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한 남자의 첫번째 이야기
다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최소한 예전같이 살지 않겠노라며 수 천번 반복하며 다짐을 했었다. 또한 경험하지 않는 일이겠지만 지금보다는 백배 아니 천배 이상으로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난 많은 일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상상만이라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과거의 사람들과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맞추지지 않기 때문에 예전보다 힘듬이 덜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과감하게 관계를 끊어버리면 되고, 연락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못했다. 직접 만나는 일들이 예전만큼 줄기는 했었도 요놈의 SNS를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소식 때문에 어떻게든 그들에게 또다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몹쓸 짓을 했던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죽을 것만 같았다. 더더욱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전화를 통해 여러 가지 소식들이 전해진다는 것들이었다. 사실 전화를 통해 나쁜 소식들이 들려오면 언제부터인가 ‘쌤통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그날 만큼은 기분도 좋아지고, 평소와 다르게 잠이 잘 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쌤통 같은 좋은 소식보다 나름 좋은 소식이 나한테 들려지면 왜 이리 억울해지면서, 과거로 다시 돌아간 듯 한 기분이 여러번 들었었다.
그저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을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는데, 이제는 과거의 그것들로 힘들어하지 말아야하는데 아직도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예전과 같이 살아가는 연약하고 연악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처음에 다짐한 것에 대해 한계를 느낄 때
이제 아침에 일어나 씻고 이른 출근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가 언제 그렇게 힘들었나 싶을 정도로 아침 출근이 이제 완전 일상이 되고 말았고 그 전의 고통스러웠던 삶은 어느 정도 잊어버린 듯 하다.
더더욱 내가 다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날마다 새롭고 기쁘다. 이제는 당당한 아빠가 될 수 있고, 든든한 남편이요 한 부모의 아들이 될 수 있어서 나는 날마다 기쁘다.
내 자신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방 안에서 틀어박혀 의미없는 일들을 반복해서 하는 내가 참 한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는 것에 그저 기쁠 뿐이었다.
나는 다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 몇가지 다짐을 하였다. 너무 밑에까지 내려간 사람인지라 다짐한 것들이 곧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나에게는 있었다. 첫 번째는 절대 분노하지 않으며 만나는 이들을 존중해야겠다! 두 번째는 사명을 가장해서 내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세 번째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 네 번째는 절대 사람들에게 이끌려다니지 않겠다!
정말 다짐이 정말 화려하고 확신이 꽉 차여있게 보이지 않는가?
나는 기도를 할 때도 이러한 것들을 수천번 반복해가며 내 마음에 단단히 심어놓기를 노력하였다. 이러한 다짐을 하루 빨리 이루어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빨리 취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아침의 기쁜 출근길이 아마도 이러한 생각들이 가득차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막상 새롭게 가게 된 회사에서 처음으로 나의 미션을 달성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다짐을 잘 완성 시켜나가게 하는 첫 시험대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이루어나가고자 날마다 노력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런 다짐을 실천을 해보고자 하니 맘 같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더욱 옛날 습성들이 아직도 내 안에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옛날 나의 나쁜 습성들과 말투가 툭툭 나오게 되어질 때면 나는 제법 많이 당황스러웠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회의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다했는데, 몹쓸 예전 습관대로 내 말이 먼저 불쑥 불쑥 나올때가 많았다. 먼저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려고 노력을 다하려고 하는데도 불쑥 불쑥 내 말이 먼저 나오고, 회의의 주도권을 내 쪽으로 끌고자 노력하는 내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언제는 또 이러다가 예전처럼 살겠구나라는 생각이들어서 최대한 나의 말을 줄이고자 했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상황이면 입으로 내 입을 막을 정도였다. 참 웃긴 상황일지 모르나 어떻게든 실천해보겠다는 나의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물이 막혀 있을 때에
나를 힘들게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앞에서도 입이 달토록 많이 이야기를 했었지만 정말 같은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악할 수가 있을까라고 납득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다소 용서하면서 흘려보내려고 노력하였는데 이것들도 맘같이 흘러가지 않았다. 길지는 않지만 짧게라도 잊으려고 노력할 때쯤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들에 대한,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다 잊어버린 일들이었는데 참 감사하게도 지인 때문에 또다시 그들이 생각이 나고, 그때 당시의 분노의 감정이 밀려오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냥 땅 깊이 뭍어놓았던 일들이었는데, 다시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꺼내먹는 김장김치 같았다.
