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시간은 멈추었다.
부모의 시간은 멈추었다
나에게는 3명의 아이가 있다. 각자의 특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그런지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아빠, 엄마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과 행동 때문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나는 안 그랬는데 제는 왜 저럴까라고 행복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예전 나의 모습이 잠시 비치는 것 같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늘 언제나 바쁘게 살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 그랬듯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가장으로서 보다 더 일을 해야만 했고 부담도 되고 힘에 벅차지만 그 일들을 참아내며 버텨내며 그렇게 살아왔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들도 애써 표현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마음 하나로 버티고 버티셨을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그런데 그 버팀도, 어렵지만 애써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들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당장 그만두고 싶고, 당장 포기하고 싶은 마음 아마 수천번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가족만은 지키려는 그 마음 때문인지 흥분된 내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가 아프면 그리고 내가 힘들면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겠는데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아프거나,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어딘가 어려움이 생기면 애써 버틴 내 마음이 와르르 주저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힘든 세상을 짊어지며 애써 버티며 살던 내가, 힘겨운 하루의 인생을 겨우 버텨내며 힘겹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한두 명씩 아빠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이 있어서 밤새 애쓰고 힘들었던 그 짐들이 잠시라도 가벼워진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빠의 품에 쏙 들어온 우리 아이들의 숨결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 아이들 때문에 내가 지금 버틸 수 있는 것이고 아직까지는 내가 책임질 가족들 덕분에 섣불리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시 접기도 한다. 그만큼 가족이라면, 아빠라고 부르는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
나는 어릴 적 그렇게 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싶다. 나도 넓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싶었고 오늘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에게 풀어놓고 싶었고, 잘한 것을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라는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투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고 점차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는 늘 어려웠다. 어느새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를 찾기보다 어머니를 찾는 것을 보면 이젠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없을뿐더러 깊이 새겨진 상처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것 같다.
지금에서야 “애들은 나한테 전화하지 않고 자기한테만 전화한다니까?”라는 섭섭함을 어머니에게 말씀하시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애써봤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어머니에게만 향한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같이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수천번 다짐하곤 했었다. 그런데 말은 쉽지 아버지에게 배운 그 무뚝뚝함이 애들에게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지금도 참 많이 놀랍기만 하다.
툭 던져지는 말 한마디가 왜 싸늘한 걸까? 좀 더 친절하게 해야 할 텐데 우리 아이들에게 무작정 던지는 말들이 온갖 상처투성이다. 얼마나 섭섭하고 힘들까?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 얼마나 상처들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그런데 잘 안된다.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불쑥 말해버리고 후회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싫어진다.
어느 부모든 아이들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한지는 잘 알 거라고 생각이 든다. 말은 쉽게 생각도 쉽겠지만 표현이 안될 뿐이지만 말이다. 아빠로서의 명함을 받은 직후에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참으로 어색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애써 개인적인 것들을 감추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버렸다. 남편에게 가던 것들도 아이들에게 가버렸고, 아내와 이야기하던 꽁냥꽁냥스러운 이야기는 어느새인가 잊혀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사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먹어도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버리는 것을 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부모가 되어버린 것 같다.
때론 나의 삶이 없어지고, 나의 이름조차 잊히고 있어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 앞에서 애교 부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 때면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어느새 우리 집에는 3명의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전쟁터 수준의 분주함과 정신머리를 쏙 빠트려버린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장난감들과 정리되지 않는 집안꼴, 집 안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형제들끼리 싸우게 되면 결국 작은 아이가 형한테 져서 울음이 터지고, 피곤하여 소파에 누워있으면 하루종일 아빠만 기다렸는지 놀아달라고 보채기만 한다.
늘 떠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익숙하지만 갑자기 조용해지면 괜히 긴장감이 맴돈다. 결국 조용하면 일이 터지곤 한다. 특별히 우리 막내딸은 엄마의 화장품을 자기 온몸에 발라놓거나, 지워지지 않는 매직과 볼펜을 가지고 소파와 벽등이 온갖 낙서를 해 놓는다. 어느 날은 변기통에 무엇인가 넣어 놓고는 물을 내리는 바람에 변기통이 막혀 힘들게 변기통을 뚫기도 한다. 수습하느냐 괜한 돈도 쓰게 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다오라는 마음 때문인지 장난꾸러기 세 아이들의 장난스러움을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도 내 마음과 같지는 않지만 아이들이니까, 그래도 건강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잠잘 때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워요!’
하루하루가 참 정신이 없다. 아빠를 참으로 정신없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 때문이지만 그러나 그런 아이들 덕분에 모든 일들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 결국 다시 일어선 것은 우리 아이들 때문이었다. 포기하고 싶어도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보다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더 용기 내서 버티고 버텨냈다.
그런데 이런 개구쟁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아프면 속상한 것 이상 참으로 마음이 힘들어진다. 며칠 사이에 우리 막내딸이 병원을 다녀왔는데 도대체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제법 말을 할 줄 알아서 먹기도 전에 약을 안 먹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쓴 약이 싫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목에 염증이 생겨서 쓴 약을 넘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빠로서는 빨리 약을 먹여 제법 오른 열을 내릴 생각으로 아픈 딸을 잡아 억지로 약을 먹인 생각을 하게 되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며칠간 휴일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병원에 사람이 참 많다. 병원에 급히 입원해야 해서 아침 7시 20분경에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많아 결국 오후 늦게 입원하게 되었다. 긴급히 치료를 하고 입원을 해야 하는데 맘 같이 않게 입원하지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지만 힘든 몸을 가지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우리 딸내미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다. 며칠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는 잘 모르나, 아직도 병원에서 아빠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내 마음이 아린지 모르겠다. 그냥 대신하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5년 전일까 허리를 심하게 다쳐 디스크를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2명이 있는 관계로 아내가 나를 간호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친 몸을 가지고 혼자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참으로 불편할뿐더러 고스란히 병원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간호를 해주셨다. 어머니도 제법 연세가 있으셔 간호하기 버거웠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나를 잘 간호해 주셨다.
막내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5년 전 나를 간호해 준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아마 어머니도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힘들게 잠을 청한 아들을 보면서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 생각이 드는 무렵 마음이 참으로 찡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주신 거름 때문입니다!”
입원 수속을 맞히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요즘 어떠세요?”라고 이야기하려고 전화를 드렸는데 수화기 속에 들려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굉장히 잠겨있었다. “어머니 왜 목소리가 잠겨 있어요?”라고 여쭙자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안 좋다!”라고 이야기를 건네시는 것이다. 이쁜 딸에만 신경 쓰던 못난 아들 같아서 굉장히 죄송스러웠고 무엇보다 우리 딸보다 덜 보게 될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언젠가는 부모님과 이별을 할 날이 그리 많지 않겠구나라는 마음이 들게 되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이 더해져만 갔다.
어느 누구의 말대로 아이가 아플 때 시간이 멈춘 부모로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우리 두 아이는 어느새 잠에 들었고, 막내딸은 병원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그래서 부모로서 시간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아이들 때문에 나는 지금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에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힘들고 버겁지만 조금이나마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