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실업자 생활을 한 지 4개월 차이다. 언제 길고 긴 터널을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실업자의 생활이 곧 나의 일상이 되어 제법 이 삶도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았다. 광야에서 혼자 있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때론 외로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매우 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과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이겨내는데 굉장히 힘들기만 했다.
긍졍적인 삶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삶이 많았었다. 삶을 살기 위한 열심과 열정보다는 포기할 생각이 가득했다. 우울, 죽음, 화남, 짜증 등 평소 나 답지 않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어색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끝이 보여야 조금이나마 힘을 낼 텐데, 도저히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끝이 진짜 있는 건지? 그저 답답한 심정뿐이었다.
상황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악화되어가는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일어서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한순간뿐이었다.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얼마나 반복을 했는지 어느새 그것마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느끼지 못했고 꼭 죽음의 길을 가는 듯한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밤을 얼마나 지새웠는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몰아세운 그 사람들이 생각이 나면서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빛에 비친 천장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그림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칠 만큼 너무 무서웠다.
“너 그래도 안 죽을 거야?”
“너를 그렇게 만든 그 사람들 복수하고 죽여 버려!”
너무 무서운 자리였고 이러다가 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부랴부랴 옷을 챙기고 교회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기도 방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이야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펑펑 울면서 그저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나의 마지막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키고 했다.
이러다가 큰일이 벌어질까 싶어서 아님 오늘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어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무작정 가게 되었다.
등산 초입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평소 등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힘들어했던 나는 등산길이 그저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정상을 바라보며 걷는 등산길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정상을 올라가려면 어려움과 시련이 있듯이 지금의 실업자의 생활이 정상을 가려고 하는 한 과정임을 깨닫는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죽음 때문에 간 것이었지만 죽음보다는 등산하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고돼서 도저히 죽음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고통스러운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때였다. 어느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제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신 차려~!”
“그곳으로 가면 안 돼! 다시 돌아오라고?”
“많이 힘들었구나?”
사람들의 위로가 참 필요했다. 어설픈 이야기 말고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김동호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CMP콘서트가 서울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CMP콘서트는 암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콘서트다.
콘서트의 목적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전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아마 이 곳에서도 김동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말씀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힘을 업고 싶어 나는 그저 구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콘서트를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정말 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갔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도 계셨고, 모자를 쓰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김동호 목사님도 암이 걸리셔서 제법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하셨신 분이셨는데 전과 다르게 암환자들과 가족들을`위로하고 돕는 일에 지금 헌신을 하고 계신다.
콘서트 내내 김동호 목사님이 전하신 하시는 말씀이 마음 깊게 남긴다.
모든 것이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암이 걸렸다고 하면 아마도 죽겠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힘들어하는 것에만 있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셨단다.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김동호 목사님 인터뷰/2020.06.11. 조선일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셨단다.
‘너는 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목사라고 암이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이후로 삶이 크게 변화지 않았지만, 암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고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점점 빠져드는 낙심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다짐 이후에 정기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고, 등산 등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셨으며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 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CMP 콘서트를 통해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계신다.
그날 참여한 분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들 암을 몸에 품고 계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보였다. 어두운 그곳에서 오로지 좌절하면서 지내고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얼굴 그리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모습이 그분들 얼굴에게 비춰져보였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믄 중이다. 그런데 그분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나의 어려움과 힘듬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느끼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만난 그분들도 상황이 하나도 변화되지 않을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암이 하나도 완쾌되지 않아 그 삶 자체를 그저 포기해버릴수도 있었겠지만 작은 소망이라도 붙들며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하시는 듯했다.
각자의 상황가운데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고, 어떻게든 깊은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나와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렇게 보던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너는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많은 사람들도 어려움이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단다!”
위로가 되었다. 어떻든 많은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산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해보니 나만 힘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나만 저주받은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콘서트를 통해 전해지는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위로와 함께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힘내며 일어서려고 노력하듯이....
처음과 다르게 나는 이겨내고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바뀌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다 잘되고 있으니까!
불안한 나에게 괜찮다고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나 또한 불안한 나에게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주변과 비교해 가면서 나를 재촉할 뿐이지 충분히 열심히 다했던 나에게는 괜찮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늘 비교해 가면서 그렇게 저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러 번 신호를 주었는데도 나는 착각해 살면서 내 마음과 몸을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사이토 히토리는(괜찮아, 다 잘되고 있으니까 저자) 하늘을 향해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면 괜찮지 않은 일이 따라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은 자신이 괜찮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에 대해 괜찮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사실 아무것도 변화지 않고 힘들기만 한데 괜찮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참 괜찮게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실업자가 되어보니 괜찮다는 생각보다는 지난 일들을 후회하면서 점점 나를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나 또한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
그래도 크게 넘어지지 않고 참 괜찮게 살아왔다는 사실
오늘은 그렇게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자 한다.
