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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Mar 27. 2022

"네 잘못이 아니야" (ft. 엄마 말의 뉘앙스)


친구랑 놀다가 아이가 맞아서 상처가 났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정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지만, 종종 일어날 수 있을 법함 일이다.

내 아이가 맞고 왔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을까.

아마 많이 속상하지만 일단 아이가 아팠겠다고 공감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이야기해주고 싶을까?


대부분의 엄마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친구가 때리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해. 그래야 친구가 알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뉘앙스를 잘 살펴보면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참.. 많다..





키즈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재밌게 놀던 행복이.

잠깐 복댕이를 본다고 보고 있지 못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갈 시간이 되어 행복이에게 가보니 행복이 이마와 얼굴이 여러 군데 곰보처럼 파여있다. 깜짝 놀라 보니 옆에 있던 장난감 체온계로 친구가 체온을 잰다고 애 얼굴을 계속 찌르고 있었던 거다...


계속 같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 친구를 보는데 화가났다.

친구의 엄마는 저기 멀리서 행복이를 보던 내 표정을 살피고 달려와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한다. 정말 미묘하고 어색한 상황.. 하지만 아이들이 놀다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어떤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알기에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장난감 체온계로 내 살에 대고 콕콕 찔러보니 정말 아팠다.


"행복아 안 아팠어?" 그랬더니 아팠단다.


너무 속상해서 "아프면 하지 말라고 했어?" 했더니 안 했단다. 그냥 참았단다.


"아니 행복아.. 친구가 이렇게 해서 아팠으면 하지 말라고 했어야지, 아니 얼마나 아팠어.. 하지 말라고 못하겠으면 크게 울기라도 했어야지. 엄마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아.. 행복이 이렇게 얼굴에 자국이 나니까 엄마가 너무 속상해"


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냥 멀뚱히 있다가 하는 말. 그래도 재밌었단다.

진짜 내 마음이... 타들어갔다. 폭폭 파인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남편이 와서 같이 집으로 가는 길, 시간이 지나자 아이 이마 부분이 불룩불룩 올라왔다.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내 딸아이..

딸에 대한 온갖 염려가 올라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 자국은 생기지 않을지의 걱정, 나도 아이를 잘 관찰해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힘들었다. 나도 딸도 탓해지는 이 모든 상황 속 답답하고, 속상하고, 안타깝고, 불안했다.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며 내 기분을 좋게 해 주려는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잠깐 나가서 기도하면서 마음을 환기시켰다.

그러다가 문득 학교폭력 피해로 상담을 받게 된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이 떠올랐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엄마를 상담할 때면 당연히 엄마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번 일로도 내 마음이 미어질 정도인데... 학교폭력의 피해를 당한 아이를 보는 엄마 마음은 진짜 어떨까.... 얼마나 힘들까.)  


엄마는 속상하고, 안타깝고,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스럽고

가해 학생에 대해서 너무나도 화가 나고,

진작 말하고 털어놓지 않은 내 아이가 답답하고,

왜 가만히 있었나 이해가 안 되고...

혹여나 엄마인 내가 그동안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닌지... 여러 마음에 혼란스럽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한다.


"빨리 이야기했어야지! 친구가 너를 때렸으면 하지 말라고 했어야지! 그러지 못했으면 선생님이나 엄마한테라도 이야기했었어야지!.."


그래, 충분히 엄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물론 조금 더 빨리 대처했다면 좋았을 상황도 많다.

하지만... 엄마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상담에서 와서 가해 학생을 탓하다가도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내가 이렇게만 안 했어도..

내가 좀 더 친구가 많았어도...

내가 좀 더 잘 대처했어도..

내가 좀 더 빨리 말했어도...


......내가 조금만 더 괜찮은 아이였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학교폭력 피해 학생 아이들은 처음에는 가해 학생에 대해서 화가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와 자책, 두려움과 자기비난, 불안과 우울감에 허덕인다..


그럴 때 나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지만, 정말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 내담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잘못 대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네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아서, 빨리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아서, 친구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이건 네가 어떻게 행동했어도 일어날 수 있었어. 이건 그 가해학생이 잘못한 일이야. 다만 빨리 그것을 알아차려줄 수 있는 어른이 네 옆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고, 너도 그것을 빨리 말할 수 있는 힘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것이 속상할 뿐이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너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지, 결코 결코 단 하나도 정말 1%도 여기에 네 잘못은 없어."


정말 단호한 내 말에 아이는 펑펑 운다.

엄마 역시도 펑펑 우신다.


그런데.. 맞지 않는가.

빨리 대처를 잘 못할 수도 있고, 하지 말라고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그러지 못해서 폭력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 모든 문제에서 피해 학생의 잘못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기에.






분명 행복이와 놀던 아이도 행복이를 너무 좋아하는 게 보였었고, 어떤 나쁜 의도를 갖고 아이에게 해를 가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지금은 가피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만 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행복이에게 실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행복아 하지 말라고 했었어야지."


