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사회학에서 계몽주의와 함께 '구조론적 관점'은 개인 행위와 사회 변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관점입니다. 전인류의 사고에 보편적인 형식의 원리가 있다 여기고, 역사 발전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다르더라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 있다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 경험적으로 발견된 사회 현상들을 관찰하여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려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개인의 역할과 행위, 감정과 정서도 어느 정도 인과관계, 기준, 질서에 따라 나타나고, 사회는 수많은 규칙과 질서, 인과관계가 오랜 세월동안 단단하게 굳어진 틀인 '구조적 영향력'을 개개인에게 갖는다고 보게 됩니다. 사회학적 연구란 이미 주어져있는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fact들을 들여다보고, 그 fact들 사이의 관계에서 관찰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예외는 당연히 있겠지만, 그건 그렇게 큰 관심사는 아닌거죠.
현상학자 슈츠(Alfred Schutz, 1899 - 1959)는 모든 대상은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를 인식하는 주체에 의해 존재한다고 봅니다. 어떤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가 대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지 해석하는 것 없이 객관적으로 측정하거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그 대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게 한다고 말이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부여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현상학이 강조하는 연구방식은 인간 개인의 사회적 행위 분석, 개인과 개인이 주고받는 상호작용, 일상의 생활 세계와 행동양식, 심리적이고 내적인 상황들을 관찰하거나, 그 개인이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발견하기 위한 면담 및 면접입니다.
연구대상인 fact는 관찰된 수만큼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그리고 관찰되고 측정되는 현상과 행동만이 아니라, 개인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모두 '사회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에 영향을 받고, 사회구조에 의해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니고요.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사회는 역사적인 원리와 사회적 약속이라는 구조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개인의 상호작용 및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일상이 그렇게 뻔하고 당연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사람사는게 흔히들 얘기하는 ‘당연히, 원래, 언제나, 항상’이라는 기준에 맞춰 살수밖에 없는 건 아닐 거예요. 오히려 그런 기준과 패턴들이 진정한 나, 자연스러운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것',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대해 '정말 그럴까?'라고 되묻는 것. 이건 우리가 원래 갖고 살아가던 고정관념, 선입견을 멈추는 작업인, 에포케(epoche)라는 현상학적 사고 방식입니다. 대상과 행동이 동일해도 판단하는 주체에 따라, 그 주체의 입장과 상태, 조건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무엇이든 '당연히, 언제나, 원래, 항상' 옳다고, 나쁘다고, 있다고, 없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해야 할 것들을 해내고, 일정한 패턴대로 살다보면, 맘이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아집니다. 다들 잘 하고 있고, 뭔가 이루고 있는데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죠. 다들 가는 여행 나만 안가서 속상할수도 있고, (남자)라면 보통은 이 정도는 하는데, (대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이건 하던데.... 하는 생각들이 사실은 사회적 규칙, 기준으로서 압력이 되기도 쉽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좀더 느리게, 한 번 더 되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하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라는 주체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을 뿐인 그 소소한 상태와 조건, 상황들이 내 순간을 반짝거리게 합니다. 현상학적인 관점에 따르자면 모든 이의 삶과 일상의 사건들에는 각각의 스토리와 맥락이 담겨 있으니 그 순간의 해석과 의미를 발견하는 연습을 할수록 순간 순간은 재미있어지고, 일상은 귀중한 보물창고가 됩니다.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표현해도 되겠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미궁을 탈출했다고 하지요. 다이달로스는 하늘 높이 절대 날아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한 나머지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해를 향해 높이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결국 날개를 붙인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서 결국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는 소년이 바로 이카루스입니다.
BTS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그렇게 높이 날아올랐던 내가 이제는 너의 일상에 대해 작고 소박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들 좋아하는 조건을 맞추고, 요구에 따르기보다 '너'를 행복하게 해줄, 네가 행복하게 '느끼는' 것을 찾아내고 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죠. 이카루스의 비상은 구조에 충실한 삶으로, 그의 추락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소함을 누리는 삶으로 해석했네요.
그러니 해석학적 관점이 관심갖는 부분과 일맥상통할 것 같습니다. 사회구조의 거대한 질서와 법칙, 세상이 개인에게 기대하는 (때로는 운명으로까지 여겨지는) 역할에서 떨어져나와서, 개인의 세계를 보여주고 각 존재의 의식을 반영하는 일상과 소소한 반응들에서 중요한 의미를 끌어내려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