모든 것이 회복되어졌다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과 다르게 조금 더 나아진 마음가짐으로 힘들었을 당시 나를 많이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소중한 지인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기 전에 단단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이제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참 감사한 지인분들을 만날때면 항상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제 힘들지 않다라고 말하는 과정 속에 또다시 날 힘들게 했던 것들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날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날 힘들게 했던 그 상황을 또 다시 끄집어 내니 어쩔수 없이 또다시 내가 힘들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는 그러한 상처들과 아픔이 있는 듯 하다. 머릿속에 이제는 힘들지 않다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찌꺼기 같은 몇가지것들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세상의 불분율이 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나는 순간 바뀐 삶 때문인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것이라고 믿는다. 그냥 지나가는 시간 말고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연습 가운데 언젠가는 그 과거의 상처들이 나를 전혀 상관치 않게 하는 날이 올 것 임을 믿는다.
마음같이 흘러가지 않는 삶 가운데에서
요즘 나는 지난 과거의 아픔을 돌이켜보면서, 불쾌하고 어려운 마음들이 다시 나의 삶을 지배하는 듯 했다. 수차례 잊어버리고 흘려보내려고 애쓰고 있으나 내 맘 같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의지와 다짐으로 지난 과거들을 잊으려고 노력하려고 했고 좀 더 다른 무엇으로 가능하면 좀 더 좋은 것으로 나의 생각과 삶을 채어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생각들 때문인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 또 다시 어려운 마음과 더 큰 고통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시편 69: 4)
참 오랜만에 잠을 설치게 되었다. 과거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이 다시 찾아와 밤새 나를 힘들게 했다.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그 상황과 느꼈던 그 모든 감정이 똑같았다. 힘들게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그 길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 밤이 너무 무섭고 힘이 들었다.
‘너는 그 사람을 용서 못해?’
‘그렇게 당해놓고 그들을 용서한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억울하지 않아?’
답답한 것은 억울한 일들이 계속 생각이 나는데도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와 잘못을 전혀 알지지 못한체 아무렇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아 그래서 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 같았다. 문뜻 들려오는 이야기는 자기는 잘못은 없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 뿐이었다.
지금 나의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다. 나를 미워하는 자 때문에 빠진 이 깊은 물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나오길 원하는 마음이 큼에도 내 눈 앞에 있는 그 당당한 그 모습들이 나의 의지조차 꺾고 만다.
솔직한 모습이 나에게 필요한 듯 싶었다. 숨기고자 했던 내 마음을 다시 열어놓고 어떻게든 그것들을 해결해야만 할 듯 싶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때 참 끔찍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인생도 한참 남아 있는데 아직도 그 일들로 인해 힘들어하면 사는 것보다 죽는게 더 나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지극지극하게 달라 붙어있는 그것들을 버리거나 없애야만했다.
지난 14년 동안 소진과 타성의 연속이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어떤한 계기로 다시 일어서는 일들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 반복적으로 해 왔던 것 같다. 다시 일어섰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왔었지만 내 마음속에 깊은 박힌 상처와 아픔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체 살아간 나의 지난 삶이 참 후회스럽다.
그 어느날 나도 모르게 쌓여져만 갔던 것들이 넘쳐 흘러내리고 내 몸 전체를 축축히 적셔가는 줄 모른고 살던 내가 그 일이 있는 후에 정말 순식간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터져 버린 그런 더러운 것들은 전혀 내가 손도 못 댈 정도로 끔찍했다. 준비만 되었어도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나는 정말 몰랐다. 왜 이리 눈치도 못 챈 채 살아왔는지 정말 내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더욱 내 마음을 쓰라리게 만든 것은 지난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에 많은 이들을 통해 나에게 위험 신호들을 보냈을텐데 아니면 내 주변으로 흘러가는 그 것들이 아마 나에게 강력히 위험 신호를 수차례 보냈을텐데 나는 전혀 눈치도 못한 채 그저 나의 멋진 모습에 취해 살아왔던 것 같다.
