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있어?

분노의 끈을 끊어버리기

by Happyman
분노의 끈을 끊어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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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날 보면 참 인상 좋다는 이야기를 제법 많이 듣는 편이다. 누굴 해코지 할 만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 나를 아주 선하게 보는 경향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보기와 다르게 매우 민감하고 불의한 것에는 참지 못하는 못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집에서는 단 조용히 지내는 편이라 밖에서 매우 민감하게 행동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 제법 아내 놀란다.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아내 자신한테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데 밖에서는 그렇게 사는 모습이 참 낯설단다.

이런 모습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마음에는 항상 분노와 답답함이 있었고, 어떻게든 풀리지 않으면 음성으로나 몸짓으로 어떻게든 표현한 듯하다.

사실 누구를 무서워하겠는가? 그저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어느 누구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끙끙대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딸린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때문에 더욱 참고 참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다 참다 못 참겠으면 화장실에 가서 헛구역질을 수 백번 한 것 같고, 몸으로 증상이 와서 병원에서 누워있었던 적도 많았었다.

이 세상이 참 미웠고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내 주변에 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한때 힘들어하고 어려워했던 적이 많았었다. 지금도 그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마흔을 걷는 나로서는 이러한 어려움 등이 도리어 내가 살아가는데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낫겠지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에서도 상황은 다를지 모르나 똑같이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사실 나는 많은 어려움 등이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듯하다. 작은 어려움이 생기게 되면 며칠 아니 몇 달간 잊지 않고 되짚어 보는 경향이 있다.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점점 상대방을 증오하고 지옥으로 보내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

일상이 그랬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맘에 들지 않으면 마음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일찍 출근하는 길인데 차가 갈 수 없게 주차해버리신 차 주인님, 어제 먹던 커피를 주차장 안에 겸손히 올려놓으신 분, 운전 잘한다고 뽐내는 것처럼 이리저리 운전하는 사람, 그냥 지나쳐가도 될 일인데 클랙슨을 울리며 자신의 위대함을 표현하시는 분들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기분이 많이 상해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무례한 말들과 행동 때문에 화가 나고 강아지 부리듯이 마구 사람을 대하는 상사들의 모습에 그리고 앞에서는 착한 척 잘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내 이야기를 제대로 지르시는 그분들 때문에 평소 나를 싫어하고 경계하였는데 몇 사람의 이야기가 곧 진리고 맞는다고 생각하여 일반화시키는 무례한 그들 때문에 수백 번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10년 이상 내일처럼 참 최선을 다해왔는데, 참 매정하게 버려버리는 지난 그들의 행태, 자기 사람 아니고 내 눈에서 벗어났다고 어떻게든 내쫓아 내려고 노력했던 그들 때문에 내 삶 전체가 참 지옥 같았다.

집에서도 마차가지이다. 일 다녀왔는데 꼭 기다렸다는 식으로 무엇인가 해달라는 식구들의 말에...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다 해결될 일을 질질 쓰레기를 흘려버리고... 힘들어 잠시 쉬고 싶은데 간절히 놀아달라고 부탁하는 자식들...

매번 그랬다. 아니 늘 그렇게 살아갔다. 화가 나면 화를 참으면서, 도저히 참지 못하면 끝장을 보는 듯하게 소리를 지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하면 내가 이긴 듯 한 느낌이 잠시 든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뭔가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지속으로 남아있어서 내 목을 감싸 안았고, 내 마음을 심히 답답하게 만들었다.

분노는 곧 자기의 행동을 잠시 정당화시키는 것 같다. 자기의 실수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그만큼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 절대적으로 실수한 것이라고만 이야기를 한다.

분노는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점점 지금의 상황 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듯하다. 분노에 휩싸여 다른 것들 곧 진실된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실 보지 못 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분노는 내 마음과 삶 전체를 망가트린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살고자 하는 마음보다 악의적인 마음으로 삶을 어찌 보면 살아가게 만드는 듯하다. 결국 분노는 나의 삶에 있어서 마이너스 일뿐이다.

마흔의 삶 아직도 길다.



사랑하지 않으면 비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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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곧 비판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병든 비판은 매우 위험할 수가 있다.

그중에 가장 위험한 비판은 교만이나 우월감으로 하는 비판이다.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비판을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생긴 권위 때문에 의도치 않게 함께하는 동료 직원들을 비판할 때가 있었다. 회사뿐만 아니라 집에 와서도 정말 무례한 직원을 향하여 비판을 계속 쏟아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비판을 했다고 해서 마음이 그렇게 좋지 만은 않았다. 더욱 비판에 비판이 덧입혀져서 더욱 극한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도 정말 많았었다.

