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다이어트 기술
힘 빼는 다이어트 기술
정말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나갔다. 아직도 미처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며칠 전과는 다르게 참 고요하다. 또다시 비바람이 몰려올까 두렵기만 하다.
저번 주부터 제법 비가 내렸다. 늦은 여름 장마? 가을장마라고 하던데... 나가서 뛰어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우리 똥강아지들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비가 오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집 앞마당에 있는 내 새끼들이다.
며칠 전 가을배추를 심었는데 도리어 무서운 비바람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어 아침저녁으로 확인해 보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작게만 보이던 배추 잎사귀들이 제법 많이 올라왔다. 이놈들이 며칠간의 무서운 비바람을 잘 버텨온 듯하다. 확인하러 나갈 때면 나 이겼냈다고, 버텨냈다고 자랑하듯이 늠름히 서있는 이놈들이 모습이 참 대견스럽다.
며칠간 무섭게 내리던 비가 스쳐 지나가고 아직은 어두운 암흑이 다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 사이로 햇빛이 비친다. 괜히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다 해결되었다는 그런 가을바람이 내 코를 스친다.
나의 삶도 아직까지는 암흑이 물러나지는 않은 듯 하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햇빛이 비칠 날이 있을 것이라 소망해본다.
무엇인가 해결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지질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게 느껴지면서도 못한 내 모습이 참 답답하다.
그렇다고 기존 의지했던, 도움을 받았던 이들도 나만큼 이상의 어려움이 있어서 섣불리 전화통화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면 도전이라도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해봤자 안 되는 상황, 노력해봤자 더 큰 어려움으로 돌아오는 현실에 그저 포기가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하늘을 향해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창문 밖에서 비바람이 억수같이 내린 것처럼 나의 삶도 그와 같은 것 같다.
내가 제일 힘든 것 같고, 나만 왜 이러는 건지 탓하기만 한다.
암흑 같은 내 삶 속에서 발버둥을 쳐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그저 그 암흑이 더 짙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거의 다 포기하게 되었고, 힘이 다 빠져있었던 그날
이제는 원망조차도 나오지 않는 그날
홀로 서있는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엎어져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멋지게 살았다고 했던 내가 어딘가 잘못 가고 있었고..
내가 최고인 냥 살아서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다. 내가 제일 높은 사람으로 착각해서 자랑하기에 바빴고 정말 중요한 일들을 놓치고 살았다. 점점 낮아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니 참 놀랍기만 하다.
더더욱 그분의 은혜 가운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잊어버렸다. 나의 삶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의 연약함. 제법 크게 자라서 나를 삼킬 모양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스스로 즐겨 살았다. 참 은밀하게 말이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욱 당당하게 살았다. 착각하는 가운데 그놈이 그렇게 커갈 줄 몰랐다.
그분은 나의 연약함, 해결해야 할 부분을 먼저 해결하고자 하셨다.
나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때를 썼는데 그분은 나의 그 부분을 언급하시며 그것부터 먼저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셨다.
어려움이 있다 보니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보게 된다.
어려움이 있다 보니 내 앞에 있는 문제와 어려움에 깊게 빠지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
무진장 긴장이 되었고 염려되다 보니 몸 구석구석마다 고장이 나고 말았다.
몇 년 전 갑자기 몸 두게 가 올라간 적이 있다. 내가 이렇게 살이 찔 줄 몰랐다. 살이 찌다 보니까 이곳저곳에 고장이 나게 되어서 처음으로 다이어트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밤낮 운동을 하기도 하고, 맛없는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 조절도 하는 등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3개월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더니 나도 살이 빠지게 되었다. 너무 빼서 가족들이 걱정까지 했으니까..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이 참 힘들었지만 결국 건강이 회복되었다.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이 아마 나의 삶 가운데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을 때 놓게 되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다이어트도 참 많은 고생과 열심히 있는 것처럼 한꺼번에 나의 연약함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본다. 한동안은 참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 건강한 내 모습으로 다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찌 보면 큰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 싶다. 큰 잘못을 하지 않는 것처럼, 잘하고 있는 것처럼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그렇게 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어려움이 있냐고 원망도 했지만 그분은 나를 정말 사랑하셔서 나를 고치기 시작하셨다. 그 과정이 참 고통스럽지만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연단하시고 고쳐나가시는 그분의 손길이 참 은혜롭게 느껴진다.
