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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Mar 20. 2022

아이의 문제 앞, 엄마의 마음도 무너져 내려앉는 날에는

(예외 상황 질문)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느끼는 것에 불일치가 이는 날이 있다.

머리로는 아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함을 누구보다 알지만, 마음이 그것이 안 되는 날,

"엄마의 시선"에서 "아이의 문제 행동"이라고 "보이는" 크고 작은 어떠함들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한 그런 날, 엄마는 잘 견뎌 오다가도.. 마음이 무너진다. 


나도 그런 날이 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어떤 모습을 견디기가 힘든 날.


타고난 감각과 기질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고 불안도가 높아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불안이라는 거대한 얼음을 조금씩 녹여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내 첫째 딸.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하는 것도 내 생각보다 안전한 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의 확인이 필요한 아이. 스스로 안전해진다고 판단하기까지, 정말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일단은 얼어붙어있는 내 딸을 바라보는 것이 어떨 때 엄마로서...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교회에서 다들 율동하는데 멍하니 인형만 꼭 잡고 긴장된 채로 한참을 서 있는 그 뒷모습을 바라볼 때,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발레에 갔는데 선생님은 쳐다보지 못하고 굳어서 한참 벽만 쳐다보고 있는 딸을 볼 때,

너무 좋아하는 친구를 집에 초대했는데 그 엄마가 낯설다며 말도 안 하고 놀지도 못하는 딸을 볼 때,

사탕을 먹다가 목에 걸렸는데도, 그 사람들이 낯설어서(심지어 1년 넘게 봤었는데도..) 걸렸다고 말을 못 하고 마스크 안으로 혼자 캑캑대다가 화장실 다녀온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던 그날.  


아이 앞에서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토닥였지만,

나는 밤에 혼자 펑펑 울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일도, 엄마에게만은 편안하게 넘어가질 못하는 그런 날이 있다.

이러한 사소함들이 계속 쌓여 아이와 함께, 엄마 마음에도 불안이라는 거대한 얼음이 생기는 그런 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데도 영어 화상수업 선생님이 낯설다며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아이.

심지어 선생님을 좋아하고, 이 시간을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여태껏 잘 참고 있었는데, 잘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이 옆에서 대답해야지, 말해야지, 자꾸 재촉하고 화를 냈다.

점점 굳어지는 아이의 표정을 봐도 상관없었다. 내가 너무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끝날 때까지 인사를 안 하는 아이의 고집스러움에 화가 났다. 선생님 보기에도 민망했다.


다 끝나고 도대체 왜 대답을 안 하는 거냐고 못하는 거냐고 재촉하는 내 말에

부끄러워서 못하겠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속이 더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너 6살이 됐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부끄러워할래.

혹시나 내 아이가 내 생각보다 더 큰 문제가 있진 않을까 너무 불안해졌다. 화상 수업을 끊어야 되나, "이걸 도대체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해야 돼?" 싶다가도 이럴 때마다 끊어버리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화상 선생님이 좋다는 아이의 말에, 안심하면서도 마음이 힘들었다.


한참을 아이를 다그치고, 뒤돌아서 얘가 몰라서 이러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에 마음에 갈피를 못 잡고 애꿎은 설거지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육아가 어려운지 속이 상하고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가 끝없는 자책 속에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던 남편이 살며시 와서, 코로나 때문에 오래 격리하느라 힘들어서 그렇다고,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예전보다 훨씬 용기 있어졌다고, 괜찮아지고 있다고, 어린이집에서도 얼마나 적응 잘해주고 있냐고, 얘 나름대로 노력하는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말에 잠깐 멈춰 서서 내 마음의 불안을 녹여보기 시작했다.






여러 상담 이론 중 해결 중심 상담은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는 이론이다. 나처럼 문제에 사로잡힌 내담자에게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 꽤나 도움이 되는 상담법이다.


해결 중심 상담에서는 문제적인 상황보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탐색한다. 내담자와의 협력적 관계를 중심으로, 내담자가 가진 건강한 것/ 자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질문들을 활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예외 상황 질문하기"이다.


예외 상황 질문하기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문제가 없었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정말로 단 한순간도 예외 없이 계속되기만 하나요?"

