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고 싶었던 한 남자의 세번째 이야기
느린 사람도 괜찮아
예전에는 참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하고자 했던 일들도 참 많았고 그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실업자의 생활이 참 두려웠다. 끝나지 않는 실업자의 생활로 인하여 완전히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을 받고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였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진 것을 보고 안심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잔다. 그런데 토끼가 잠을 길게 자자 거북이는 토끼를 지나친다. 잠에서 문득 깬 토끼는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빨리 뛰어가 보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천천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 는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는 헛된 삶을 살지 않게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사회와 직장은 토끼 같은 사람을 원한다. 빨리 빨리하고 성과를 내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거북이는 이솝우화에만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분명 낙오될 것이 뻔 한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무리 속에서 이탈이 되면 분명 사자 등과 같은 맹수들의 표적이 되고 밥이 된다. 멈추면 죽으니 무조건 달려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무리에서 낙오가 되고, 뒤쳐졌으니 사실 걱정과 두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다. 막상 낙오가 되고 늦게 되니 내가 상상한 만큼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벌어졌다면 그저 쫄고(?) 있던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자기들도 살기 바쁘니 더더욱 나의 삶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하고 있던 일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 뿐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좀 더 나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악화되었던 신체를 발견하여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 건강한 신체로 회복되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아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앞서가는 토끼의 뒷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빠르게만 달려가는 토끼를 안스러워 하며 잘 되기를,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음으로 토끼를 축복하고 지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토끼와 다른 구조를 가진 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채워져 갔고 나의 분명한 길과 사명들을 새롭게 다시 찾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욕심이라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진심으로 욕심을 채워가며 살아왔구나라는 깊은 반성과 함께 겸손하지 못하고 자랑하기 바빴던 나를 발견하면서 나보다 남들을 높여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답은 아니다. 빨리 간다고 이긴 것이 분명 아니다. 느리다고 낙오가 된 것도 분명 아니다. 늦는 사람이라고, 느린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늦게 감으로써, 느리게 감으로써 잃는 것보다 채워지고 보여 지는 것들이 제법 많다. 만약 지금 자신이 늦었다고 실망하지 말아라. 실망으로 시작하여 절망감과 두려움에까지 깊게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마음을 재촉하지 말고 늦게 가더라도 내가 좀 더 다듬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으면 한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느림으로 인하여 더 멋진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테니까...
외로움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기
실직자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한다고 하면 “외로움”인 것 같다.
저 멀리 떠나간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고 문 잠가버린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비참하고 부끄러운 생각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지난 화려한 과거가 생각이 나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실직자=외로움이라는 공식 성립”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만든 공식이었다. 만든 공식에 이런저런 상황들을 대입하여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간다. 집 안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이리 나만 외로운 걸까?”
사실 이러한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 의한 외로움인지, 존재 자체의 외로움인지, 전혀 다른 외로움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나에게만 일어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 일어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다.(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없어_김효진)
실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외로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일상이 정말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이겨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굳이 이겨내고자 했던 마음조차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밀려오는 외로운 마음을 한쪽 곁에 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즐겁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특별히 두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독서이고 두 번째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법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더 더욱 힘든 이 시기에 독서는 나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책에서 나오는 문구 문구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고 보다 깊이 내 마음에 담아지게 되었다.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감명 깊게 느낀 문구를 다이어리에 옮기고 나의 생각을 글로서 남겼다. 또한 느껴진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오로지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작업인지라 어떻게 보면 더욱 우울한 마음이 밀려오는 듯하여 독서 핑계를 삼아 밖으로 나가는 연습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중고서점에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을 보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아파트 앞 공원(?)에서 선선한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기도 하였다.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다. 정상까지 가는데 3~4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렵게 정상에 올라 책을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린 내 안에 있는 밝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이제는 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혼자 있는 외로움의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지지리 궁상 같은 삶을 버리고 외로움을 그저 받아들이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적극적으로 만나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가며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폴 부르제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등산길을 걸으면서 죽음을 준비하다 2탄
드라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등산을 하는 것이 문 듯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깊이 생각해보고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겸, 외로운 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시작된 등산길이었다.
그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등산길을 다소 두려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더욱 내 마음과 감정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분께 소리 질러가며 기도를 하고 싶었다.
“나만 왜 이리 힘들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상상에만 그쳤다. 왜냐면 등산길에, 평일 그 시간에 내가 상상한 것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임이 분명했다.
“미친 XX”
그러면 입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길이었나 싶을 정도로 등산길이 매우 경사가 있었고 가는 등산길이 너무 힘들어 숨이 턱까지 오르게 되니 기도할 마음이 어느새 싹 사라졌다.
헉헉 거리며 숨이 차오르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나의 나이와 체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옛날 생각만 했다! 나 이제 그렇게 젊은 사람은 아닌데..’
많은 등산객들은 거침없이 등산길을 걷고 있었다.
3km만 가면 정상이 나오는데, 점점 정상이 멀어지는 듯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리 챙겨놓은 물과 과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개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힘들게 올라온 등산길 중간지점에서 먹는 과일이 참 달았다. 하나 두게 먹다 보니 벌써 다 먹고 말았다.
사실은 정상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원래의 계획이 완전 실패가 되었다.
1번만 쉬고 계속 걸어야 정상을 갈 수 있을 텐데 10분이 지났나? 나는 1시간 걸은 것만 같아서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는 일들을 반복했다.
