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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Feb 26. 2022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표현하는 정성(ft. 등원 전쟁)

행동주의 상담_강화


남편이 출근한 후,

8개월 된 아들과 6살 난 딸을 데리고 매일 아침마다 치르는 등원 전쟁 속 나는 늘 긴장되고 화가 난다.


또 늦을까 봐 초조하고, 둘째가 울까 봐 걱정되고, 첫째가 어느 포인트에서 폭발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엄마의 마음과 달리 우리 첫째는 아주 여유롭다. 밥도 천천히, 옷도 천천히, 모든 것을 천천히 한다. 마치 엄마인 내 눈에는 뭉그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급하다. (저기 어디 프랑스인가 어느 나라에서는.. 엄마는 여유롭게 아침에 브런치를 즐기고 애들이 알아서 준비하던데... 난 뭐 하는 건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 육아 아니겠는가........ 라며 합리화하고.. 다시 등원 전쟁ㅋㅋ)



시간이 나를 쪼으고 둘째의 울음소리가 커지면 결국 난 참지 못하고 크게 호통을 친다.


"신행복!!! 엄마가 빨리 양말 신으랬지!!!"


처음엔 깜짝 놀라던 아이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냥 나를 쳐다본다. 그럼 난 속이 더 부글부글하다. 그래도 마지막 한 톨의 인내심을 겨우 발휘하며, "원래는 행복이가 신어야 하는데 늦을까 봐 엄마가 신겨주는 거야"라고 말하며 씩씩거리며 양말을 신긴다. 밖은 추워 둘째 옷도 서둘러 입히고 그렇게 정신없이 등원하길 수 달째. 너무 힘들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지난주부터 내 눈에 들어온 행복이의 작은 행동.


내가 잠깐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을 때, 밥을 먹다가 쪼르르 내려와 칭얼대는 동생을 돌봐준다.

뾰족한 걸 빨고 있으면 "복댕아 안 돼 위험해" 하면서 뺏고 다른 걸 손에 쥐여준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서 있다가 혼자 잘 앉지 못하는 아이가 앉는 걸 도와준다.

칭얼거림이 좀 멈추면 다시 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는다.


내 눈엔 그저 뭉그적거리는 걸로만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빨리 밥 먹고 가야 되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게 속이 터졌는데, 제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관찰하면서 제 나름대로 동생을 살피고 있었다.


"야 그냥 놔둬. 네가 급한 거야!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 고마웠다.


어찌 보면 참 사소하지만 예쁘고 고마운 행동 아닌가?






행동주의 상담에서는 내담자에게 효과적이고 적응적인 행동을 증가하는 것상담의 목표로 잡고 상담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기법들을 활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강화 기법"이다.


강화어떤 좋은 보상을 주거나(정적 강화) 싫어하는 것을 제거(부적 강화) 시켜 주면서

특정 행동을 늘려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예) 숙제를 했을 때, 초콜릿을 주는 것 / 칭찬을 하는 것  (정적 강화)

      숙제를 했을 때, 방 청소 면제권을 주는 것 /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부적 강화)

  > 두 가지 방식의 강화 모두 다 바람직한 행동(숙제하기)을 증가시키는 어떠한 동기를 부여한다.



 강화에서 강화물은 어떤 물질적인 것도 포함되지만, 격려/ 칭찬/ 인정 등 긍정적인 상호작용도 포함된다. 많은 연구에서는 물질적인 보상보다 이러한 정서적인 보상이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일 때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고맙다"라는 칭찬과 인정만큼 강력한 강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것이야 당장에 효과를 보긴 하지만 금세 질려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들을 자꾸 요구하며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가 가지는 강화의 효과는 지속적이고 강력하다. 행동뿐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느낌을 준다. 내가 이만하면 괜찮겠다는 자기 수용감을 제공하고,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노력한 과정 그 자체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고맙다는  말은 내면화되며 자기 스스로 자신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침 시간, 여전히 내 마음은 급했다.

하지만 행복이가 보이는 사소하지만 예쁜 행동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하게 바라봐 주고, 정성스럽게 인정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말했다.


"행복아 고마워."


"뭐가?"


"엄마 옷 갈아입으러 갔을 때, 행복이가 복댕이 달래줘서."


"그래도 좀 계속 울었는데?"


"그래도 행복이가 동생 돌봐주려고 노력하는 걸 엄마가 봤는데? 참 고맙더라."


"맞아"


"고마워 행복아. 행복이가 있어서 엄마가 힘이 된다."



아이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엄마의 작은 몇 마디 말로 아이의 마음도 밝아지고 있었나 보다.


정말 아이의 작은 노력을 알아봐 주고 정성스럽게 표현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변하는구나.

정말 별게 아닐지라도 그것을 엄마가 인정해 줬을 때 아이는 마음이 밝아지는구나.


엄마가 고맙다고 표현하기 시작하자 여전히 마음은 급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난보다는 칭찬과 인정이 나가자 아이는 움직였다. 여전히 아이는 마음에 안 들면 화가 나고 소리 지르긴 했어도, 금세 돌아왔다. 엄마가 비난이 아닌 믿어주는 고마운 시선으로 자길 바라봐 주니까. 아이는 본능적이다. 다 느끼고 빨아들인다.


어쨌든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가? 이 자체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는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때가 많다.

흘려보내는 시간 속 어딘가 뾰족하고, 아프고, 잘 풀리지 않는 일들에는 걸려 넘어져 집중하게 되지만,  당연하지만 잘하고 있는 사소한 노력들에는 굳이 머물러 집중해 보지 않는다.


아침 시간 아이의 뭉그적거리는 행동에만 주목하고 개입한다고, 아이가 또 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여기고 흘려보냈었다. 조금만 더 정성 들여서 아이를 바라보면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어쩌면 당연하게 보이는,

그냥 그런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표현할 수 있는 데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정성

스쳐 지나가지 않는 정성

관심을 기울이는 정성

순간을 잡아내 고맙다고 표현하는 정성



엄마의 정성스러운 표현에 아이는 달라진다.

더 바람직한 행동이 강화되고,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이 밝아진다.



아이에게만 그럴까....


나 스스로에게도, 남편에게도 이 정성이 참 필요한 것 같다.  



쏘쏘야, 애 하나 등원시키기도 힘든데 울고 보채는 둘째까지 케어하며 등원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줘서 참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하는 엄마의 역할이라고? 그래도, 매일 그걸 묵묵히 해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남편, 최대한 빨리 퇴근하려고 일터에서 얼마나 쉬지 않고 일하는지 내가 다 알아, 퇴근하고도 아이들 돌보고 밥도 해주고 나름대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 그 노력이 정말 고마워. 가족을 위해 애써줘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나를, 아이들을, 남편을 그리고 내 주변을 조금 더 정성스레 머무르며 바라봐 주고 싶다.  

이것만큼 우리 가족에게 효과적인 강화물이 어디 있을까?


음........ 여담이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강화물을 쌓아나가 보며... 언젠가 EBS 다큐에서 본 프랑스의 엄마처럼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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