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그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왔던 사람입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것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다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누구나 직장인이라면 승진을 원할 것이다. 승진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하고자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이상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기회가 오면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승진의 기회가 찾아왔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이번만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 처음으로 기존 다니고 있는 회사와 비슷한 회사이 생겨나면서, 회사 인력을 뽑는다는 소식을 대학교 선배로부터 듣게 되었다. 왕복 출퇴근 시간 3시간 정도이지만 묵묵히 일하고 있던 나에게 어떻게 보면 하늘이 나에게 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할지도 모르면서 아내와 깊은 논의 끝에 기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과감하게 냈다. 아직 합격되었다는 결과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무작정 사표를 내다보니 점차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당시 결혼도 했기 때문에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그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이었는지, 그곳에서 합격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사직을 해 놓은 상태인지라 전화로 전해 들은 합격의 소식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기뻤다.
아직도 사무실이 마땅히 준비되지 않았지만 내 고향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조차 너무 좋았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전의 힘들었던 출퇴근이 아닌 너무 황홀한 출퇴근일 정도로 너무너무 좋았다.
첫 출근을 할 때 내 고향에 대한 큰 비전과 꿈이 있었다. 전부터 내 고향은 다른 지역보다 열악하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많은 꿈과 소망이 있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사회복지를 통해 기존 어렵게 살던 그곳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어려움보다 행복이 가득한 동네로 만들고 싶었다. 매일매일 나의 비전을 확인하고 다짐해 가면서 사회복지 실천가로서의 일을 하곤 하였다.
그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왔던 사람입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때론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직장인의 필수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최선을 다하였다. 하루 밤을 새워가며 성과를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야근수당은 전혀 없지만 일주일에 5번은 꼭 야근을 했어야 했다.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출근을 하면서까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마무리 지곤 하였다.
부족한 예산 확보를 위해 10여 년 동안 많은 수고를 했었다. 누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 마음에는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열정과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농담으로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어느 부서는 내려온 예산 사용하기 바쁜데 내가 속한 부서는 돈도 벌어야 하고, 돈을 써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예산을 확보했어야만 했다. 그것도 단기간 지원할 수 있는 예산보다는 장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규모 있는 예산을 받았어야 했다.
나 혼자서 해야 했던 일들은 아니었고 함께하는 직원들과 함께 풀어갈 일들이었지만 부서장으로서의 부담감은 직원들보다 더 했다.
잘했으면 했으나 그럴만한 능력도 부족하여 초반에는 애를 제법 먹었다. 상사들은 그런 상황을 알지는 잘 모르겠으나 밤새가며 만든 계획서를 아무렇지 않게 한 번에 다 고치라는 상사의 말에도 묵묵히 그 일들을 해나갔다.
노력의 결실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지시한 일이었기에 도전해 보자고 했던 일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 때문에 제법 많은 성과를 내곤 하였다.
내 힘으로 하기보다는 기관장을 포함한 많은 직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일들이지만 단 기간 내에 15억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참 대단한 일들이었다.
인간인지라 나의 성과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축하해 주고 결정적일이 발생되었을 때 꼭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줄 알았다.
“당신은 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었을 때는 회사에서도 그렇고 나 또한 앞장서서 일을 했던 것 같다. 나도 할 수 있는 능력이 한참 부족하지만 나도 모르게 앞장서서 일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지! 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생각을 했나 보다. 누가 시켜서 한 것보다는 시키기 전에 했던 것 같다. 더욱 시키지 않는 일에도, 회사의 중요한 일들에도 나름 성과를 만들어내고 원활하게 풀어가다 보니 회사 측에서도 나를 믿고 다양한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겠는가? 많은 상도 받고, 많은 축하도 받고, 칭찬을 받으니 나 또한 신나서 모든 지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내 마음 한 켠에는 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결정적일 때 나를 먼저 세워주겠지!’
‘결정적일 때 나의 편을 들어주겠지!’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그때 생각했던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이제야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 앞에서 칭찬하고 박수를 쳐줘도 그것은 그때뿐이었다. 도리어 너무 앞장서만 가는 내가 염려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날아가는 이쁜 나비만 쫒아가다가 길을 잃고 넘어지는 아이와 같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냉철한 사회생활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곳이 사회생활이 아니었는데, 필요할 때는 어떻게든 사용하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려버리는 곳이 바로 사회생활인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했었나 라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결국 상처 받은 나와 지쳐서 소진되었던 나를 미처 보지 못했다. 앞으로 가려면 연료가 있어야 했는데 몸을 불태워가며 앞만 가려고 했던 내가 참 부끄럽다.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도 봐주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결정적일 때 나의 모든 성과와 노력은 물거품 같이 없어졌다. 결정적일 때에 또 다른 상황이 발생되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을 다했는데”라고 수없이 이야기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었고, 결국 남은 것들은 관심도 전혀 없는 냉랭한 그들의 태도뿐이었다.