‘비바람이 스쳐지나간 후에 나에게도 햇빛이 비춰지겠지?’
‘꼭 비 비람이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이 길을 통과할 무렵
어제부터 비가 종일 내렸다. 내리는 빗방울 소리조차 내 마음을 조금씩 울린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요즘. 답답한 것도 없고 그렇게 큰 기대도 어느 때부터 없어진 지 오래다. 어떠한 도움도 다 끊겼고, 스스로 힘으로 무엇인가 해결할 것이라는 마음조차 없어졌다. 도리어 못난 내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하루하루 발버둥 치며 이겨내려고 노력했는데 매번 실패를 하게 된다. 실패 하나하나가 쌓이게 되니 위보다는 아래를 보며 머리를 숙이게 된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남들의 어설픈 위로가 그렇게 내 마음을 와닿지 않는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 몹쓸 그들의 얼굴이 생각이 나서 그런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까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어느 때는 새로운 소망도 생겼다. 좀 더 나아지겠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것들에 무작정 도전하게 되었다. 결국 다 떨어지고 실패를 보았을 때 더욱 깊은 낙심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사람들에게 요청도 해 보았다. 어느 누구는 내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나를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듣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들도 만나보게 되었다. 나이에 불문하고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나의 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서서히 거치게 되었고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이들 몇 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조차도 나를 도울 수 없는 녹록지 않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상처 받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러한 어려움이 생기는 것도 보다 어려운 이들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위대한 은혜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잘난 맛으로 살던 내가 이런 어려움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심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좀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있는 것 같아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
하루하루 그 분만을 찾는다. 찾을 분은 그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홀로 광야에서 서있던 나는, 혼자 남게 된 지금 이 상황에서 간절히 그분을 찾게 된다. 가끔은 나의 목소리만 들려오지만, 나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롭기도 하지만 말이다.
계속적으로 실패를 겪다 보니 경험하게 되는 그 낙심은 말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참 어렵다. 이유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그저 더 깊어진 낙심이 나를 더욱 직눌러 버린다.
새로운 곳에 새롭게 도전을 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점점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곧 나가야 한다. 잘 마무리되어서, 잘 정리되어서 나갔으면 좋겠지만 흘러가는 것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여튼 계속적인 실패를 경험을 하는 이때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면서, 불안하여 무작정 도전하려고 했던 못난 나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돌이키기 위하여 실패의 쓴잔을 허락하심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저 낙심보다는 감사가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도리어 이 길을 허락하신 그분의 계획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이 길이 그저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저 힘들게만 느껴졌었는데, 내가 좀 더 연단할 수 있는 기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시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그분의 손길을 느껴졌을 때 이제는 그 고통스럽고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금 당장 분명하게 나의 길이 보이지 않지만 순간순간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이 느껴짐으로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고, 주어진 일들 가운데 최선을 다했을 때에, 그때가 어느 순간 성큼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썩은 멜론의 깨달음
우리 집 독수리 오 형제 중 1호 2호 3호는 멜론을 매우 좋아한다. 수박같이 시원한 맛, 멜론 안에 있는 야들야들한 달콤한 맛, 영양가 득하고 수분 가득한 멜론은 우리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밥 먹자고 하면 어떻게든 안 먹으려고 하는데 멜론 먹자고 하면 후다닥 뛰어와 멜론을 먹을 정도다.
며칠 전 평소와 다름없이 마트에 들려 아이들에게 줄 멜론 2통을 샀다. 맛있게 먹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운 여름이 지났는지 예전처럼 멜론이 별로 없었다. 다른 과일에 비해 한 구석에 처 박혀 있었고, 어느 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먹이겠다는 책임감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줄 멜론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눌러보는 것들 모두 물렁물렁한 느낌이 들었고 어느 멜론은 겉까지 썩은 듯해 보였다.
