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웅진 지식하우스, 고재욱 지음)
나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14년 차 사회복지사이다. 뜻밖에도 나는 줄곧 노인 복지관에서 일을 해왔고, 노인들과의 다양한 경험들이 있다.
P16)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길은 서툴고 모자랐던 어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실업자의 생활을 맞히고 다시 현장에 복귀하여 일을 한 지 2달이 되어간다. 다시 다짐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니 날마다 새롭고 새롭다. 그런데 문 뜻 문 뜻 지난 과거가 생각이 나서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수백 번 잊어버리고 흘려보내자고 다짐을 했건만 생각만큼 그렇게 되지 않아서 너무 속상할 뿐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이 너무 생각이 든다. 그들을 어떻게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고 있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제의 나의 모습이 참 많이 부끄럽다. 세상의 많은 이들 중에 어제의 나의 모습을 후회를 사람들이 많을까? 아님 후회보다는 잘했다고 나름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많을까? 아마도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가 많이 했을 것이다.
“왜 그때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참 바보 같은 녀석!! 그래서 그렇게 당하고 있었던 거야!”
참 어리석은 일들을 지금도 우리는 하는 것 같다. 어느 누구나 과거의 나의 모습이 서툴고 모자랐을 텐데, 바보처럼 그때만 기억하고 후회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사는 것이다. 왜 앞의 해야 할 미래는 생각하지 않은 체 아직도 과거의 그것에만 집착하고 머무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 책의 내용처럼 서툴고 모자랐던 어제의 나를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남은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P61) 요양원은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들이 삶을 연명하는 곳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보살피고 치매 환자 가족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함께 나누는 곳이다. 요양원이 치매 노인들과 가족들에게 기꺼이 쉼을 줄 수 있기를, 치매 노인들의 잊힌 기억을 찾아내고 그분들이 살아온 시간을 기혹할 수 있기를, 한 사람의 지난 여정이 앞을 향해 걷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내가 그러한 일에 쓰임 받기를 나는 꿈 꾼다.
특별한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흘러가는 것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집에서 도저히 할 수 없으니 요양원이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들이 삶을 연명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요양원에 부모님들을, 가족들을 맞기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가족들을 요양원에 맞기는 것이 옳은 것이냐 틀린 것이냐 따지기 이전에 나는, 사회복지사인 나로서는 통상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전 선배들도, 함께 하는 동료들도 그렇게 해왔으니까..
삶을 살면서, 더더욱 사명을 감당하는 나로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천천히 이유를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체 그저 따라가기만 했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금방 지쳐했고 힘이 빠져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수 천 번 한 것 같다. 스스로가 납득이 되지 않고 이유가 이해가 안 되니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없었겠는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주고 싶다. 삶을 살면서 모든 것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유를 설명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해하여 행동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P70)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은 아예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한다 해도 표정이 썩 밝지 않다. 왜 그럴까? 그런 이들이 ‘치매 환자이기 때문’도 아니고, 이들이 ‘치매환자라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기억을 읽은 치매 환자라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별히 수많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대상자들의 변화를 이끌고자 하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때론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다음 해에 또 다른 성과를 기대하며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서비스를 지원하는 데 있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참여 대상자 ‘클라이언트’이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가 주 고객인 만큼 그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나 또한 그랬지만 프로그램 성과에 어떻게 낼 것인가에만 집중하고 관심을 가질 때가 참 많았었다. 클라이언트의 감정이 현재 표현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중요한 것에 빠져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속 깊은 데까지 다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꼭 놓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상자분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그 감정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보면서, 일 적으로만 대상자분들을 대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대상자 분들을 대하야겠다는 다짐을 조심히 해본다.
P80) 할아버지는 얼마든지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인데 왜 요양원에 들어왔을까? 왜 스스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서.... 더는 짐이 되기 싫어서....”
문 뜻 부모님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 부모님들도 나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힘드시고 어려우시지만 말 못 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나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도 똑같이 그렇게 참으시면서 살아오신 듯했다. 한 번도 힘들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나이가 어려서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해본 적이 없으신 분이셨으며 눈물 한번 흘리지 않으신 분이셨다. 늘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생각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숨기면서 살아오셨는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숨기지 마시고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이야기해주셨어도 괜찮으셨을 텐데... 작지만 아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었을 텐데... 혼자서 끙끙되시며 어떻게든 살아내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쓰라리고 아프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님처럼 그렇게 대하겠지? 내가 힘든 게 났지 아이들이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 절대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부모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여물지 않는 아빠였는데, 이런 과정으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아빠의 모습으로 되어가는 듯하다.
