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 같습니다.

by Happyman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그때 일들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억울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쉬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다 쉽게 지우지 못해서 하루하루가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


늘 언제나 참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법 10년 넘게 버텨온 것이 참 놀랍기만 합니다. 하루하루 참 고통스러웠지만 어쨌든 버티고 버틴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당장 책임질 가족들이 있어서 그런지 나를 희생하더라도 버티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했던 많이 이들, 지옥 속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왜 나한테 그런 못된 사람들만 있었는지 지금도 참 억울하기만 합니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참 몹쓸 사람들 때문에 맘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때론 다른 곳으로 옮기면 조금이나마 좋을 것 같은데 결국 다른 버전의 사람들 때문에 늘 힘들기만 했습니다. 믿었던 지인들이 더욱 상처를 주고, 의지했던 이들이 더욱 아픔을 주게 되니 견디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상처가 나아질 무렵 또 다른 이들과 상황이 곪아 터진 내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다른 곳으로 가면 싹 없어질 것만 같았는데 아직도 내 몸에 새겨진 그놈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 안의 상처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았는데 점차 깊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애써 지우려고만 했지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나 봅니다.

어찌 보면 약을 바르기보다 단지 보기 싫은 상처를 보여주기 싫어 반창고만 붙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힘든 척 참 쿨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애써 숨긴 나의 모습이 적나라게 드러나는데도 나는 참 쿨하게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갑자기 화를 낸다던지, 짜증을 낸다던지 아님 급격히 우울한 말투와 행동이 남들에게는 참 힘들어서 포기해버린 모습처럼 비친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잊힐만한 할 때도 비슷한 상황 그리고 그 기분이 들 때면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 무척이나 불쾌하기만 합니다.


지나가던 길 우연히 보게 된 차 한 대가 참 화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세히 보니 몇 년 전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던 한 사람이 끌고 다녔던 차와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옆머리를 반듯하게 붙인 남자 배우가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보기 싫은지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한참 보고 있던 드라마에서 나온 남자 배우가 예전 나를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애써 나의 상처를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 깊은 속에 깊이깊이 묻어 놓으려고 하면 문 듯 문 듯 그때가 생각이 나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면서 숨기려고 했던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보이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다른 사건들이 생각나곤 했었습니다.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나만 잊으면 됐지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왜 이리 남들의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찌나 관심이 많고 있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믿고 판단해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이 아닌데,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나는 그런 사람으로 낙인 시켜버렸습니다.

그저 판단하고 평가하기 바빴지 내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말한 몇 마디는 그들에게는 핑개거리로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더더욱 믿었던 사람들에게도 벌써부터 낙인 시켜버린 모습을 보면서 실망감과 함께 더 이상 그들을 신뢰할수 없어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더해져만 갑니다. 그것도 함께 일하는 동료 앞에서 말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한 번 더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도 내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도 많은 이들과 똑같은 것 같아 실망스럽습니다.


하늘을 향해 얼마나 답답함을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들려오는 것은 나의 메아리 소리이기 하지만, 아무런 해결점 없이 점점 답답한 이 현실이 참으로 어렵게만 만들었습니다.


방 한편에 누워 나름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합니다.

애써 노력해도 하나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름 받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 상처가 점점 커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말입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용서 프로젝트를 지휘해 온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용서의 기술을 자세히 소개하며 울화에 차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상태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의 대응방법을 검토하고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며 긍정적인 채널에 스위치를 맞출 것을 권하고 있다. 용서는 과거의 나쁜 일이 나의 오늘과 미래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자기 선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동의가 된다면 반복적으로 용서를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체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 나를 위한 선택 용서, 프레드 러스킨 저 / 장현숙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억울한 면이 많아서 더욱 그러한 생각을 거두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임을 보게 됩니다.

용서라는 스위치를 눌렀을 때 내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살고, 함께 하는 이들이 삽니다.


용서한다고 그들에게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으면 결국 그 올무에 평생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어느 날 기도했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그들도 동일하게 호되게 받도록, 대신 복수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이러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너도 똑같은 사람이란다! 너도 어느 누구에게 상처를 충분히 줬단다!”


“먼저 그들을 용서해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어찌나 억울한지 그날만큼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당했는데 왜 그들을 용서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 때문에 용서보다는 복수의 칼날만 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 뜻 용서보다는 그냥 내려놔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들을 찾아가 복수할 수도 없는데 수백 시간이 지난 지금 나만 힘들어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것은 나만 손해이겠구나 라는 생각 강하게 들었다. 절대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소심한 복수인가?’


하여튼 그 날 이후로 조금씩 내려놓기로 했다. 사실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어쨌든 내 몸과 마음에 잔뜩 붙어있는 분노의 마음과 억울한 마음 그리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하나씩 하나씩 때어놓으려고 한참 노력 중입니다.


그날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나 예전만큼 마음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한껏 가벼워진 느낌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복수하는 마음보다 좀 더 마음을 가볍게 하고자 노력하고, 나도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오늘에서야 깊이 느끼게 됩니다.


한 번에 바뀌기는 쉽지 않겠지만 온전한 완주가 될 때까지 천천히 해보려고 합니다.

언제 가는 좀 더 가벼워진 그날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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