멜론 안이 참 달아서 물렁한가 싶어 겉으로 보기에 괜찮은 멜론 2통을 집어 계산을 하였다. 그리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아빠의 깜짝 이벤트 ‘멜론 파티’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칼로 멜론을 자르는데 심상치가 않았다. 너무나도 잘 잘리기도 했지만 썩은 듯한 냄새가 나의 코를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멜론 2통이 다 썩어 있었다. 결국 멜론 파티는커녕 구시렁거리며 ‘아니 이런 썩은 멜론을 그냥 팔아?’ 썩은 멜론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었다.
겉으로는 참 멀쩡했다. 예전 먹었던 맛있던 멜론과 큰 차이가 없었고 더욱 달콤한 멜론처럼 보였었다.
썩은 멜론을 버리면서, 나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의 삶 어느 한 부분이 썩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겉으로는 참 멀쩡하다. 남들이 보기에도 참 부러워할 정도의 위치와 역할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분은 나를 향해 결단을 하기 시작하셨다. 스스로 고치기를 원했던 그분은 참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다. 지속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을 때도 스스로가 깨닫고 다시 회복하기를 수차례, 참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나는 나이면서도 나를 제대로 잘 몰랐다. 내 안에 썩고 있는데도 자기 잘난 맛에 썩은 것조차 잘 알지 못했다. 겸손하지 못했고 참 많이 부족하지만 남들의 칭찬에 우쭐하곤 했다.
혹여나 나에게 피해를 주기만 하면 참 오랫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다. 어느 날은 복수의 칼을 갈다 나의 손을 베기도 하면서 말이다.
소외된 이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나도 모르고 그들을 아래에서 내려다 보기도 했다. 그들의 시선으로 함께 동행해야 하는데, 나의 시선으로 판단하면서 맞지 않는 옷을 만들어 입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수많은 것들이 내 머리에서 스쳐간다. 막상 어려움이 생기고 막막해졌을 때 이제야 나의 연약한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상황을 알고 계실까라는 생각에 그분께 원망도 해보기도 했다. 내가 그리 잘못했냐며 말하면서 말이다.
그분은 나를 정말 사랑하시며, 나를 잘 아시는 분이시다.
참다 참다 나를 회복시키려는 그분의 결단이 참 은혜롭기만 하다.
이제야 깨닫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려움이 있다고 원망을 해기도 했지만 나를 회복시키려는 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고난과 어려움으로만 느껴지기보다는 하루하루가 참 은혜롭기만 하다. 어찌 보면 이 일을 통해 연단되고 변화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루어질 앞 일들이 참 기대가 된다.
쉽지 않지만 썩은 것은 빨리 알면 좋다. 그리고 썩은 것을 아는 순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나의 인생 가운데, 어려움으로 내 안에 썩고 있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버릴 수 있어 너무나도 감사하다.
2통이나 멜론을 버리게 되어서 매우 속상하여 구입했던 마트에 직접 가서 따지면서 환불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런데 썩은 멜론을 통해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환불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멜론을 통해 돌이켜볼 수 있었던 것은 썩은 멜론을 환불받는 것 이상의 귀한 것을 생각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어려움이 생겨도 어려움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왜 어려움이 생긴 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어려움으로 원망하고 낙심하기 십상이다.
그분은 이런 나를 썩은 멜론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
참 다행이다. 지금에서야 깨닫고 돌이킬 수 있어서 말이다.
또 다른 리더십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손쉽게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런 평가에 벗어날 수 없기에 스스로 나의 리더십에 대해 조심히 평가하고 좀 더 다듬으려고 노력을 한다.
지난 세월 동안 다양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보았고 만났다. 그들 모두 자기의 리더십이 최고인 냥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게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종종 가지게 된다.