"혹시, 이 문제가 없었을 때가 있었나요? 단 한순간이라도요. 그때는 지금과 어떤 면에서 달랐어요?"

"예외적인 상황이 더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어떻게 다르게 하고, 더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이 예외 상황 질문하기다.

내담자의 자원을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질문 자체만으로도 내담자의 성공 경험을 강화하고자 하는 있는 의도가 담겨있다.







잠깐 불안 앞에 얼어버린 내 마음을 마주하면서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쏘쏘야, 정말 행복이가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가만있기만 해?"

- 아.. 아니. 안 그럴 때도 있네. 그래도 아주 작게라도 인사하고, 노력할 때도 있어. 너무 힘들어도 웃으면서 자기의 호감을 표현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그럴 땐 지금과 어떤 면에서 달랐어?"

- 일단 엄마인 내 마음이 편안했고...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를 미리 나누었었네. 그러면 행복이 스스로가 "엄마 내가 말을 못 하겠으면 손을 흔들거나, 손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거나 해볼게요"라고 대처 방법을 말하고 실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녕하세요" 하고 용기를 내보겠다고 말하고 실천할 때도 있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 엄마인 내가 더 편안하게 믿어줘야겠다. 아이가 멈춰있지 않구나. 계속 조금씩 성장하고 있구나. 좀 더 대견하다고, 고맙다는 시선에서 아이를 봐줘야겠다. 그리고 무언갈하기 전에 충분히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어!



예외 상황이 보인다. 괜찮다.

우리 아이가 잘 해내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너무 한쪽만 바라보지 말자.


겨우 눈물을 그치고 놀이방으로 가보니 아빠와 놀면서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도 어릴 때 부끄러움이 많아서 대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아빠의 말에 행복이가 대답한다.


"나도 그런데? 그런데 나는 용기 내서 안녕하고 같이 놀자 한 적도 있어~~"


ㅎㅎㅎㅎㅎㅎㅎ 자기 스스로 예외 상황을 찾고 있었나 보다. 기특하다.






그리고... 나의 예외 상황.. 자원도 찾아준다.


아이의 기질이 알기에 정말 많이 노력했다. 처음 3년은 정말 꼼짝없이 아이와 붙어 있었고, 처음 만나는 아이의 세상인 내가 정말 안정적인 관계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정말 잘 조율하는 엄마가 되고자 정말 많이 공부했고.. 많이 애를 썼다.  

물론 내가 다 잘한 건 아니고 잘 못했을 때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아이에게 안전한 세상의 울타리를 줄 수 있는 엄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불안도가 이렇게 높은 아이가 지금 이 정도로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엄마로서의 나도 좀 더 격려하고 믿어주기로 했다.


내 불안이 조금씩 녹아지면서 아이와 나를 좀 더 믿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잘해왔던 나의 최선을 바라봐 주니,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육아에서 매 순간 반복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 속 우리는 배워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렵고, 반복되는 문제의 지점에서 우리는 계속 실패를 해봐도 괜찮다는 것을.

인생이 이렇게 지난한 과정이기에..

마주하는 어려움과 실패는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결국 엄마라는,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이에게 둘러쳐져 있는 한,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좀 여유롭게 마음을 먹어도 된다는 것을.


무엇보다 너무 앞서 나가서 생각하고 불안해하지 말자고.

그냥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에 충분히 감사하다는 걸 배운다.





사랑하는 딸아,

앞으로도 우리 함께 네 마음속,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얼음을 조금씩 녹여나가 보자.

더디고 잘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더디지만 조금씩 녹아지고 있음을 엄마는 믿어.

그냥 너는 위험에 대한 감지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더 높은 거고

아직은 어려서 힘들지만 크면서 잘 조율될 거야. 지금은 엄마가 잘 도와줘 볼게.

그리고 네가 해내고 있는 것에 더 주목하고 지지해 줄게. 네가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 모두 다 맞아. 정말 정말 잘하고 있어. 기특하고 고마워.

언젠가 네 마음속 세상에 꽁꽁 언 불안의 겨울이 가고, 이만하면 충분히 편안하다는 따뜻한 봄을 맞이할 날이 오기를,

엄마는 오늘도 기도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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