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광야의 길을 걸었던 한 남자의 두번째 이야기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
현재 아들 둘이 있다. 솔직히 딸을 원했으나 어쩌다 아들 아빠가 되었다. 자식이 둘이 있는지라 혹여나 딸이라고 확신과 자신이 있다면 어떻게든 셋째를 도전했을 텐데 그것도 모르는 것이기에 혹시나 아들 셋이 되면 큰 일이기에 셋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딸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딸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아들과는 분명 다를 거고, 이쁜 짓 많이 하고 애교가 넘치는 딸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조차도 장난꾸러기 아들 때문에 체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 덕분에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살짝은 딸을 원했고, 딸만 생기면 정말 경험하지 못한 세계, 천국 같은 삶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지속적인 실업자 생활을 하다 보니 세세한 것 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언제는 아내가 엄청 아파 보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힘들어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카톡을 통해 하나의 사진을 아내가 발송하였다. 무엇인가 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바로 볼 수 없었고 몇 분 뒤에 아내가 보낸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은 바로 “임신테스트기”였다.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였다. 나는 바로 보자마자 아내를 찾았다. 그리고 너무 기쁜 마음으로 아내를 안아주었다.
“고마워 자기야!”
나는 정말 기뻤다. 지금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하늘에서 위로를 주는 듯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울 걱정스러운 생각보다는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한 분이 계셨다. 그건 바로 장모님이었다.
장모님은 아내가 아들로 인해 충분히 고생하는 걸 아셨기 때문에 괜히 장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고, 시험 성적을 아뢰듯 어떻게 이야기하실지 혹시나 실망하시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실까 이만저만 걱정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걱정하는 것과 달리 장모님은 축하한다고 말씀하신다. 딸이면 좋겠지만 아들도 괜찮다며 셋째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실업자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쁨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가정의 기쁨 소식을 널리 널리 전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축하하는 메시지였고, 직접 전화를 주면서까지 셋째 임신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나의 상황을 아는 몇몇의 사람들은 염려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 실업자인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겠냐는 염려 섞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상관이 없었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셋째 임신 자체가 너무 기뻤다. 또한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내의 입덧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고 임신기간 동안 힘들지 않도록 세세한 살림들도 직접 도맞아 했다.
현재 개구쟁이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솔직히 딸이기를 바다.랬다.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줄 수 있는 이쁜 딸을 기대하기도 했고 아빠의 마음을 녹여주는 애교 많은 딸을 조금이나마 기대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지 않는가? 그저 바라는 것 뿐이지 솔직히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자주 하곤 했었다. 기도의 말미에는 가능하다면 아들보다는 딸로 주세요라고 살짝 기도는 했었지만, 어느 성별이라도 좋으니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예전과 다르게 성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되어서 아내가 임신한지 4개월 이후에 산모와 아이의 건강 체크를 위해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의 병원 방문은 직접적이지 않지만 어떤 성별인지 조금이나마 힌트를 받을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는 날이었다. 사실 아침부터 초긴장 상태로 있었고 급히 준비하여 병원에 재빠르게 가게 되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갑자기 담당 의사가 수술하러 갔는지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대기하는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담당 의사가 돌아왔고,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지 산모의 건강 상태부터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솔직한 마음을 의사에게 전달하면 혹여나 창피한 상황에 놓여질까봐 숨죽이고 의사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이 간 아들 녀석이 여간 답답했는지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이렇게 직접 대고 얘기를 하는 아이였구나 라며 참 당황스러우면서도 참 의아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의사는 셋째의 성별을 이리저리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이쁜 아이네요! 화면을 보니 아들의 모습 보다는 이쁜 공주님인 것 같네요!”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딸이라는 힌트를 받는 순간 나를 포함한 두 아들들과 검사를 받고 있는 아내마저 소리를 얼떨결에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기쁜지 아내를 진료해주는 의사 선생님께 연겊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딸을 준 것이 아닌데 말이다.
10년 동안 기다렸던 딸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이 들었던 아내의 표정도 매우 좋아 보였다. 아내도 은근히 딸을 원했던 것 같다.
딸이라고 하니 너무너무 기뻤다. 나는 지금 실업자인데도, 그런 상황 조차 정말 잊어버린 상태로 그저 행복과 기쁨에 벌써부터 취해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딸의 소식을 전했다. 무엇보다 많이 기대하고 있었던 어머니와 장모님이 너무 기뻐하셨다. 그들도 딸을 키워보셔서 그런 건지 딸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계신 듯했다. 무엇보다 딸로 인해 아내가 덜 힘들어질 것이라며 자기 일처럼 너무 기뻐하셨다.