휴대폰 없으면 불편한 시대 그만큼 디지털이 우리 일상의 성큼 다가왔다. 그러한 디지털 시대만큼 우리도 디지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뒤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찌 보면 뒤쳐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점차 변화되는 이 시대의 흐름조차 못 따라가는 기성세대와 MZ세대와의 문화충돌은 어마어마하다.
오늘 나는 MZ세대를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기성세대로 변화되어가는 나를 돌이켜본다.
몇 달간의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어찌 보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부정적인 그들의 모습에 많이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남들의 비난의 이야기와 시선 모두에 다 신경 쓸 이유는 없지만 자기와의 편이 아닌 이들에게 향한 그들의 비난의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비난, 그리고 무례한 그들의 모습으로 인하여 초라해진 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억울하기도 하면서도 내가 어찌 보면 이런 못난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 차서 하루하루가 참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롭고 보다 신나게 일을 했던 과거의 그날들이 참 그립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나서 알아서 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때가 참 그립고 그리웠다. 벌써 지난 간 일들이라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겠지만 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겨 한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많은 이들이 떠나갔고 아직도 나를 비난하는 이들의 소리가 들릴 무렵 한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나의 어려움을 누구를 통해 알게 된 모양이다.
그분은 지금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셨던 분이다. 그렇다고 나를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님에도 나의 강의를 들었던 한 분임에 불구하고 나를 참 좋게 생각을 해주셨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를 참 좋게 생각한 것보다는 그분 심성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섬기고, 높여주는 것이 몸에 베인 분 같았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의 안부를 물으셨다. 솔직히 아무렇지 않다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지만 나의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을 들킨 듯하다. 어설픈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오로지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듣기만 했다.
“참 많이 힘들었겠네요?” “내가 도울 일 없을까요?”
진심 어린 그의 말은 도리어 나를 위로하고 있었고 지지해주고 있었다. 몇 마디 없었던 그의 반응들이 도리어 나에게 힘이 되었다.
특별한 위로, 어설픈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하였다.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나를 인정하면서 대단하다며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진 나에게 무엇인가 힘을 넣어주는 듯했다.
참 달랐다. 최근 만난 몇몇의 리더와는 정말 달랐다. 그들은 어떻게든 나를 비난하며 기를 죽이려고 했었는데 오늘 만난 그분은 자신을 낮추고 나를 더욱 높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일들을 해왔다. 어떠한 성과를 가졌는지에 대한 어설픈 잣대를 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성과이든 최선을 다했던 그 모습을 꼭 알아챈 듯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평소에 그렇게 살지 않던 이들이 어느 때인가 높아지게 되고, 초라한 견장 하나를 어깨에 달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 견장이 이 세상을 바꾸는 듯,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른다. 칼날에 베인 많은 이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아 무너지고 쓰러지게 된다.
나 또한 그중에 하나였다. 나보다 높기 때문에 휘두른 그들의 리더십은 제법 많은 일들을 만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에 참 잔인한 상처를 만들어냈다.
어설프게 베인 그 상처는 점점 나를 힘들게 했다. 더욱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함이 점점 커짐에 따라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무기력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었고 어떻게 될지 모를 이 상황이 참 무서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를 통해 무너진 나를 좀 더 일으키려는 은혜임을 알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감사함이 더해진다.
그들의 비난에만 휩싸여 있었다. 보여 지지도 않고 일어 설려는 마음조차 없던 내게 온 희망의 메시지는 아닐까 싶다. 탓하기보다는 그를 통해 다시 한번 일어설 용기가 생겼다. 나는 못난 사람도 아니고 항상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며, 잘 보이지 않고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인생이지만 나를 통해 무엇인가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참 상쾌해졌다.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겼기 때문에 더욱 내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어설픈 리더십을 발휘하지 말고,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인 것 같다.
설마 꼰대
나보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나이가 많던 적던간에 맞지 않는 꼰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 참 화가 난다. 요즘 들어 꼰대라는 주제로 만나는 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른 체 수없이 수다를 떨곤 한다.
