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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Sep 30. 2021

공생의 시작 : 드디어 나를 향해 웃어주는 너


자폐 단계에 이어 대상관계 이론에서 말하는 심리적 발달 단계(마가렛 말러의 심리적 탄생) 두 번째 과정은 “공생 단계"다.



공생 단계는 공생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양육자인 엄마와 아이가 함께 붙어있는 단계이다.


생후 2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나타나는 이 공생 단계는 아이의 미소로부터 시작된다. 모성 몰두 기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시기엔 엄마의 모든 에너지가 그만큼 아이에게 집중된다. 마치 둘이 꼭 껴안은 채 융합된 모습으로 엄마와 아이가 하나가 된다. 이 시기의 아이는 아직 엄마와 나를 구별하지 못한다. 엄마가 나고, 내가 엄마인 이 시기. 항상 붙어 있기에 마치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외딴섬에서 아이의 사회적 신호를 기다리던 어느 날, 두어 달쯤 흐르니 드디어 아이가 나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눈을 반달로 휘며,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입을 벌리면서 방긋 웃는 그 모습을 볼 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찡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찡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사랑스러움, 고마움, 귀여움, 만족감..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 만큼 벅찬 기분이었음엔 분명하다. 그리고 그 미소가 또 보고 싶어서 아이를 향해 온갖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다 지어 보였다. 멍하게 보다가 또 방긋. 너와 나의 소통이 시작된 이 순간. 고되고 힘들었던 마음들이 사르르 녹았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니 혼자 신나게 모빌을 보고 놀다가도 엄마가 나타나면 갑자기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또렷하게 뜨면서 또 방긋, 그러더니 까르르한다. 방긋 웃던 네가 이젠 까르르하고 웃는다.


엄마를 반기고 좋아하는 너를 보며 네 온 세상이 엄마임에, 그래서 네 눈과 마음이 엄마를 집중하여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엄마인 나 역시 우리 아기가 내 마음에, 내 세상에 가득 채워 들어서고 있다. 더 안아주고 싶고, 뽀뽀해주고 싶고, 만져주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고, 배를 만져주고, 꼭 껴안아 준다. 그럼 또 좋다고 까르르한다. 이 사랑스러운 아기를 어쩌면 좋을까?




어느 날은 할머니에게 안겨있던 네가 엄마를 보더니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한다. 삐죽삐죽. 귀여워서 지켜보고 있으니 안으라고 큰 소리로 애앵 하고 운다. 안으니 화가 났는지 옹알이를 하며 구시렁대더니 이내 폭 안긴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앵앵 거리며 몸부림을 치더니 새근새근 잠이 든다. 잠든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목이 꺾이라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잠결에 또 방긋 웃는다.




이 “공생”의 단계가 엄마와 아이에게 주는 달콤함은 말로 형언하기가 어렵다. 뒤집기도 시작하며 손이 훨씬 더 많이 가고, 엄마를 찾아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지만 그만큼 더 사랑스러워지는 이 아이를 엄마는 팔이 떨어져라, 허리가 휘어져라 품에 꼭 안고 있는다. 모든 순간에 엄마가 필요하다고 부르는 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응답한다. 기꺼이 내 온몸과 시간과 마음을 이 아이만을 위해 쓴다. 그렇게 우리는 꼭 붙어 있는다.






홀로 존재하는 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D.W.위니컷



이 시기는 엄마인 나에겐 “모성”을, 아이에게는 “만족스러운 대상관계의 시작“을 선사한다.


"홀로 존재하는 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위니컷의 말대로, 아기 옆에는 반드시 엄마도 있다. 마치 엄마와 아이는 한쌍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붙어있는 경험을 통해 서로를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존중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시기에 온전히 붙어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일까? 관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아주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면, 떨어져 있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좌절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충분히 붙어 있어야 한다.

엄마와 붙어 있어야 할 때 충분히 붙어 있었던 아이는 다음 성장의 단계에서 엄마와 잠깐 떨어지더라도 자유롭게 세상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기어 다니며 엄마로부터 떨어짐을 연습하고 경험해볼 우리 아이.


아이의 인생을 놓고 보면 길지 않은, 아니 오히려 짧디 짧은 이 공생이 필요한 기간에 엄마로서 온전히 함께 있어주고 싶다. "온전히 함께 있음"이 꼭 24시간 내리 붙어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여러 환경으로, 어떤 이유로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길든 짧든 함께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 아이에게 집중해보는 것. 그것이 온전히 함께 있는 우리에게 공생이 주는 만족감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충분히 붙어 있음으로,

앞으로의 떨어짐을 준비하는 시기가 이 공생의 단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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