비판은 단지 상대방에게만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판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나는 괜찮은 사람, 비판받지 않는 사람으로 벌써부터 생각한 지 나머지, 벌써 높아진 그런 생각 가운데 무작위로 만나는 이들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판을 하게 되는 듯하다.

비판(批判)

1.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판을 받다.

2.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

불의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비판을 통해 옳은 길로 갈 수 있다면, 그리고 올바르게 바뀔 수 있다면 어떻게든 비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악화되고 나빠질 수 있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너무 취해 있어서 내가 비판하는 것은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야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손쉽게 판단하는 것은 절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비판할 상황이 있는가? 그리고 비판할 사람이 있는가?

비판해야 하고, 그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판단할 만한, 비판할 만한 사람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참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인지라 감히 누구를 판단할 수 없다. 솔직히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나 또한 비판할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비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자.

비판을 통해 여러분들이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감정적으로 상해서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측은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닌 상대가 좀 더 낳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판을 하는 것인가?

사람은 몇몇의 사람의 비판의 소리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호된 비판의 말을 들어도 상대방의 무례한 이야기에만 집중할 뿐이지 나의 약점과 부족함에 대하여서는 알지도 깨닫지도 않는다. 억지로 비판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포기하자!



높은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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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직원으로 일하다가 어쩌다 팀장이 되고, 과장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어쩌다 어느 부서의 대표가 되어보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가장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그들의 의견들을 다 받을만한 그릇이 아직 되지 않고 종지 만한 그릇으로 그들을 다 이해하려고 하니 하루하루마다 참 죽을 맛이었다. 함께 일하던 어느 직원은 나를 향해 “팀장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직원이었는데 그리고 곧 팀장이라는 직함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맘고생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생겨났을 것 같아 참 씁쓸하기만 했다.

어쩌다 직함을 얻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정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윗사람들한테는 뭔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고 함께 하는 동료직원들을 다독이며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했다. 잘하면 “과장이 그 정도 해야지?”라며 칭찬 없이 당연하듯이 이야기를 하였고 잘 못하면 “과장이 능력이 없어서 말이야?”라며 더 호되게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참 난감할 뿐이었다. 윗사람은 단지 좋은 사람, 리더십이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기 일쑤였고 단지 나만 못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정말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점점 올라가기 두려웠고 멋진 직함을 얻고 싶지 않았다.

더더욱 예전 그들의 리더십을 보면서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수 천 번 다짐하였다. 그러면서 배운 게 그것밖에 되지 않아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 걱정도 함께 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경력이 올라간다고 좀 더 직함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다시 최고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다소 빠른 나이에 높은 직함을 얻은 것 같아 감사도 하지만 예전처럼 준비되지 않는 리더로 인하여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예전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다시 되짚으면서 참 조심히 살고 있다. 어렵게 취업하게 된 이후로는 지금 이 자리에 감사함을 느끼며 겸손하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고 세우는 일에 더욱 집중하며 살았다.

벌써 7개월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1년이 지나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예전 취업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 요즘 들어 많이 나타난다.

내 시각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지 짜증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누구한테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조금씩 흘러나와서 말투나 행동이 평소와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사실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나름 혜택들이 주어지지만 그만큼 무엇인가 이루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런데 그런 성과들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내 마음에 부담감과 짜증이 함께 표현되는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일들은 정말 많고,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있는 그대로 표현되어지는 것 같다.

나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하며, 남들의 시선들에 대해 일일이 느끼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일단 시간이 참 많이 필요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당장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하나씩 이루어진 것들을 분명 보았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들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지 말고 나름 가지고 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나를 높여주곤 했다. 내 평생에 그런 경험들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단맛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런데 단맛이 다 빠져나갔을 때쯤 몇몇의 사람들이 냉철한 판단과 태도들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곧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참 쉽게 판단을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을 찾아가 일일이 답변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으로만 참고 또 참았었다.

등산을 즐겨하지는 않지만 정상을 가면 왜 사람들이 등산을 즐겨하는지 알게 된다. 정상을 가게 되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널리 펼쳐진 그림 같은 장면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인다. 땅에서는 높은 건물 때문에 보이지 않았었던 것들이 정상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인다. 정말 황홀하다.