"넌 충분히 잘 살고 있어"
"지금 힘들어도 괜찮아 너는 곧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부정한 것은 부정한 곳으로 흘러가지만 긍정적인 것은 행복한 곳으로 흘러감을 믿는다. 또한 이것이 시작되어 나중에 크게 될 것임도 믿는다.
느린 사람도 괜찮아
예전에는 참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하고자 했던 일들도 참 많았고 그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실업자의 생활이 참 두려웠다. 끝나지 않는 실업자의 생활로 인하여 완전히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을 받고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였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진 것을 보고 안심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잔다. 그런데 토끼가 잠을 길게 자자 거북이는 토끼를 지나친다. 잠에서 문득 깬 토끼는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빨리 뛰어가 보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천천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는 헛된 삶을 살지 않게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사회와 직장은 토끼 같은 사람을 원한다. 빨리빨리하고 성과를 내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거북이는 이솝우화에만 납득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분명 낙오될 것이 뻔한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무리 속에서 이탈이 되면 분명 사자 등과 같은 맹수들의 표적이 되고 밥이 된다. 멈추면 죽으니 무조건 달려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무리에서 낙오가 되고, 뒤쳐졌으니 사실 걱정과 두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막상 낙오가 되고 늦게 되니 내가 상상한 만큼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벌어졌다면 그저 졸고(?) 있던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자기들도 살기 바쁘니 더더욱 나의 삶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하고 있던 일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뿐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좀 더 나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악화되었던 신체를 발견하여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 건강한 신체로 회복되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아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앞서가는 토끼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빠르게만 달려가는 토끼를 안쓰러워하며 잘 되기를,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음으로 토끼를 축복하고 지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토끼와 다른 구조를 가진 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채워져 갔고 나의 분명한 길과 사명들을 새롭게 다시 찾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욕심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진심으로 욕심을 채워가며 살아왔구나라는 깊은 반성과 함께 겸손하지 못하고 자랑하기 바빴던 나를 발견하면서 나보다 남들을 높여주고 사랑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답은 아니다. 빨리 간다고 이긴 것이 분명 아니다. 느리다고 낙오가 된 것도 분명 아니다. 늦는 사람이라고, 느린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늦게 감으로써, 느리게 감으로써 잃는 것보다 채워지고 보여지는 것들이 제법 많다. 만약 지금 자신이 늦었다고 실망하지 말아라. 실망으로 시작하여 절망감과 두려움에까지 깊게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마음을 재촉하지 말고 늦게 가더라도 내가 좀 더 다듬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으면 한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느림으로 인하여 더 멋진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외로움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기
실업자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한다고 하면 “외로움”인 것 같다.
저 멀리 떠나간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고 문 잠가버린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비참하고 부끄러운 생각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지난 화려한 과거가 생각이 나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외로움이 찾아오는 듯하다.
“실직자=외로움”이라는 공식 성립?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만든 공식이었다. 만든 공식에 이런저런 상황들을 대입하여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간다. 집 안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이리 나만 외로운 걸까?”
사실 이러한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 의한 외로움인지, 존재 자체의 외로움인지, 전혀 다른 외로움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나에게만 일어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 일어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것이다.(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없어_김효진)
실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외로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일상이 정말 바뀌게 되었다.
처음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이겨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굳이 이겨내고자 했던 마음조차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밀려오는 외로운 마음을 한쪽 곁에 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즐겁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특별히 두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독서이고 두 번째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제법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더더욱 힘든 이 시기에 독서는 나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책에서 나오는 문구 문구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고 보다 깊이 내 마음에 담아지게 되었다.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감명 깊게 느낀 문구를 다이어리에 옮기고 나의 생각을 글로서 남겼다. 또한 느껴진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오로지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작업인지라 어떻게 보면 더욱 우울한 마음이 밀려오는 듯하여 독서 핑계를 삼아 밖으로 나가는 연습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중고서점에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을 보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아파트 앞 공원(?)에서 선선한 바람을 친구 삼아 책을 읽기도 하였다.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다. 정상까지 가는데 3~4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렵게 정상에 올라 책을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린 내 안에 있는 밝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이제는 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혼자 있는 외로움의 시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지지리 궁상 같은 삶을 버리고 외로움을 그저 받아들이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적극적으로 만나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가며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폴 부르제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나도 우울한 감정에 깊이 빠져 있기보다는 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성취하고 성과를 이루는 것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집중하는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스스로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열심과 열정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완성시켜 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퇴사와 어쩌다 실업자의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전부터 해왔던 많은 사명들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잊어버린 나는 나 답지 않게 살게 되었다. 나답지 않는 내 모습이 제법 낯설기만 하다.