소통이 되지 않고 욕심만 부리는 나의 모습이 제법 거북스러웠을 텐데 나는 무엇에 그리 집중하며 살아왔는지 남들의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바쁘게 살아가는 나름의 핑계거리를 무기를 삼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가 조금 더 겸손하고, 싸우기 바쁜 것보다 진실된 소명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지금과 같은 삶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과 나 또한 많은 이들과 잘 어울려 그들에게는 조금이나마 행복한 추억의 선물을 주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마구 밀려온다.
그들의 삶과 마음등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 그것들로 서로가 서로를 겨누며 살아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분과 관점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들도 나름 각자의 생각과 가치 등으로 최선을 다해왔을텐데....그들이 틀렸다고만 생각했던 내 자신과 어떻게든 그들도 그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이들이 왠지 안쓰럽게 생각이 든다.
문 듯 그분도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랬는데 아픔을 주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버지로서 내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한 참 어린 아이들로 보게 된다. 비록 잘못한 일을 하게 되어도 자식들을 정말 사랑하고 사랑하여서 혼을 내는 것을 수천번 머뭇거리기 마련인데 그 분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가 깨닫고 돌이키기를 바랬었는데 도리어 더 깊이 숨어버리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얼마나 아파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지금에서야 마음이 참 쓰라리고 아프다.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픔과 어려움을 하나라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할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결단을 내린 듯 하다. 그래서...그래서...그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결국 칼을 뽑으신 듯 하다. 혹여나 칼 모서리에 찔리고 큰 상처가 나지 않을까라는 노심초사의 마음이 있지만 사랑하기에,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사람을 통해 아픔이라는 가시를 나에게 건내셨다. 더 깊은 상처가 나지 않고 또한 베이지 않도록 조심히 하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아픔으로 인해 그저 내 마음이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제야 느껴지고 깨달아진다.
광야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들
나는 참 못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리 공부도 잘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별 볼일 없는 대학에 재수까지 하면서 어렵게 들어간 사람이었다. 당연히 대학교 생활은 그리 적응하지 못했고 대학성적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나는 늘 욕심은 많지만 현실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연히 집 근처에 살고 계시는 지인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이리 저리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에 그 지인 분을 통해 어떻게 보면 나의 인생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분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신 분이었다.
새롭게 취직을 하고 고군분투하며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잊지 않고 그분께 연락을 드리며 살 용기와 힘을 얻곤 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여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셨고, 그저 내 편에서 생각해주시고 용기를 주셨던 그런 분이였기 때문이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과 연락을 하며 지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믿고 의지했던 그분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그분의 소식에 도저히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너무 충격적인 소식인지라 제법 충격을 이만저만 받은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서스름없이 전화를 드렸을텐데 전화드리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면 흥분된 내 마음이 잠시나마 가라앉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하였다.
오늘은 그분이 내 꿈에서 나타났다. 평소와 다른 얼굴이었고 너무 힘들어하며 나에게 부탁하시는 듯 하셨다. 꿈이라서 그런지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꿈이나마 그분의 얼굴을 뵐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흔이 되고 나서 그런지 이런 저런 소식들이 많이 들려온다. 되록이면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면 좋으련만 왜 이리 나쁜 소식들이 몰려오는 걸까?
지난 3개월 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 속에 살았었고 일상적인 삶에 복귀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어렵게 벗어난 나의 삶 가운데 예전의 그러한 삶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이 컸다. 과거와 같이 잘난 척 하며 살지 않겠고 나보다 남을 존중하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그런 자가 되겠다고 수 천번 다짐을 하면서 녹록치 않는 지금의 삶을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하는 나로서는 지인의 아픈 소식이 평상시와 다르게 몇 배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수를 한 지인의 모습을 탓하기 보다 나 또한 그러한 고통의 삶을 살아왔던 입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는 그의 모습이 어느때보다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당연히 실수와 잘못은 그에 맞는 댓가를 받아야한다지만 깊은 고통 안으로 들어가 있는 그가 매우 안쓰럽고 꼭 내가 다시 그 깊은 곳에 들어간 듯한 답답함과 어려움을 또다시 느끼는 듯하다.