그런데 그 정상의 이면에는 떨어지면 죽을 수 있는 참 무서운 낭떠러지가 있다. 조금만 실수하면 그 낭떠러지에서 순간 넘어지거나 떨어지게 될 것이다. 정상의 기쁨의 취해서 실수하게 되면 넘어지듯이 보다 높은 자리에서 단지 취해 있으면 나 또한 순간 넘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문 듯 들었다. 높은 자리에서는 참 괜찮은 혜택들이 참 많다. 때론 동료직원들이 이렇게 저렇게 챙겨주기도 하지만 남들이 나를 높이 세워준다. 평소에는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보다 높은 자리에 서면 나의 말을 듣는다. 듣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내 말을 듣는 것 같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혜택에 취하다 보면 본인의 본 업무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나보다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거나 흘려보내는 듯 한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또한 땅에서는 높이 서있는 산 정상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정상에 선 나에게 있어서 많은 이들이 보면서 판단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정상에 있었을 때 말이나 행동이나 각별히 조심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최근 들어 많이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 함께 협력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쓸 때 없는 이야기를 말하며 도리어 방해하는 그들의 모습에 한동안 화가 난 적이 있다. 너무 답답해서 그런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 정도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층 높아진 나의 마음이었던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람은 절대 변화지 않는 절대 진리를 잊은 채 어떻게든 내가 변화시키겠다는 과도한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과 다른 행동과 말을 하는 이들을 볼 때 과도하게 생각하고 화를 낸 것 같다. 더더욱 높은 자리에서 내가 무엇인가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함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게 만든 것 일수도 있다. 높아졌을 때 더욱 겸손해져야 하며, 남을 높이 세워주었을 때 더욱 낮아짐의 모습이 참 많이 필요하다.



비난의 중심에 서있을 때

남들에게, 더더욱 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비판과 비방은 정말 듣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하루하루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적지 않게 좋지만은 않다. 쿨하게 그냥 웃어넘길만한 그릇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참 많이 화가 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남들의 비판 소리를 우연하게 듣게 되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조차 포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마흔의 길을 가게 되니 전보다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예전과는 다른 자리이기 때문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풍성함을 느끼곤 한다. 인정해주기도 하고, 높여주는 것이 솔직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만큼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비판과 비방도 만만치가 않다. 어떻게 보면 나를 꼭 경계하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냥 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은데 꼭 내 귀에 이야기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나를 걱정하는 말투지만, 꼭 그렇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좋으련만 나랑 몇 번이나 마주쳤다고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다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꼭 앞에서든 뒤에서든 비판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가 더 문제였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막상 나의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면, 도리어 간장종지 같은 사람 같다며 비웃는 그들의 모습에 참 당황하기도 하였다.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마음이 심히 답답하고 억울하였고, 막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 이야기를 건네면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나를 비꼬와 보는 경향이 많이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 뿐이었다.

이런 상황들에 물밀듯 밀려오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되었을 때 본연의 일들을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업무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하고자 하는 업무를 통해 복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쓸데없는 감정 따위에 깊이 빠져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는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비판하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 당황스럽고 심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되도록 비판의 중심에 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더더욱 어느 누구라도 비판의 중심에 서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판의 중심의 서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하는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남을 비판의 중심에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가족들도 나와 다른데 남들은 나와 맞겠는가? 조금이나마 다를지라도 뭉개버리고 당연히 비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더 반성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면 나중에 꼭 부메랑처럼 복수의 칼날이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섣불리 그들을 비판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나중에 나를 비판하는 칼날로 다시 돌아온다.

비판을 받거나 비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남들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그런 성향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비판의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 때는 남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 배려 깊은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면서, 평소 비판의 자리에 서지 않도록 내가 남들보다 앞서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되도록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앞서가기보다 남들이 나를 앞세워 줄 수 있게 하며, 되도록 나보다 상대방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는 욕심을 처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는지 몇몇의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급격히 흥분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높여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에 너무 쉽게 반응을 하곤 하였다.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랑 맞는 사람, 나랑 정말 맞지 않는 사람,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 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등등등...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들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 이야기가 곧 맞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반응하여 소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최근 트렌드인 만큼 SNS가 참 활성화되었다. SNS를 보면 그들의 성향, 취미 등을 금방 알 수가 있고 요즘 흘러가는 트렌드를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 예전 있었던 이야기이다. 지금도 그러한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SNS를 통해 상사를 욕하고 특정 인물을 욕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SNS를 통해 욕을 얻어먹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고 나 또한 SNS를 통해 직접 대고 특정 인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돌려서 작성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하고 나서는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리어 그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 한 번 더 놀랄 뿐이었다. 상대방을 비판한 것인데, 도리어 내가 비판을 받게 되는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구설수(口舌數)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사람들은 자기가 비판받기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남들을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꺼려하고 싫어한다. 나 또한 남들을 향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던지, 비판을 한다면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사람의 비판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 어떻게 보면 비판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되도록 그러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내가 남을 비판하는 것보다 남을, 상대방을 조금 더 높여주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그리고 마흔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자세는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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