P95)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 내일은 또 무엇을 잃어버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마지막에는 내 이름 석 자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쭉 봐왔는데 그래도 다들 자기 이름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내 이름 석 자와 두 아들, 그리고 손주들 얼굴이라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언제 가는 우리 부모님도 내 곁은 떠날 생각을 하니 이른 이 아침에 마음이 참 뭉클해진다. 언제 가는 죽게 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남은 인생 가운데에서 나의 부모님에게 잊지 않는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 잊어버리고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린다고 하여도 아들과의 추억만은 잊어버리지 않게 말이다. 삶이 바빠 미처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한 그 일들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지만 오늘부터라도 부모님께 진심으로 잘해드리면서 큰 추억, 작은 추억이라도 깊이 남는 그런 추억을 드리고 싶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P111)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다 보면,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지금껏 수백 명의 노인들을 봤었지만 나는 아직까지 자식을 원망하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큰 상처가 있었고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큰 원망을 한 적이 많았다. 지금에서야 아들에게 잘하려고 하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원망을 제법 한 것 같다. 아버지는 6.25 이전에 태어나셔서 온갖 많은 일들을 경험하신 분이다. 남동생 2명, 여동생 1명, 노모 1명을 가장으로서 참 열심히 사셨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셨는데도 남동생 교수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갈 수 있는 대학까지 포기하셨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전선에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들어가셨던 분이셨다. 직장생활이 지금도 힘들고 어렵지만 그때 만해도 어렵고 힘들지 않겠는가?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버티시고 버티셨다. 새벽 6시에 나가셔서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셨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전혀 돌봐주지 못했다. 오로지 어머니께 다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그러한 아버지가 참 원망스러웠다. 친구들 아버지는 잘 놀아주고 장난감도 잘 사줬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음료수도 잘 사주지 않으셨고 사주신다고 하여도 500m 걸어서 있는 농협까지 가서 사주셨던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지금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지난 나의 아버지가 참 안쓰럽게 생각된다.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아버지가, 그렇게 아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이해가 되고 너무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우리 아버지는 그때에 참 열심히 하신 분이셨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고, 아버지는 탓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열심히 사셨던 그런 분이셨다. 결국 그렇게 사셨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P136) 치매 환자라고 해서 일상이 없는 게 아니다. 그들도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멀쩡한 사람이 보기에 느리고 불편해 보일 뿐이다. 어쩌면 매일 전날의 기억은 모두 잊고 완전히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구태의연한 일상을 반복하는 바깥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신선한 하루를 보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람들도 그렇고 나 또한 그런 것 같다. 나름 고정관념이 있어서 꼭 동일한 시각으로 그들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또한 내가 만나는 클라이언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나름 이야기를 만들어 대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의 길이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만의 세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실수를 지금도 많이 하고 있다. 혹여나 나의 세계와 관점에서 그들의 모습이 틀렸다고 판단하면 서스름 없이 나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과의 어려움의 대부분이 먼저 나의 고정관념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 호감 하며 좋아하는데 그 범위 내에서 벗어난 행동과 말을 할 경우 그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것 같다. 철철 하게 말이다.
P141) 일본 요양시설 관계자가 말했다. “인지증 환자(치매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따로 격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들을 격리하기에 바빠 보인다.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때론 보듬어주고 사랑해주기는 커녕 그를 격리시켜놓을 때가 참 많다. 예전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20년 전인가?) 아폴로 눈병이 전국을 휩쓴 적이 있다. 나도 어쩌다 아폴로 눈병에 걸려 군대 안에서 격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되도록 접촉하지 않기 위해서 한방 끝에 나의 격리 장소를 마련해두었다. 격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작은 방 안에서 아무것도 만질 수가 없었다. 더더욱 격리생활이 끝나고 아폴로 눈병이 다 회복된 후에 자대에 다시 복귀할 때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조차 아직도 나를 격리환자 취급을 하면서 슬금슬금 나를 피하곤 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나를 그렇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만나는 이들조차 내 마음속에 격리를 해놓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사회복지는 스스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자 노력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름 그들을 격리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냥 형식상의 만남이 있을 뿐 그저 그들과 나의 격리의 거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그들도 알 것 같다. 돕고자 한 사람이 먼저 격리의 거리를 먼저 두고 있다면 그들은 벌써부터 알아차려 버려서 그들도 나처럼 형식으로 말하고 대할 뿐이다. 스스로 이겨내고자 노력하기보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이다.