고통을 받아봐야 고통을 받은 사람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나는 그를 이해한다. 더더욱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오로지 홀로 남겨진 그런 광야의 중심에 있지만 광야의 축복을 하루 빨리 찾기를 바랄뿐이다.
광야의 중심에 서보니 보다 나의 지난 삶을 한번 더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지난 나의 삶에서 미처 보지 못한 나의 모난 부분을 이제서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감히 그러한 기회들이 광야의 축복이요 선물이라고 말을 한다. 바쁘게 살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미처 놓치는 부분도 많을뿐더러 가장 중요한 나를 보지 못하고 처음과 다른 어색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광야의 길이 본질적인 나를 다시 찾게 되고, 본질적인 사명을 다시 찾는다는 점에서 지난 광야의 길이 어찌 보면 기회요 축복의 길이었다.
당연히 광야의 길은 어렵고 힘이 든다.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죽고 싶은 생각 여러번 할 정도로 외롭고 힘든 여정이다. 그런데 힘든 여정만큼, 힘든 것 이상으로 평소 겪어보지 못한 그것들을 경험하고 알게 될 것이다. 사실 광야의 길이 허락되어지는 것은 아무나 허락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기에 광야의 길을 허락된 것 같다.
지금 나는 그를 도울 수 없고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마음으로나마 그를 응원하며, 무사히 광야의 길을 졸업하기를 기도해본다.
높은 위치에서 느껴지진 부담감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하게 되니 해야 할 일도 참 많고 알게 모르게 부담되는 일들이 참 많다. 나의 본질적인 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이고 어떻게든 내가 속한 회사를 좀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나는 솔직히 마음이 여린 사람이며, 내 몸도 제대로 잘 이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인데 내가 누구를 끌어야 하고, 그들과 다른 입장과 역할을 항상 만들어야만 했다. 어느 누가 나를 향해 비방하는 것들이 아닌데도 내 마음에 어느새 들어온 답답한 그것들이 더더욱 나를 조여 오는 듯하다. 부족한 경험을 끄집어내며 억지로 끌고 가는 어리숙한 내 모습을 보면서 그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정상에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그 정상은 보이지가 않는다.
왜 이리 막혀있는 벽들이 많은지, 왜 이리 100kg 돌을 양다리에 묶어 놓은 듯 한걸음 한걸음마다 무겁고 힘들기만 하다.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용기와 힘을 줄만 한데 들여오는 바람의 소리는 그저 머물러 있기만 하고 정체되어 있는 나를 향해 비난의 소리이기만 하다.
이것들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들인데 줄곧 나만 지켜보고 있는 그들의 눈들이 참 부담스럽기만 하다. 왜 이리 그들의 시선이 부담되고 힘이 들까?
어쩌면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싶다. 내가 당당하고 옳다고 생각이 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지금 걷고 있는 이 발걸음이 부끄럽지 않을 텐데...
또한 아마도 나 스스로가 다 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 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의 경험과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어주셨다. 나를 그저 사용해주셨을 뿐 내가 힘써서 한 것들은 정말 없었다. 내가 하려고 하고 내가 이겨내려고 했을 때 실패의 쓴맛을 본 것이었고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구하고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에 이루어지는 모습을 제법 많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잘난 놈이 아니다. 그렇게 문제를 보다 쉽게 풀어갈 힘이 있는 충분한 경력자도 아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아직도 나는 나의 경험과 경력을 믿고 하려고 하는 그런 연약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애쓴다고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고 항상 겸손히 최선을 다했을 때 언젠가 이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이다. 하는 것마다 다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싱거운 날들이겠는가? 실패도 해보면서 성장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기쁨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시선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판단의 일부는 겸허히 받아들이며 고치면 되겠지만 그들의 모든 판단에 맞혀갈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시선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해되는 것은 불가능할 뿐이다. 너무나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시선의 신경을 쓰고 살았는지 모른다. 과거에도 남들의 시선들에 따라가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가? 그들은 그저 섣부른 판단만 할 뿐이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포장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칼날 아니었는가? 나는 남들의 시선에 맞추기보다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에 맞춰야 할 것이다.