변하지 않았던 출근 시간 ‘아침 7시 30분’
하고자 했던 것도 많고, 무엇인가 하려고 했던 꿈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좀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곤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를 하거나, 오늘 해야 할 일 내일 할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어디서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이곳저곳의 홈페이지를 찾곤 하였다. 어느 날은 공모사업을 급히 작성하여 신청하기 때문에 공모사업 계획서를 집중 있게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모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날이면 정말 신이 났다. 나에게 큰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계획서를 통해 우리 지역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전해질 것 같아 신나게 계획서를 작성하곤 하였다.
사실 일하는 것도 행복했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조차 참 행복하게 느껴졌다. 비록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이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진심으로 출근 시간이 너무 좋았고 혼자 있는 사무실 공간은 나의 ‘행복한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회사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 많은 것을 이루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무모한 도전으로 여겼던 많은 공모사업을 감사하게도 많은 것을 이루게 되었다.
오로지 일로 여기였으면 그렇게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다. 어느 날은 달을 보며 출근을 했는데 동트는 해를 보며 퇴근한 적도 제법 있었다.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노력과 행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같이 휴일일 경우에도 밀린 업무를 하겠다고 아내에게 핑계를 대고 사무실을 출근한 적도 많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것이라도 좋았고 보다 집중 있게 일을 처리하여 많은 일들을 만들어낸 것도 참 좋았고 행복했다.
내 일처럼 여기면서 하루하루마다 최선을 다했다. 남들보다 한발 짝 더 일찍 시작하면서 나름의 사명을 조금씩 조금씩 완성시켜 나가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인간인지라 그러한 노력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다 보니 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고 인정받는 것보다 나의 열심히 인해 보다 완성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라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안 좋은 모습이 되기를 바라느냐 나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 같았다. 잘되면 같이 서려고 하고, 잘못되면 철저히 나와 떨어지려고 하는 모습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들을 신경 쓰지 말고 하고자 했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은 체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하였다. 눈에 보이고 마음으로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줄 날이 올 것이며,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름 나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그 일들을 해 왔다. 결국 마지막에는 철저히 무너졌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사명의 끈은 놓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인하여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많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였는데 내가 다니고 있었던 회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니 제법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무엇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섭섭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어느 날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상처를 받아서 그런지 도저히 마음을 다 잡을 수가 없었다. 밀려오는 외로움 때문에 나의 삶이 참 초라해 보여 질 때 아침 말씀 묵상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잡곤 하였다. 스스로 나의 삶을 반성해 보기도 하고, 하늘이 준 나의 사명을 한번 더 확인하고 확인하면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하였다.
때로는 소외된 이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나에게 있어 함께하는 동료들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도 알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무리했나 보다.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 의도치 않게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무뚝뚝한 나로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어설픈 용서를 구함으로 도리어 동료직원들과의 더 깊은 마찰이 두려웠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잘못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인 냥, 자기는 정의의 사도처럼 착각하며 이야기하는 그들이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결재판을 던지거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한 사람을 왕따 시키려고 하거나,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뒤에서 뒷 말을 해가며 나를 비방하는 등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더더욱 정말 아닌 이야기인데도 사실인 양 믿고 주도하는 사람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편을 만들어 살고자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나는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업무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지금도 사람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지금까지 몇몇의 무례한 그들로 인하여 제법 많은 상처를 받았다.
행복하고 신나는 일들이 내 주변에 많았었겠지만 도리어 상처 주는 그들로 인하여 소소한 행복조차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불편한 그들과도 잘 지내고 싶었다. 누가 잘했냐 못했냐고 따지기보다는 그들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사실 그때뿐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차 한잔 먹으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자주 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사실 실패한 경우가 많았었다. 벌써 나를 통해 상처를 제법 많이 받았는지 나의 나름 전하는 위로와 지지조차 다르게 느끼곤 하였다.
“밥 사 주는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때는 밥 사주면서 나름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나름 어려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가족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동료와 상사가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들의 무례한 것들로 인하여 도리어 나도 상처를 제법 받았다. 나도 할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렸을 뿐인데 그들의 말과 행동들이 나를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하였고 더더욱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속상하여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했던 그 날을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일들이었다.
