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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01. 2021

내 마음에 구멍이 뚫린 날, 네 양말에도 구멍이 뚫렸다

육아하면서 진짜 지독하게 힘든 날이 있다.


외부적으로 날이 덥고 습하고,

첫째는 어린이집 가기 싫다며 한바탕 전쟁 후에 겨우 보내고,

유난히 하루 종일 아기가 많이 칭얼대고,

배가 고픈데 앉아 먹을 시간이 없어 서서 후다닥 급하게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세수는커녕 온갖 것들이 다 묻어 옷에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있는데도,

씻기도 갈아입기도 귀찮고 지치는 그런 날  



내부적으로 내가 한없이 작고 작아져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

한숨 돌리려 우연히 들어간 sns에서 멋들어진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친구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부럽고 질투 나기도 하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왠지 초라해지는 감정들이 내 마음 안에 확 들어오는 날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예쁘게 입고 사진도 찍어 올리고 싶은데

저렇게 멋지게 커리어를 쌓고 싶은데


손가락으로는 다정스러운 댓글을 달면서도

사실은 다정하지 못한 내 뾰족한 마음에

스스로가 한심하게끔 느껴지는 날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모든 게 진짜 엉망진창인 하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계속 칭얼대는 너와 함께

내 지친 하루를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그때

네 발과 네 표정을 본 순간 빵 터졌다.




"뭐야 이거. 불량 양말이었던 거야?"

"너 표정은 또 왜 이렇게 불량스러운 건데"


내 마음과 네 표정만큼이나 불량한 태도를 가진 양말이군

산지 겨우 이틀이 지나고 한 번 빨았을 뿐인 새 양말인데



네 양말에 뚫린 구멍 보고, 그리고 그 사이로 삐쭉 나와있는 네 앙증맞은 발가락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좀 뚫리고 미완성이고 불량스러우면 어

이건 또 이 모양대로 귀여운데

네가 또 울고 찡그리고 칭얼대면 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까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내 하루가 내가 기대한 대로 안 흘러가고 내 마음에

구멍이 좀 뚫리면 어때, 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질투 좀 할 수도 있고 부러워 좀 할 수 있지.

그게 뭐가 그렇게  한심하다고.

내가 내 생각을, 내 감정을, 그리고 나를 판단하지 말아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를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해 줘야지



그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수도 못하고, 얼룩 묻은 옷을 입고 있는 나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내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 건가 우리 둘째도 방긋방긋 웃어준다.




고마워 내 아기의 구멍 뚫린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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