어느새 새롭게 출발한 이 길이 4개월이 지나간다. 처음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바꿔놓을 듯 한 마음이 정말 컸는데 어느새 꺾어진 내 자존심은 이젠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살지 않기로 수천번 다짐하고 결심을 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동안 자기 답지 않게 살지 못해 얼마나 답답했을꼬? 나 스스로는 욕심과 참 교만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고 단지 나를 위해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는 하지만 나는 몹쓸 죄를 지어가며 아직도 그 죄를 훌쩍 넘어가지 못한 채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이렇게 죄 많은 자를 사랑해주시고 나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하고 죄송스러운지 모른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며 수 천 번 약속을 했는데 예전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럽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정도의 부담감은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 그 부담감이 나의 세상을 더욱 힘들게 만들 것 같지만 부담감이 없다면 나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 원치 않는 다른 곳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나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부담감을 싫다고 내 던져버리거나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짊어지는 것도 사람으로서 살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부담감이 담겨 있는 가방 안에 이런저런 쓸데없는 것들로 더욱 채워간다면 좀 더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앞길을 도리어 막아설 뿐이다.
또다시 그만두고 싶어 질 때
작은 오해로 나한테 전해지는 말들 때문에 참 많이 힘들고 어려워진다. 사명을 감당하는 나로서는 이들의 무례한 말들로 인해 힘이 빠지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최근 들어서 그러한 생각들이 더 많이 들어서 어렵게 온 직장을 다시 포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계속 밀려온다. 과거 이런 어려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했던 일들이 계속 생각이 들어 가슴이 막히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삶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무엇 일까?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늘 반복적으로 나한테 찾아와서 힘들고 어렵게만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주변 사람에게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으면 꼭 기다린 것처럼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하면서 비방하고 비판을 한다. 곁에 가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잘됐다고 생각하는지 그저 비판에만 집중하는 그들을 보게 된다.
좀 더 나은 자리, 높은 자리에 서게 되면 많은 이들에게 비방의 목표물이 되곤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자기 밥그릇 챙기고자 어떻게든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만 한다. 왜 그랬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라고 확인은 절대 하지 않은 채 그저 비판하고 비방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욱 쓰리고 아프다. 나름 나의 이유와 생각이 있고 상황이 있는데도 그저 듣지 않으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속상하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로 인하여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새 죽고, 그저 포기하고 싶은 생각만 들뿐이다.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잘하고 싶은 생각을 당연히 많이 든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고 좀 더 친절하게 그리고 좀 더 멋지게 일을 하고 싶었다.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여도, 야근을 하여도 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완성해하기 위하여 보다 기쁘게 일하고자 하였다. 아직도 불안정한 지금 회사 상황을 잘 고려하여 예전과 같이 재촉하지 않고 함께 그 일들을 잘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결국 내 귀에 들려왔다. 더더욱 함께 일하는 이들이 곧이곧대로 나에게 전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내가 왜 해야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한 예전과 같은 일들이 또한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 같은 답답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괜히 눈물도 나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짜증도 많이 난다. 누구한테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듣는 이들도 또한 동일하게 나를 비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혼자만 끙끙되고 있다. 일일이 찾아가 내 억울한 상황들을 이야기를 하여도 또다시 나를 비방하고 비판할게 뻔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저 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사도행전 23:12~15) 그러나 그렇게 괴롭히고 죽이려고 하였던 유대인들은 결국 바울을 죽이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남들이 나를 죽일 수 없고 나의 삶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의 삶과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비방하여도 나의 삶을 어떻게든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심을 믿는다. 또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만큼 잘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분도 곧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없지만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항상 정신을 차려야 할 뿐이다.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서 정말 생각대로 되는 것들이 없는 것 같다. 단지 스스로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조급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이 더 문제인 듯하다.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서 천천히 해 나가는 것이 어찌 보면 지혜로운 모습은 아닐까 싶다.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그리고 최고 높은 위치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제법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다. 지금 직장의 상황이 좋지 않아 하루빨리 수습을 하고 싶었던 것 같고, 다른 이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재촉하며 조급하게 살아왔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조급해지니 여유가 없어지고 민감해져서 작은 소리에도 크게 반응하여 결국 그만둬야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이른 것 같다.
사실 상황이 녹녹지 않다. 또한 이후의 상황이 꼭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그분을 한번 더 생각하면서, 그분께 맞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세상을 지으시고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