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고 싶었던 한 남자의 두번째 이야기

다시 서고 싶었던 한 남자의 두번째 이야기

by Happyman
내려놓았을 때 다른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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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실직자가 되고 나서 나를 괴롭힌 것은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라는 것이었다. 삶을 살면서 아픔도 있고 고비도 있기는 하겠지만 연달아 터지는 어려움 때문에 나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저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정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난 듯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들을 버린 것 일수도 있겠지만 당장 내게 벌어진 이 상황은 나 홀로 걷고 해결해야만 했다.

남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참 민망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상대방도 힘들다고만 이야기하는 나의 소리에 도저히 끝가지 들을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밀려오면서 해결되지 않는 그 외로움은 나를 정말 힘들고 어렵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 놓지 못해서 마땅히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고통스러운 삶을 조금도 이해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어설픈 격려와 위로가 도리어 나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모슨 상황이 이해가 되지 못했다. 나만 이런 일들이 있는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라고 마음을 잡고자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만 힘든 것 같았다. 힘들어도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숨기 시작하였다. 평소 나가는 성격이 아니지만 더욱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더욱 줄고, 오로지 서재 안에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소설 즉, 나의 고통에 대한 이유를 나름 상상하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인지라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내 마음은 분명했다. 왜 이렇게 힘든 것이냐고?

그 답만 알고 있으면 언제쯤 풀릴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 것만 같았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교회에 가서 그분께 기도를 드렸다. 웬만해서는 그분을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일들을 한 걸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는데, 잘하지는 못해서 잘못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이해를 하고 묵묵히 해쳐나가려고 해도 상황이 점차 힘들어지게 되니 처음과의 마음과 다르게 포기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똑같은 기도만 드렸던 것 같다. 기도를 한 후에 무엇인가 변화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변화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또다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복이 흘러가지 위해서였다. 그래서 고통의 도구를 통해서라도 너를 다듬어야 했다!”

예배 가운데 담임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깨닫게 된 말씀이었다.

나는 그렇게 잘못한 사람이 아니고 못난 사람이 아닌데도 그분은 내가 그의 사명을 감당할 무엇인가의 부족함이 있음을 분명 알고 계셨다.

큰 이벤트로 알게 하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인격적인 그분은 나 스스로 알 수 있게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이제 곧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아들은 아직 어리다. 키가 커가고 나이가 점차 늘어간다고 해도 내 눈에는 부족한 아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은 자기들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신감은 높이 평가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부족한 아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맞기고 시키겠는가? 시키는 것은 분명 부모가 아닐 것이다.

그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이런저런 기회들을 많이 주셨는데, 그분의 입장에서는 분명 부족하고 연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나를 단단히 고치시기를 마음먹으신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깨닫고 이해해서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분이 원했던 그때에 멋지게 해낼 그분의 자녀를 기대하셨던 것 같다. 해야 할 많은 기회들을 계획하고 계셨지만 아직까지 담아낼 그릇이 되지 않아 이런저런 못난 부분들을 다듬고 계셨던 것이었다.

나는 참 교만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때론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이었다. 욕심이 많은 욕심꾸러기였다.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다른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미움을 내려놓았을 때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빨리 깨달을 걸... 힘들 때 뒤늦게 깨닫는 부족한 사람!”


끊임없는 반성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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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일을 할 때는,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많이 불편해할지라도 그저 내 생각대로 생각했고 판단하며 살았던 것 같다.

상황과 환경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서 지난 삶들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을 하게 되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들이 참 미웠고 싫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느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했던 그들이 참 안쓰럽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세 그들을 향한 복수심과 같은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때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인데 낮아지고 넘어지다 보니 나 또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아픔이 참 쓰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법 아픔의 도구로 인하여 내가 깨끗해지는 듯한 기분, 그리고 좀 더 겸손해지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든다.

문 듯 반성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예전과 같이 똑같이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번 기회를 꼭 놓치지 않으니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과 다짐들을 글로 자세히 남기게 되었다. 문 뜻 문 뜻 드는 생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리고 깊이 마음에 새겨진 것들이기에 문 듯 나온 그러한 상처들을 다시 잡아 새롭게 조정해보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글로 남겼다. 그리고 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았는지 꼼꼼히 작성을 하였다.

적힌 솔직한 감정을 가지고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실업자의 생활 참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이기도 하지만 가장 두려우면서도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점점 깊어져 가는 나의 감정이었다.

지난 과거들의 상처와 함께 지금의 상황을 재해석을 했을 때는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고 이제는 절대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점점 깊어져 가는 실망과 좌절은 곧 나를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죽음을 선택하게 된 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서웠고 두려웠다. 과거의 모든 일들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야만 했었다. 그런데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또는 이러한 어려움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중에 하나가 바로 지난 과거에 대한 용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과거를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어 그들과 함께 나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상황이 하나도 변화지 않았다. 아직도 취직을 못해 그저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들과 나를 용서하기 시작하니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상황 가운데 작은 불빛 하나 발견한 듯 작은 소망, 일어나야겠다는 작은 결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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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였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제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신 차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다시 돌아오라고?”

“많이 힘들었구나?”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위로가 참 필요했다. 어설픈 이야기 말고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김동호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CMP콘서트가 서울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CMP콘서트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콘서트 이이다.

콘서트의 목적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전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아마 이 곳에서도 김동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말씀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힘을 업고 싶어 나는 그저 구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콘서트를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정말 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갔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도 계셨고, 모자를 쓰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김동호 목사님도 암이 걸리셔서 제법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하셨신 분이셨는데 전과 다르게 암환자들과 가족들을`위로하고 돕는 일에 지금 헌신을 하고 계신다.

콘서트 내내 김동호 목사님이 전하신 하시는 말씀이 마음 깊게 남긴다.

모든 것이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암이 걸렸다고 하면 아마도 죽겠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평소와 다르게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김동호 목사님 인터뷰/2020.06.11. 조선일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셨단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목사라고 암이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후로 삶이 크게 변화지 않았지만, 암이 치료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점점 빠져드는 낙심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다짐 이후에 정기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고, 등산 등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셨으며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 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CMP 콘서트를 통해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계신다.

그날 참여한 분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들 암을 몸에 품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보였다. 어두운 그곳에서 오로지 좌절하면서 지내고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얼굴 그리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과 생각해보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느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만난 그분들도 하나도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암이 하나도 치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희망을 만들고, 어떻게든 깊은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나와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렇게 보던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태현아~너도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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