점점 깊이 낭떠러지에 빠져들기만 했고, 결국 죽음을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우울하기만 했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들이 나의 마음을 점차 조여오고 있었다.
남들도 그렇게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노력하는 그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내 마음을 위로받는 순간 이제는 우울의 늪에 따져 드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나답게 살아가야겠다는 용기가 들었다.
실업자의 하루 생활이 언제부터 시작되겠는가? 시간이 널널 하다보니 일어나면 그때부터 실업자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8시든 9시든 일어나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어나서 씻지도 않는 경우도 제법 많았고 밥 먹는 것도 귀찮아 밥을 거르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그저 집안에서 지내면서 누워있는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것마저도 일상이 되어갔고, 일어설 마음보다는 더 깊이 그 삶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일어서야겠다는 생각과 나 다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시작을 좀 더 일찍 시작하였다.
“이른 새벽 6시”
당연히 자주 씻고,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한 옷을 일부러 챙겨 입었다. 또한 배고파서 먹기보다는 무너진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 일부러 밥을 챙겨 먹었다. 예전에는 별거 아닌 일들이었는데 이러한 사소한 일들조차 참 소중한 일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실업자이기 때문에 전과 다른 비용이 적게 들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인근 도서관에서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권 정도를 빌려 원 없이 책을 읽었나 갔다. 독서를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들과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함께 하게 되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온라인에서 홍보하는 ‘서평단 모집’ 찾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곳에서 무료로 책을 받게 되었는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온라인(블로그/인터넷서점/인스타그램 등)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머리가 복잡해서 나의 솔직한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면 심리정서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더더욱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글을 쓰면서 나의 솔직한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처 받은 나의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실업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금세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갔을 대 자연스럽게 바뀔 뿐이었지 우리가 정말 원했던 깜짝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상처 받은 마음은 치료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면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과거에 어떻게 살든 참 낯선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울하기만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참 낯설다.
정말 원치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법 당황스럽게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내 마음을 위로해 줘야 했다. 그 시간을 놓치면, 골드타임을 놓치면 정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이와 같은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이었다. 아직도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니 모든 상황이 그저 악화되어만 가는 것처럼 보였고, 일어설 힘도 용기도 없었던 것이었다.
긴급한 내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서 심리치료까지도 받았다.
나는 평소 자살까지 하고자 하는 매우 위험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리치료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더더욱 어쩌다 실업자로 인해 무너진 나의 마음과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처음 경험하는 심리상담
오죽하면 받았겠냐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사실 죽을 것만 같아서 심리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같다.
보통 심리 상담을 받으면 고가의 금액을 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힘들고 우울해도 심리 상담을 도리어 꺼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돈이 문제라 나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활 수 없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저런 상담소를 알아보다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통해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경험한 이들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듯했다.
더욱 좋았던 것은 많은 회기의 상담을 진행하지만 자부담, 개인 돈은 절대 들지 않는 것이었다. 돈이 지불되지 않아서 삼담의 질도 그럴 것이 아니냐며 처음에는 다소 고민을 했었지만 생사의 고비에 이럴게 저렇게 따질 부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3~4일 후에 상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상담받는 장소가 제법 멀어서 전화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전화로 1시간 정도의 상담이었다.
전화로 받는 심리 상담이었지만 사람을 보며 나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고 편했다.
지난 많은 일들을 상담사에 이야기를 했다. 나의 솔직한 감정도 이야기를 했다. 화도 납니다. 우울하고 눈물도 제법 많이 흘렸습니다라고 솔직한 감정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역시 알고 있던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항상 잘하고 계셨다.! , 대단한 분이십니다 라고 나의 자존감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더더욱 직장인 괴롭힘으로 정말 괴로워할 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잘 듣고는 충분히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곤 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많이 힘들었었다. 내가 당한 느낌이 많이 컸으니까...
그런데 충분히 잘하셨다며 도리어 나를 응원해주는 상담사의 모습에 나는 기존 묶고 있었던 분노를 이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분노가 쌓여있었다면 사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어떠한 일은 벌어졌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나의 감정이 그랬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면서 상담을 하는 것이구나 알 수 있었고 괴롭고 힘들 때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상담가를 통한 심리 상담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깊게 경험하게 되었다.
실업자가 되고 나니 처음 해 보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심리 상담을 받을 줄 한 번도 상상도 안 했는데 말이다. 심리상담을 통해 한층 더 마음이 편해졌다. 늘 어둡게만 보였던 실업자의 생활이 다소 밝아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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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분과 감정으로 나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이제는 깊이 깊이 빠지기보다 조금이나마 일어설 용기와 함께 예전 나다운 모습으로 회복하고자 노력중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든 간에 다시 일어서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점과 그래도 잊어졌던 나의 평소의 삶을 다소 회복되면서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