P190) "처음엔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대못이 박힌 것 같았지. 아주 말도 못 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겠더라고. 가슴에 못 하나가 백히긴 했는데, 그 못이 내를 아프게 하는기 아니고 내를 살게 하는 사랑 못이란 걸. “
할머니를 사랑했던 할아버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위암으로 인하여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할머니를 팔베개를 해줄 정도로 할머니를 정말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평생 할머니 가슴에 구멍을 박는 못 인 줄만 알았는데 할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으로 인하여 할머니가 남은 평생 살 수 있는 사랑의 못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느낀다.
나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 아내가 오늘따라 참 생각이 많이 난다. 결국 남게 된 우리이지만 언제 가는 헤어질 날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참 씁쓸하다. 오늘 책에서 나온 것처럼 아내의 가슴에 상처 주는 못을 박는 것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못을 박아주리라 다짐해본다. 그것 때문에 아내가 남은 인생 살 수 있게 말이다.
P196) 어르신들은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 이상을 요양원에서 지낸다. 치매 환자에게 생활환경이 자주 바뀌는 일은 매우 좋지 않다. 짧은 상담과 시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내 배우자, 부모님이 생활할 요양원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P198) 영국에서 거론됐다는 부모님 모시기에 좋은 거리에 있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거리는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 즉,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는 거리 정도에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P199) 퇴근길에 들러 안부를 묻고, 주말이면 좋아하시던 반찬 하나 따뜻하게 가져온 일이 말문을 닫았던 할머니의 마음을 연 것은 분명하다.
벌써 2달이 지난 것 같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달이 지난 것 같다. 본 책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참 생각이 많이 났고, 7년 동안 열심히 할머니를 찾아뵙고 따뜻한 음식을 전해준 어머니가 참 많이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는 갑자기 집에서 넘어지셔서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시고 요양원에 입소하시게 되셨다.
어머니의 정성이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여신 것 같다. 다는 잘 모르지만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편안하게 사셨던 것은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은 어머니 댁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었다. 아침 일찍 음식을 만드시고 부리나케 버스에 올라타 할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을 자주 가셨다. 정말 힘드셨을 텐데 어머니는 힘든 내색 한 번도 하시지 않으시고, 차를 태워달라고 한 번도 부탁하시지 않으신 체 묵묵히 그 일들을 잘 해내셨다. 어머니의 마음은 잘 모르겠으나 남은 인생 할머니에게 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또한 어머니의 그런 빚진 사랑으로 인해 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더욱 행복하게, 남은 인생 사시지 않았나 싶다.
외할머니는 다른 자식들을 잘 알아보시지 못하셨다. 그런데 어머니(둘째 딸)의 이름과 둘째 딸이라는 것은 끝까지 잊지 않으셨다. 아마도 할머니가 잊지 않으셨던 이유는 어머니의 정성이 할머니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P244) 나는 웃으며 태어나는 아기는 본 적이 없지만 미소 지으며 죽은 사람은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삶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거친 호흡이 있었고 마지막 숨을 내쉬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이상한 건 그들이 죽고 난 후였다. 그들의 얼굴은 평안했다. 입가에 미소가 남았다.
아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솔직히 없다. 그렇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음의 열차에 탈 날이 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에 평안한 마음으로 입가에 미소 짓기를 소망해본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있겠지만 남은 인생 가운데 예전처럼 치고받고 사는 것보다 행복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것들이 채워 갔을 때에 마지막 그날에 평안한 얼굴과 입가의 미소를 짓지 않을까 싶다.
P286)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특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일이었다. 제대로 사랑을 받아본 적 없기에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고, 그저 오로지 열심히만 살아온 세월을 후회하는 일이었다.
과거 나는 사람들을 참 사랑하지 못했고 후회한 일들만 많이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이 후회하면서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하루하루 다짐을 해보곤 한다. 그런데 마지막 그날도 이와 같이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직도 서투른 사랑이지만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을 조금 더 사랑하고 섬기는 일들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더욱 가족들에게도 넘치고 넘치는 사람을 전함으로써 아이들의 마음에 아빠의 사랑이 가득 넘치도록 해서 그런 사랑으로 남들을 더욱 사랑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