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에게 꼭 해줘야 하는 말은 다른 말이었다.

아이에게 가서 이야기했다.



"행복아, 친구랑 놀다가 친구가 체온계로 찔러서 많이 아팠지"


- 응 체온계로는 살살해야 되는 건데 세게 계속 찔러서 아팠어


"그랬겠다, 정말 아팠을 거 같아.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긴 건 네 잘못이 아니야."


- ...


"네가 하지 말라고 못해서거나, 네가 울지 않아서 친구가 계속 너를 찌른 게 아니야. 그건 친구가 잘못한 거야. 친구가 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행동을 했던 거야. 엄마가 아까 행복이한테 왜 하지 말라고 말 안 했냐고, 울기라도 했었어야지 하면서 말해서 미안해."


-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그래도 재밌었다고 말한다.


"그랬구나. 친구도 행복이를 많이 좋아하고, 재밌게 놀고 싶었는데 방법을 잘 몰랐던 거 같아."


- 나도 재밌었어. 같이 병원놀이도 하고, 또 마트 놀이도 했어!


"그래그래 맞아. 우리 앞으로 더 재밌게 놀려면 아프지 않게 노는 게 중요해. 오늘같이 친구가 재밌다고 행복이를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하지 마라 해야 되는데.. 부끄러워


"아 그래서 오늘도 하기 어려웠구나. 그럴 수도 있어 행복아, 당장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어도 괜찮아. 그래도 더 재밌게 놀기 위해서 아프지 않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또 찾아보면 좋겠다. 그 자리를 피해서 딴 데로 간다거나,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와서 이야기하는 건 어때?"


- 좋은 생각인데~~ 그러면 다른데로 갈게요.



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된다는걸.

다만 그게 안됐던 거다. 지금 아이의 수준에서 이 당연한 걸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엄마의 다그침은 전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

진짜 힘들지만 그냥 이 지점에서 내 아이를 위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뭔가를 생각해 봤다.


끝에는 아팠지만, 엄마를 보고 웃으며 달려왔던 내 아이는 정말 친구와 함께했던 그 시간이 재밌었나 보다. 아픈 건 아픈 거고, 그 재밌었던 시간은 또 알아주고 공감해 주어야겠지. 이런 일이 생겼다고 저 친구에게 화를 내고, 놀지 못하게 하고, 모든 상황에 커트시킨다면 그것이 아이를 더 자라지 못하게 막는 것이겠지.. 그냥 이런 경험도 아이가 자랄 수 있는 디딤돌로 여기며, 엄마가 조금 더 세심하게 지켜보며 아이의 힘을 계속 키워가 주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의도적인 폭력상황이라면, 아이가 힘들어한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분리가 우선임은 틀림없다.)



"네 잘못이 아니야"


사실 이 어린아이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다시 분명히 하고 싶었다.

다만 확실한 건 아이가 더 이상 내 눈치를 살피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왜 말 안 했냐고 다그쳤던 그 행동이, 마치 "네가 가만히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하는 뉘앙스가 풍겼다면, 그것 역시 내가 아이에게 가한 폭력이 아니었을까.


그래, 언젠가는 자기를 지키는 행동과 말을 해야 할 터였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말하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잘 대처하는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그럴 수가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가 아직은 할 수 없는걸, 엄마의 속상한 마음에 다그치고 또 억지로 할 수 없음도 받아들인다.

다그치는 것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도.

아이가 크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더 많이 내면의 힘을 키우고, 연습하고, 자라야 하고..

그때까지 엄마가 옆에서 계속 믿어주고, 지켜주고, 함께해 줘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냈다.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이도 있지 않는가.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꼭 그 아이의 잘못이고, 엄청난 문제는 아니다.

너무 속상하고 답답했지만, 그냥 거기서부터 다시 아이가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까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로 보지 않고 더 자라나야 하는 어떤 면으로 바라봐 줘야 할 것이다.  


내 아이는 자기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분명 자라고 있다.

누구보다 엄마인 내가 너를 믿어줘야지. 그리고 너의 수준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그러다 보면 아이도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건 엄마인 내 잘못도 아니다.

내가 잘못 키워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내가 그동안 뭔가를 잘못해서.. 다 아니다.

물론 조금 더 지혜로울 수 있었을 거고, 조금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고, 조금 더 잘 관찰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수 있겠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게 다 내 탓만은 아니다.


아이가 타고난 고유의 기질과 성향, 감각. 지금의 발달적 특성까지. 환경.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변수가 많고, 어려운 것이 계속 생기는 건 당연하다.

아이가 커 갈수록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일일이 너무 힘들어하면서 과도하게 나를 탓하지 말자.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더 단단해질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여겨보자.


내 말의 뉘앙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하나 배우지 않았는가.

아이도 하지 말라고 하진 못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해 보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나.


그래,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나 스스로의 노력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잘하고 있어, 괜찮아. 애 많이 쓰고 있는 거 알아. 고생했어.

그리고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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