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제목만 봐도 어떠한 아픔이 있었는지 금세 알아채릴 정도로 밀려오는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진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서 최근 출판한 책 제목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선생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책을 통해 알게 되니 제법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버림, 고아, 학대 등 사람 인생 속에 이러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런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다. 당당했고 참 능력 있는 커리우먼이었다.
전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그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도리어 잘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책을 보면서 순간순간 그가 경험하고 느낀 모든 상처들을 보면서 놀라운 것 이상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라면 이런 상처들이 나를 넘어트리고 포기할 법도 한데 어떠한 힘이 있었길래 그는 넘어지는 것보다 상처를 통해 회복하는 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어릴 적부터 최근까지 겪었던 많은 어려움들, 상처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술 먹고 집에 오셔서 곤히 자고 있는 자녀들을 깨우며 온갖 잔소리를 했던 아버지, 그래도 가정을 위해 희생을 했던 형님인데도 늘 명절날에 와서 무시하며 도리어 폭력을 행했던 작은아버지, 그렇게 친하게 진했던 대학 친구들의 단절,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목회자들, 직장에서 쫓아내려고 했던 사람들, 무례하게 이야기를 건네며 문제만 일으켰던 직원들, 이용해 먹다가 냅다 뱉어버린 사람들...
이 책의 저자와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소소하게 겼었던 많은 상처들과 아픔들이 생각이 났다.
나는 어땠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도 극복하고 회복하려고 몸부림쳤던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한 몸부림을 쳤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 말대로 늘 겪게 되는 상처들을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열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회복보다는 자연스럽게 덮어지고 잊히지 않았나 싶다.
불혹의 나이 40대를 지나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상처가 참 어렵게만 느껴졌다.
포기하고 마음은 굴뚝같았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 수천번 다짐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상처를 곱씹은 적이 있다. 사실 늘 곱씹어 먹으면서, 독하고 독한 씁쓸한 약초를 늘 씹어먹고살았다. 그들을 잊을만한데도 늘 씹어 먹으며 알게 모르게 복수의 날을 기다린 듯했다.
그런데 늘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도 그랬고, 곱씹을수록 점점 악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