몸과 마음만 상처 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직장 내에의 나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고 상사와 회사로부터 직원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 리더십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되어 결정적일 때에 작게나마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던 것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가였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나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몇몇의 사람들로 인하여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고 나를 더욱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일일이 찾아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나쁜 사람이 되었고 절대 변화되지 않는 고집스러운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실은 꼭 나쁜 사람, 어렵게 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서로서로 도와주는 평생의 참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직원들도 있었다. 나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작은 편지와 달콤한 초콜릿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직원들도 있었다.
때론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고 묵묵히 자기의 을 해가면서 도리어 모든 영광을 나에게 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서장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며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지금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어쩌면 그들 때문에 내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는 이러한 좋은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그때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사실 나를 힘들게 만든 사람이 왜 이리 많냐며 불평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정말 외롭고 힘들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그저 혼자서만 어떻게든 버텨왔기 때문에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더더욱 나에게 잘해주었던 사람들보다는 그저 힘들게 했던 무례한 사람들만 줄곧 생각이 나서 그런지 그 외로움이 더욱 쌓여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반려된 사직서
“저는 사직서를 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도 전혀 아니라고만 하였다. 도대체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냐며 물어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한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회사가 너무 싫고 화가 났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회사는 그저 회사뿐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한 나를 인정해달라고 수십 번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냉정한 판단들이었다.
나름 해결될 길이 열렸다. 다른 곳에서 채용 소식이 전해졌다. 좀 더 나은 자리였다. 기존 해왔던 업무와는 조금은 달랐지만 이 곳보다 났겠지라는 생각이 컸다.
“당신들의 선택이 후회하게 만들겠어!”라는 생각이 컸다.
아직 확정도 되지 않았지만 온라인 SNS을 통해 작별의 인사와 다른 곳으로 이직하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였을 때는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사실 그때 당시 만해도 나를 존중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었다. 확실히 생각했던 자리였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못 가게 되는 소식에 제법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나는 벌써 사직서를 내버린 상태여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실망과 상처를 받았었는데 당장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도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들었다.
당장 일을 못하게 되니 정말 큰일이 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회사의 기관장에 찾아가 나의 사직서를 다시 반려해달라고 할 자신이 정말 없었다. 자존심이 문제였고, 혹여나 반려를 해 주지 않아 돌아오게 될 그 상처가 더 두렵고 어려웠다.
며칠, 몇 달간 일을 하지 않고 다른 곳을 알아볼 생각이 먼저 컸다. 이제 며칠만 더 일하게 되면 난생처음 경험하는 실직자가 될 생각에 그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실직자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실직자의 상황도 모르며, 실직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솔직히 잘 모르기 때문이다.
참 당황스러운 상황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은 체 미리 낸 사직서를 반려해달라고 이야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컸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직도 자고 있는 자식들과 아내를 보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그저 지나쳐서 볼 장면이었는데 그때는 달지 보였다.
가장이라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평생 해 보지 않았던 자존심을 한번 꺾고 조심히 말씀드려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아이들과 아내가 중요하지 나의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저의 사직서를 반려해 주세요!”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기관장에게 찾아가 나의 사직서를 반려해달라고 말씀드렸다.
회사 대표실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만 바라보고 평생 책임져야 할 식구들을 생각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 대표의 표정과 반응은 썩 좋지 많은 않았다. 비록 기관장이 사표를 반려해주지 않겠다고 말하여도 나는 사실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 마지막 버튼을 누른 것이었다.
마지막의 버튼이 불발탄일 수도 있겠지만 혹여나 폭탄이 되어 나를 날려버릴 수 있어도 나는 용기를 내서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부서장이 다시 일하게 된다고 해도 예전같이 일할 자신이 있느냐?”
사실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찾아왔는데 평소의 그분의 모습처럼 냉철하게 대하는 모습이 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오로지 사직서를 반려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사장님이 다시 반려해주라고 말씀하시니 사직서를 다시 반려해주겠습니다!”
다시 일하게 되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벌써 다른 곳으로 갈 거라는 걸 아는 직원들도 무지 당황스러워했다. 벌써 수고 많이 하셨다며 작별 인사를 어느 정도 했는데 다시 일하게 된 소식을 듣게 되니 정말 당황스러운 표정들이었다.
1달이 어느새 지나간 것 같다. 새해가 밝아오고 이번 한 해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에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니 한번 일할 볼 생각이 없는 전화였다.
훈훈한 마무리 그리고 아쉬운 마무리
다른 곳에서 새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기도 했고 더 이상 예전같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내 마음 안에는 아직도 섭섭함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내는 사직서는 절대 반려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곧 가게 될 곳이 정해졌기 때문에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내 안에 아직도 있는 섭섭함 들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들도 많이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
‘다른 곳에서 더욱 잘한다면 그것이 나름 복수 아니겠어?’