나는 아니지만 상대방은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였기 때문에 더욱 꼰대의 주제가 나의 입술을 더욱 달콤하게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와는 다른 꼰대들이 정말 우리 주변에 많이 산다는 사실이다. 정말 버젓이 산다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마도 내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우리의 큰 실수는 아닐까 싶다.
더욱 어릴 적에도 꼰대는 아니지만 꼰대 같은 어른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어린 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참 보기 좋지 않아서 일부러 피해 가며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가 참 대단하다는 어떠한 착각 속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리고 태도들은 참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결국 나도 그들과 동일한 나이게 있은 후 반 꼰대, 완전 꼰대 등의 참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름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예전 내가 경험한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들을 대한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주변에 있는 좀 더 어린 이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나은 배려 가운데 재촉하지 않고 그들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는데 아마 이렇게 생생 내고 배려해준다고 착각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어느새 꼰대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표님은 그렇지 않은데 왜 우리한테만 그렇게 강요를 하시나요?
동일하게 공정한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참 당돌한 직원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솔직한 그들의 모습이 참 멋져 보이면서도 그 갭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대표니까 당연한 것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표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점차 변해가는 이 시대와 공동으로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이 세대들과의 문화적 충돌은 참 폭발적이다.
도대체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맞히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보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점점 변화되는 시대에 맞는 나의 마음과 태도가 변화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예전 구 태연한 생각들을 아직도 품고 사는 것 같다.
당돌한 직원의 이야기에 구 태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진장 민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머리이든 마음이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잘 못하는 것 같고 불안한 그들의 모습 때문에 더더욱 예전 경험한 것들과 굳어버린 내 마음을 손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나에게 꼰대 짓을 했던 그 많은 이들도 아마 자기들의 생각이 옳고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틀렸다며 섣불리 판단하고 도움 주고자 답 없는 잔소리를 퍼부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세대와 같은 공간, 같은 시대에서 사는 것이 참 놀라울 뿐이다. 벌써 그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며, 세대 간의 충돌로 인하여 나는 벌써부터 사망신고는 내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로 다른 세대 간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작은 희망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존 경험한 것들, 굳어버린 생각들로 인하여 여전히 그들과 문화충돌이 일어나는 것과 여전히 예전 것들로만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못난 내 모습 그리고 발전하고자 전혀 노력하지 않는 나의 모습들이 제일 걱정이 되고 염려되는 부분이다.
먼저 예전부터 쌓아온 것들을 하나하나씩 빼낼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쌓아놓으면 놓을수록 내 공간은 없고 비좁다.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초라해질 수 있으니 천천히 불필요한 것부터 버려야 한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고 해도 내 시선, 시점으로만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뿐이지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는 또 다르게 보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 사람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더욱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한 사람의 캐릭터 그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이 또한 들기도 한다.
내 마음 한편에 작은 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빡빡한 마음 내에 다른 이들이 들어올 틈이 없다면 나와 전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분주하게 살아도 늘 내려놓는 연습, 그리고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작게나마 갖는다면 작은 오해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인다. 최근 수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장난들도 웃으며 넘기지 못하는 못난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능하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속 안에 여유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야 아이들의 장난이 느껴지고, 맘고생하는 직원들의 진심 어린 마음들이 느껴지며, 마음고생을 덜하게 되니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땔 수 없는 딱지 ‘꼰대’일 수는 있지만 멋진 꼰대를 못할 법은 없는 것 같다.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뿐더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상대방에게 배려의 선물로 줄 수가 있다고 본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해서 다 맞는 답을 만들어낼 수 없고, 진심 어린 사과를 못할 이유가 없다. 실수하면 인정하면서 사과하는 것이 그리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하고 인정해주었을 때에 꼰대이지만 참 멋진 꼰대는 아닐까 싶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남들의 더욱 잘 알게 된다. 남들에게 일부러 강요하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을 통해 보여주는 리더가 참 멋진 리더라고 생각한다. 왜 일하지 않냐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일하고, 늦지 말라고 이야기 이전에 먼저 출근하며 일할 준비를 하고, 성과가 없냐고 탓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해낼 수 있는 성과를 한번 더 생각하면서 그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꼰대 리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