툰 사람은 그만큼 수입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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