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꼰대
설마 꼰대
나보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나이가 많던 적던간에 맞지 않는 꼰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 참 화가 난다. 요즘 들어 꼰대라는 주제로 만나는 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른 체 수없이 수다를 떨곤 한다.
나는 아니지만 상대방은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였기 때문에 더욱 꼰대의 주제가 나의 입술을 더욱 달콤하게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와는 다른 꼰대들이 정말 우리 주변에 많이 산다는 사실이다. 정말 버젓이 산다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마도 내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우리의 큰 실수는 아닐까 싶다.
더욱 어릴 적에도 꼰대는 아니지만 꼰대 같은 어른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어린 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참 보기 좋지 않아서 일부러 피해 가며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가 참 대단하다는 어떠한 착각 속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리고 태도들은 참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결국 나도 그들과 동일한 나이게 있은 후 반 꼰대, 완전 꼰대 등의 참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름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예전 내가 경험한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들을 대한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주변에 있는 좀 더 어린 이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나은 배려 가운데 재촉하지 않고 그들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는데 아마 이렇게 생생 내고 배려해준다고 착각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어느새 꼰대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표님은 그렇지 않은데 왜 우리한테만 그렇게 강요를 하시나요?
동일하게 공정한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참 당돌한 직원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솔직한 그들의 모습이 참 멋져 보이면서도 그 갭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대표니까 당연한 것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표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점차 변해가는 이 시대와 공동으로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이 세대들과의 문화적 충돌은 참 폭발적이다.
도대체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맞히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보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점점 변화되는 시대에 맞는 나의 마음과 태도가 변화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예전 구 태연한 생각들을 아직도 품고 사는 것 같다.
당돌한 직원의 이야기에 구 태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진장 민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머리이든 마음이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잘 못하는 것 같고 불안한 그들의 모습 때문에 더더욱 예전 경험한 것들과 굳어버린 내 마음을 손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나에게 꼰대 짓을 했던 그 많은 이들도 아마 자기들의 생각이 옳고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틀렸다며 섣불리 판단하고 도움 주고자 답 없는 잔소리를 퍼부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세대와 같은 공간, 같은 시대에서 사는 것이 참 놀라울 뿐이다. 벌써 그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며, 세대 간의 충돌로 인하여 나는 벌써부터 사망신고는 내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로 다른 세대 간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작은 희망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존 경험한 것들, 굳어버린 생각들로 인하여 여전히 그들과 문화충돌이 일어나는 것과 여전히 예전 것들로만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못난 내 모습 그리고 발전하고자 전혀 노력하지 않는 나의 모습들이 제일 걱정이 되고 염려되는 부분이다.
먼저 예전부터 쌓아온 것들을 하나하나씩 빼낼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쌓아놓으면 놓을수록 내 공간은 없고 비좁다.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초라해질 수 있으니 천천히 불필요한 것부터 버려야 한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고 해도 내 시선, 시점으로만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뿐이지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는 또 다르게 보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 사람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더욱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한 사람의 캐릭터 그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이 또한 들기도 한다.
내 마음 한편에 작은 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빡빡한 마음 내에 다른 이들이 들어올 틈이 없다면 나와 전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분주하게 살아도 늘 내려놓는 연습, 그리고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작게나마 갖는다면 작은 오해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인다. 최근 수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장난들도 웃으며 넘기지 못하는 못난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능하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속 안에 여유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야 아이들의 장난이 느껴지고, 맘고생하는 직원들의 진심 어린 마음들이 느껴지며, 마음고생을 덜하게 되니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땔 수 없는 딱지 ‘꼰대’일 수는 있지만 멋진 꼰대를 못할 법은 없는 것 같다.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뿐더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상대방에게 배려의 선물로 줄 수가 있다고 본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해서 다 맞는 답을 만들어낼 수 없고, 진심 어린 사과를 못할 이유가 없다. 실수하면 인정하면서 사과하는 것이 그리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하고 인정해주었을 때에 꼰대이지만 참 멋진 꼰대는 아닐까 싶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남들의 더욱 잘 알게 된다. 남들에게 일부러 강요하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을 통해 보여주는 리더가 참 멋진 리더라고 생각한다. 왜 일하지 않냐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일하고, 늦지 말라고 이야기 이전에 먼저 출근하며 일할 준비를 하고, 성과가 없냐고 탓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해낼 수 있는 성과를 한번 더 생각하면서 그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꼰대 리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