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이서 삽니다.

우리에 대하여

by 주뗌므

2. 몸은 다 나았지만 아내는 길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게. 곁에 있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병원에 가자는 말 한마디밖에 할 수 없다는 게.

그 말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아내의 아토피는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팔 안쪽, 무릎 뒤편, 가슴팍이 피범벅이었다.

밤새 긁은 거였다. 딱지가 앉으면 또 자고, 또 일어나면 또 피였다.

회복하지 못한 피부는 점점 어둡게 두꺼워졌다. 여름이 와도 반팔을 입지 못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긴팔에 긴바지였다. 환기되지 못한 환부는 더 덧났다.


꾸미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그게 하나씩 사라졌다.

옷도, 화장도, 거울 앞에 서는 시간도.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밀가루 먹지 마라. 긁으면 안 좋다. 공기 좋은 데 가봐라.

좋은 마음인 걸 알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다 해본 거였다. 안 해본 게 없었다.

근데 마치 관리를 하나도 안 한 사람한테 말하듯 너희 이런 거는 해봤냐고 물었다.

우리 아들은 내가 관리 잘 해줬더니 나았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딸을 어디서 약 지어다 먹였더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한마디였지만 듣는 쪽은 그게 쌓이고 쌓였다.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었다.

아내의 피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해수탕에 갔던 날,

아주머니들이 피부병 있는 사람이 목욕탕에 오면 어떡하냐고 면박을 줬다.


여름에 긴팔에 모자를 쓰고 걷다 보면 얼굴이 왜 그러냐고 대놓고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토피라고 하면 자기 아이도 어릴 때 아토피였는데 이젠 괜찮다며 민간요법을 늘어놓았다.

소아 아토피가 성인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과 아내의 중증 성인 아토피는 달랐다.

그걸 설명할 기운이 없었다.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약은 효과가 없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에게 신경질적인 의료진도 있었다.

많은 환자를 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분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정보가 너무 많았다.

아동 아토피는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낫는다는 글도 있었는데, 그 글을 볼 때마다 기대를 했고 기대를 하면 할수록 더 힘들었다.

결혼 하기 전 아내는 강원도 본가에 있었다.

아토피 때문에 하던 일을 모두 관두고 작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내를 만나러 가면 온몸이 딱지 투성이였다. 이불은 피범벅이었다.

밤새 긁다 보면 따가움에 몸부림쳤고, 그러다 지쳐 잠들었다가 또 긁는 밤이 반복됐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날들이 쌓이면서 아내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내를 눕혀두고 온몸을 포비돈으로 닦아주며 엉엉 울었다. 평소라면 따뜻한 눈길로 울지 말라고 했을 사람이었다. 그때는 빛을 잃은 눈으로 쳐다만 봤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한테 카톡이 왔다.

간만에 밝은 톤이었다. 확인해보니 뉴스 기사 링크였다.

아토피 신약, 듀피젠트. 완치율이 높다는 기사였다.

이거만 맞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한참 만에 보는 들뜬 아내였다.


약값이 문제였다. 주사 한 방에 70만 원이란다.

그랬더니 아내가 산정특례라는 걸 찾아왔다.

중증 환자에게 의료비 부담을 낮춰주는 제도였다.

조건을 충족하면 70만 원짜리 주사를 7만 원에 맞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아내가 뭔가를 찾아오는 게.

둘은 아내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갔다.

산정특례를 받으려면 순서가 있었다.

항히스타민제를 바꿔보고, 약을 더 세게 써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음 단계로.

약이 세질수록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일어나도 어지럽고 몽롱해서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마지막 단계는 항암제였다.

아토피는 면역계가 과활성화되면서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었다.

그 면역 자체를 일시적으로 억제해서 증상을 가라앉혀보는 방식이었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역질을 했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버텼다.

듀피젠트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맞는 날이 왔다.

주사 바늘이 굵었다.

배를 뚫고 들어가는데도 아내는 꾹 참았다. 나을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처음 맞고 나서는 기다렸다.


다음 주사를 맞을 때도 기다렸다.




4달이 지났다.



그래도 아내의 피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더 지켜보자고 했다.


더 지켜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가 말했다.


약이 안 드는 것 같다고.


병원 문을 나섰다. 아내가 앞서 걷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발걸음을 빨리해 앞으로 돌아섰다.

아내의 붉은 두 볼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었다.

어느 날 피드에 한의사가 나왔다. 중년의 남자였다.

아토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이 명쾌했다.

양의학적인 용어도 섞어가며 설명하는데 신뢰가 갔다.

댓글에는 완치됐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영상을 하나 봤다. 또 하나 봤다. 어느새 채널을 다 보고 있었다.

이거지 싶었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한의원을 자주 다녔던 아내는 한의학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설득해도 싫다고 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간곡하게 부탁했다. 결국 싫다는 아내 손을 끌고 한의원 문을 열었다.


한의사는 아내의 피부를 보더니 반드시 완치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에 50만 원짜리 한약을 권했다.

아내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또 사정했다.

결국 아내는 한약을 먹기 시작했고, 먹던 양약도 다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얼굴과 몸에 각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늘처럼 들떴다. 피 범벅이던 이불은 각질과 피가 뒤섞였다.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한의원에 가서 물으면 한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낫고 있는 거라고, 탈 스테로이드 과정이라고, 명현현상이라고,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그 말을 믿었다.


6개월째 되는 달이었다.

한의사가 아내의 피부를 보더니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몇 달 더 먹어보자고 했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길로 한의원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피부과로 갔다.

피부과에서 약을 받아왔다.

약을 먹고 한두 시간이 지났다.


거짓말처럼 각질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갈색으로 두꺼워졌던 피부에 혈색이 돌았다.


3일이 지났다.

아내는 중증 아토피를 앓기 전 피부를 되찾았다.



그 긴 시간이 허무할 만큼 빠른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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