앞선 나의 미래만 생각했을 뿐 그 이상으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체 새롭게 일하게 될 그곳을 생각하며 나름 마음도 정리하고 10년의 세월의 짐들도 하나하나씩 정리하였다.
미운 마음이 많이 들지만 직원들 한 명 한 명 불러 “미안했어요!” “고마웠어요!” “고생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도 쌓인 상처들을 지워주기를 바랐다.
날카로우면서도 일을 벌이기만 한 부서장 곁에서 고생만 한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기도 했다. 특별히 무엇을 해 줄 것이 없었다. 예전과 다르게 보다 진심으로 다가가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퇴사하는 날짜가 많이 남지 않아서 그런지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해야 할 나의 일에 대한 부담스러운 생각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의 삶을 반성하며 하나하나씩 정리하는데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너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이곳에서 나가기 싫었고 어떻게 보면 10년 동안 베테랑처럼 살아와서 이젠 이 일들도 많이 익숙해져 갔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나를 원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만 고생한 것 같아서 섭섭한 마음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간에 나를 불러서 고생했다는 말을 건넬 줄 알았는데 끝가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밥 한번 사주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이야기를 해 줄 법한데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었다.
정말 끝이 났다. 정말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꼭 내가 진 듯 한 기분이 많이 들었지만 정말 거기서 끝이었다.
10년의 인연은 정말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몇 달간은 섭섭함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고, 억울한 감정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역시 사회생활은 냉정하다니까!’
새로운 도전의 끝
“부장 자리가 났는데, 한번 일해 볼 생각이 없어?”
갑작스럽게 면접을 보게 되었고 어떨 결에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좀 더 높은 자리에서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듯했다.
새롭게 일하게 된 회사에서 예정일보다 좀 더 일찍 오기를 바라여서, 3일 전에 먼저 출근을 시작했다. 회사 사무실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새롭게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10년 동안 일했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고 하니 기대가 매우 컸던 것 같다.
새로운 직장의 부장의 역할이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새롭게 일하는 모든 것들과 이번 기회로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져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위의 상사의 모습은 평소 만났던 사람과는 정말 달랐다. 때론 무례하게 하는 것 같아 직장생활이 참 불편했다.
일한 지 1달도 안 되는 시점인데도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시간을 두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나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아님 자기 손안에 있게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직장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또한 낯선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겠지라는 생각에 그의 말과 행동에 박자를 맞혀주려고 하였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이 싫었지만 그래도 그 환경에서 살아나고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마음과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이 찾아오게 되었다.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내가 시간을 많이 줬는데 잘 못하는 것 같으니 기존하였던 부장 업무 중의 일부를 자기한테 넘기라는 것이었다.
“그럼 그 이야기는 제가 그만두라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란다. 오로지 회계업무만 넘기라는 거란다. 그런데 업무만 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두라는 신호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족까지 들먹이며 나를 내 쫒으려고만 했던 그의 행동에 어떻게든 싸워 정의를 지키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상처 받은 그것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너무나도 상처 받은 나로서는 그 사람과의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또한 일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중요할 건데 이렇게 존중받지 못하고 늘 괴롭힘을 받는 것 같은 이 곳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다짐했던 모든 비전들과 꿈들이 한순간에 없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욱 나를 비참하게 느끼게 한 것은 나를 코너까지 밀고 결국 그만두게 만들었던 그 사람의 태도였다. 인간적으로 그의 실수는 분명한데도 그는 자기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만 하는 것과 나 때문에 이런 사달 일어났다고 하는 그의 변명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악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지 도리어 이 세상이 너무 싫었고 무서울 뿐이었다. 또한 그 사람뿐이었겠는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려고 하는 이들과, 힘들어하는 당사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높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단지 회피하는 직무 유기하는 이들, 분명한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사람 곁에 바짝 붙어있는 이들을 보면서 정말 진절머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들의 세상에서 무엇인가 가치를 가지고 일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하나의 소중한 가치 하나로 살아왔는데 그것마저도 잃게 되니 더 이상 일할 자신이 없었다. 또한 나도 그들과 그저 똑같은 그 나물에 그 도토리가 될 것 같아 하루빨리 마음을 접고 돌아서야만 했다.
당장 일할 곳이 없었지만 이렇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수 천 번 새롭게 다짐을 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저 포기하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길도 없고 답도 없는 이 길 ‘광야의 길’을 어쩌다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였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온 내 모습이 참 많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나만 낙오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이젠 이 세상도 다 싫고 내 주변에 있는 이들 조차 다 싫었다.
인생의 한번 걸릴만한 감기로만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너무 싫어 죽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쩌다 시작된 실업자의 생활이 너무 힘이 들었다.
‘이 길을 꼭 가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