하늘이 나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예상도 못한 딸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힘들어 어려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컸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다시 일어서야 하며, 작지만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셋째가 생기고 더더욱 그렇게 바라던 딸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서 새롭게 태어날 딸을 위해서라도 조금이 나라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적으로 힘들다고 이야기만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게라도 행복을 찾고, 넘어지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고자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셋째의 딸 소식을 통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에 온 셋째가 하늘에서 준 선물 맞지요?”
고통스러운 삶의 끝자락
어느 날은 좋더라도 어느 날은 너무 힘들 정도 우울했다. 어느 날은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7~8년 된 것 같다. 연세가 많기는 하시지만 매우 장수하시며 살고 계셨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을 급히 하게 되셨다. 그런데 고령인지라 고관절 수술 회복 속도가 늦어졌고 이런저런 합병증으로 인하여 요양병원에 입소하게 되셨다.
요양병원에 입소한지 7~8년이 되어가셨도 틈틈이 부모님을 모시고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고 최근 들어 몸이 급격히 좋지 않으셔서 가족 모두가 임종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구질구질한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임종의 소식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서 그러신지 어머니는 그저 담담히 말씀을 하시는 듯 하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장례식장을 갔다. 침울한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언제가인 경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모든 식구들은 모두가 담담히 장례를 치루셨다.
가족 중 장례가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맞지만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지인분들을 부를 자신이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늘로 보내드리면서 나 또한 깊은 우울감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내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라한 내 모습도 모습이지만 이제야 보니 아무도 없는 그 상황이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나의 실직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과 모든 상황들을 나의 실직과 연결짓고 있었다. 그냥 스쳐가는 일들인데도 연결지어 확대 해석 해버리는 내 모습이 그저 안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힘든 마음에 다양한 상황들을 덧입여 상황과 나의 마음을 더 최악으로 몰고 가는 듯 하였다.
점차 끝자락까지 나를 깊이 구렁텅이로 몰고 갔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상 삶이 그런 듯 했다.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고, 나만 제일 힘든 것 같고, 나만 최악의 일을 겯고 있다고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힘들면 희망을 찾고 어떻게든 일어서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한번 힘들어보고 최악의 상황에 놓여보셔라.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포기해 버리는 것이 더 빠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거라고..
방법이 없다. 한 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옴살 달짝 못하는 지경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겠으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등산길을 걸으면서 마지막을 준비하다.
죽음이라는 거 한 번도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소외된 분들을 찾아가 돕는 것은 했어도 내가 그렇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다 실직자가 되고 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집에 있으면 그 답답함과 외로움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혹여나 나쁜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도저히 집에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공기를 쌔러 가든, 기분 전환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꼭 살 것 만 같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오랜만에 신어본 등산화를 찾아 신고, 물 한 병과 함께 가방을 들쳐 메고 무작정 밖을 나갔다.
되도록 사람이 없는 곳을 가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O O 산”
집 인근에 있는 산을 무작정 가게 되었다. 평일 이 시간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겠어?라는 생각에 나름 생각도 정리를 할 겸 길을 올랐다.
저 산 밑에 나의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올 생각이었다.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시원한 물과 선선한 바람으로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오랜만에 등산길은 참 숨이 벅차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꼭 지금의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고 가는 길조차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내 모습과 같아 보였다.
‘ 인생도 다 그렇지! 편한 길이 어디 있겠어? ’
‘ 힘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넘어갔을 때 드디어 정상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
제법 등산길에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도 함께 걷고 있었다. 노인부부들도 있었고, 젊은 친구들도 있었고, 주인 쫄랑쫄랑 따라온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정상의 기쁨을 꼭 아는 것처럼 큰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어 보였다.
나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갈 것 같고 포기하고 싶은데, 그들은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힘들지 않을까?’
함께 등산을 온 사람들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등산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와야 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야기하며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고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은 듯했다.
같이 걷고, 같이 걸음을 맞춰가며 힘들게만 보이던 길들을 걷고 있었다. 꼭 힘들어함을 정말 잊어버린 듯했다. 혼자만 걷는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지만 그들은 함께여서 그런지 그런 표정들은 아닌 듯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도 함께 나누면서,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 그 길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더더욱 외로웠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길 끝에 마지막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 없는데 굳이 가야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보면 포기해버리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기해 버릴까?’
숨은 벅차오르고, 내가 무슨 낙을 누리려고 이러한 생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그저 포기하고 싶었다. 내 삶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