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광야의 길을 걸었던 한 남자의 세번째 이야기
외로움과의 싸움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이 이어갈 수로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어쩌다 실업자가 되어 보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시작하다보니 밀려오는 아픔과 어려움은 상상하는 것보다 충격이 더해져만 갔다.
그 길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지난 많은 것들 중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이 참 많이 생각이 났다. 나를 그렇게 섭섭하게 했으니, 어찌 착한 가면을 쓰면서 뒤에서는 사람답지 않게 행동했던 그들 때문에 힘들었던 실업자 생활 내내 나의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다. 정말 끝까지, 좀 더 상황이 날 때까지 말이다.
실업자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외로움이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더욱 그렇게 도왔던 많은 이들, 특히 선후배들과 친구들조차, 그리고 가족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끊겼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지인들은 평소와 다르게 나에게 또 다른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때는 나의 상황을 정말 모르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받았었다. 내 마음속에는 그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어, 나도 그런 일들이 있었었어라고 나를 위로해주기를 바랬던 마음이 있었었는데 그렇게 반응을 해주지 않는 이들 모두 참 섭섭하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다시는 그들과 연락을 하지 않겠노라 수백번 다짐을 했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 힘이 없어지고 나한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되었을 때에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하지 않는 그들의 야비한 모습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을 소중하게 여겼고, 그들의 도움에 언제든지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왔었는데 꼬리 짤린 호랑이 마냥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매우 불쾌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은 평소 나를 싫어했던 그들들의 비아냥 소리 때문이었다. ‘샘통이다! 너 그럴줄 알았어?’
실업자 생활이 좋은 소식은 아니였기에 어느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고 평소 즐겨했던 SNS 활동도 완전 끊어버린체 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한 것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벌써 예전 직장에 나의 실업자 생활의 소식이 전해졌으며 그 지역의 다른 사람들의 귀에까지 전해졌다는 소식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꼭 좋은 사람이 있었겠는가? 나를 싫어하고 경계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텐데, 그들에게 나의 소식이 얼마나 샘통처럼 느꼈겠는가? 좋은 소식도 신중히 전달되는 법일텐데, 누구인지 몰라도 나의 소식을 기쁘게 전한 그가 참 원망스러웠다.
하루종일 그들의 비웃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 더더욱 실업자의 생활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나름 당당하게 회사에서 나왔었는데 잘되어서 그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를 하고 싶었었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비웃음만 당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힘들고 마음이 어려워서 그저 숨기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인들의 응원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어설픈 위로라도 좋으니 한통이라도 전화를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나의 이런 상황을 알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위로의 전화를 주지 않았을테지만 그래도 전화 한통을 정말 기다렸다. 나의 사정을 알고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인 중에 몇 명이 전화가 올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나 지금 실업자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대방은 제법 많이 놀라는 눈치였고 어설프지만 어떻게든 위로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급히 위로를 해주기도 하였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 지내다보니 가족들조차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같이 말해주기는 했어도 나를 특별히 위로해주거나, 나와 같이 힘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기야(아내) 나 실업자 되니까 많이 속상하고 힘들지?”
사실 계속 이어지는 실업자 생활로 인해 아내가 특히 많이 걱정을 할 줄 알았다. 당연히 남편이 힘들어하니 자연히 아내도 힘들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힘들어하는 내색을 내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다. 10년 동안 늘 보여준 모습 그대로 나를 대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참 속상했다. 남편이 힘들어 할까봐 억지로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아내가 솔직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더욱 내 마음이 참 쓰렸다. 솔직히 나도 아내를 위로할 여력도 있지 않아서 그냥 평소처럼 대할 뿐이었고 어떻게 보면 아내보다 내가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비추곤 했었다.
그 시간과 기간 동안 내 곁에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사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점점 나는 나만의 동굴에 더더욱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들어가는 그 동굴은 사방이 다 막혀있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차단된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무섭고 힘들어 혼자서 피해 있었던 자리였는데 결국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하루하루마다 또 다른 소설 한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경험한 것들을 소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했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고 그들은 이 세상에 있지 말아야 할 악당으로 만들어 버리는 스팩 타클한 판타지 소설을 지어가고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니 그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면 좋으려만 점점 소설을 써가면서 그들을 향한 복수심이 극에 다다르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속 시원했으면 좋겠지만 정말 완성해나가는 소설 가운데 나는 점점 지쳐갔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어져만 갔다.
피하고 싶은데 피하지 못하고, 벗어나고 싶은데 점점 밀려오는 어려움과 부담 때문인지 그저 나의 삶을 좀 더 일찍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밝아져만 가는 듯 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정말 생각대로 내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나는 온전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마지막 선택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가 위인들
(삶과 죽음 / 윤동주)
실업자 생활을 오래하 다 보니 세 번째로 밀려오는 것은 포기였다. 하나의 포기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계속적으로 어려움이 밀려오고 두려움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간단히 나만 없으면 끝날 일인 것 같았고, 하루 빨리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다. 죽음이라는 생각 절대 해보지 않았던 내가 끝까지 몰리다보니 나 또한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날 밤 평상시와 다름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에 무서운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죽어볼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 그런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어두운 밤이기도 하고 극단적인 생각에 몰리다보니 너무 무섭기도 하였고 소름이 끼치기 시작하였다.
너무 무서운 밤을 도저히 지낼 수가 없어서 거실에서 아이와 자는 아내를 깨우려고 나갔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하고 깊이 잠이 든 아내와 아이들을 보게 되니 도저히 아내를 깨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옷을 챙겨 입고 평소 다니던 교회를 가게 되었다. 시간대가 새벽예배를 할 시간이어서 교회 새벽예배를 드리러 밖에 나오게 되었다.
죽을 것 같다고 두려움 때문인지 새벽예배 시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펑펑 쏟아지는 눈물과 벅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그저 조용히 입을 가린 채 흐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런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를 할 법한데도 아무런 기도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펑펑 흘린체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바닥은 눈물로 가득 찼고,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원망보다는 그저 포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았다. 이유가 분명히 있어 이러한 고난의 길,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거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상황이 그저 힘들기만 했다.
‘그분만은 나의 사정과 상황을 알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