입구에서 같이 시작한 어느 청년은 어느새 정상까지 다 찍고 내려오는 길에 보게 되었다.
‘부럽다! 나도 정상을 가고 싶다!’
너무 힘들다 보니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정상을 오르는 이 길도 죽겠는데,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해 보였다. 그저 빨리 정상을 보거나, 아님 빨리 내려가야만 했다.
결국 정상을 가지 못했다. 이러다가 등산길 어느 쪽에서 낙오되어 뉴스에서 나올 법하게 헬리콥터 타고 병원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이 완전히 빠졌다. 당연히 다리 힘도 완전히 빠져서 잘못하다가는 넘어지거나 다리를 삐끗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만 보고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내려오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 같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고, 갑자기 물 웅덩이를 넘어가야 했다. 길이 아닌데 무성히 올라가진 풀 사이를 해쳐나가며 무작정 내려와야만 했다.
다리는 풀리고, 정신은 없어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주변은 보지도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들도 다 뻥이었구먼!”
등산을 통해 자기를 한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그 장면 완전 현실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등산길이 힘든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겠어! 등산하면서 낙오 안 되는 것이 다행인 거지!‘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등산길이 힘들지 않았다면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직 내가 살아가야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그분이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진심으로 용서하기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얀 안설랭 슈창베르제 외 지음/하봉 금 옮김, 2014)
세상의 나와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론 직장생활에서 나랑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이다.
때론 맞지 않아도 맞춰주는 것, 자존심 상해도 맞춰주는 것이야말로 직장생활 안에서, 사회생활 안에서 해야 할 행동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행동과 마음 자세야 말로 무섭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직장생활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쁨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나도 이제껏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로 인해 기쁘기도 했지만 때론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평생 고생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간질환을 얻게 되었을 정도였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유난히 생각이 든다. 오늘도 새벽 내내 꿈속에서 그 사람으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어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는 정도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그가 찾아와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 사람은 잘 무례한 사람이었다. 내 인생 속에서 역대 무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상에 정말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까지 서스름없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내내 그가 계속 생각이 났고 용서보다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기 위해서 굳이 과거의 일들까지 끄집어내면서 생각하고 분노하기는 싫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불쑥불쑥 생각이 나더라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붙어버렸다.
잠을 들려고 해도 그가 생각이 났고, 어디에 있든 간에 그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잊으려고 노력했고 나름 내 마음에는..
‘어차피 과거일 뿐이다!’
‘어차피 그 사람은 절대 변화지 않을 것이며, 전혀 자기가 행동했던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나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분노가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급히 내 마음을 수습하려고 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자기는 모르지만 어디를 가든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문의로 인하여 애써 묻어버린 그때의 모든 일들이 다시 한번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오늘처럼 꿈에 나타나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던 것 같다.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피곤한 것도 있지만 이른 아침이 매우 불쾌하고 기분이 매우 나쁜 것은 무엇일까?
머리에 계속 맴도는 그의 모습에 대해 한동안 분노를 감출 수 없었지만 곰곰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도 살려고 그렇게 행동했겠지!”
“그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어서 그렇겠지!”
“잘 살아보려고 했다가 그렇게 잘못된 거겠지!”
“그도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
그저 그 사람이 매우 안쓰러웠다. 또한 그 사람을 잘 대해주지 못한 나의 모습 또한 후회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를 용서해 줘야겠다. 진심으로 그를 용서해주어야겠다.
그리고 그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잘할 수 있도록 큰 축복의 기도를 해줘야겠다.
‘사람의 판단과 심판은 그분이 하실 일!’
나도 연약한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그를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한다. 또한 그런 높아진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미워한다. 그저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각자의 무리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가게 만들어버린다.
높아진 나의 마음에 어떤 것들이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겠는가?
사실 나도 제법 높았다. 어느 누구도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그것들을 나름 큰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기도 했다.
먼저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곧 넘어질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것이라고 자랑할 뿐이었다.
높은 빌딩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매우 작아 보이고, 지나가는 자동차조차 작게 보이기 마련인데, 나 또한 높은 그곳에서 그렇게 사람을 바라봤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제는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곧 무너지는 그곳에서 급히 내려와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용서하기도 작정했다.
그저 예전처럼 땅에 묻어 버리기만 해서 썩지 않는 쓰레기로 만들지 않기도 했다.
진심을 다해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의 모든 행동들이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리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려고 한다.
“용서를 통해 내가 살 수 있습니다!”
문 듯 밀양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들을 유괴하고 죽여 교도소에 수감한 살인자 앞에 앉아서 신애(전도연)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생각이 났다.
○ 신애(전도연): 내가 오늘 여기에 찾아온 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어요. 나도 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절대 안 믿었어요.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안 믿었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그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요.
○ 살인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준이 어머니한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교도소에 들어온 뒤에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많은 인간에게 찾아오신 거지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서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 신애(전도연):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 살인자: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가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내 마음이...
“내가 그 인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나름 스스로가 착각하며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하였다. 진심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밀양 영화에서 나온 신애(전도연)처럼 생각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용서하면서 때로는 전과 같이 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불쑥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뿐이겠는가? 실직 전의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 다 말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이젠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제 만난 이들에게는 예전같이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해본다.
“천천히!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