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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01. 2016

제주만이 주는 숲의 원초성_ 화순곶자왈

곶자왈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사려니오름을 다녀온 때문이다. 단순히 공기 좋은 숲이 아니라 숲에서 받는 힐링의 느낌을 제대로 기억하게 한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 숲의 면면을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했다. 그 시작을 화순곶자왈로 삼았다.


아마도 맑은 날이면 오름을 생각하겠지만 몬순시즌이 시작된 관계로 굳이 경치나 전망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곶자왈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곶자왈입구는 도로변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숲이라는 이유로 산속을 깊숙이 들어갈 이유도 없이 차가 쌩쌩 다닐 수 있는 도로변에 덜렁 입구가 드러나 있다. 낯설다. 간간히 사람들이 드나든다. 방치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다. 곶자왈은 사실 의외로 주변 가까이에 있다.

몬순시즌이 시작된 관계로 굳이 경치나 전망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곶자왈이라는 매력적인 장소를 골랐다

입구로 들어가자 탐방 숲길은 호젓하다는 느낌 외에는 별다른 자극이 없다. 조그마한 길로 안내하는  화살표가 살짝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이다. 탐방을 마치고 온 젊은 여자애들 몇 명이 자신들에게 안내를 해준 중년의 남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드려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진짜 멋진 곳이에요"


전후 사정이야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숲 속에서 무언가 좋았던 점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무 생각 없이 들려오는 대화라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들이 나가자 생덩그렁하다.  이제 혼자만의 곶자왈 탐방에 나설 수 있을 듯싶다.


곶자왈의 가장 큰 매력은 걸음을 옮길수록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무언가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오른쪽 바로 옆의 나무 사이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무와 숲으로 가려진 상태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옆이 도로라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옆의 상황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숲의 차단 효과는 대단했다.


한 발 한 발 들여놓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심연의 장소 깊숙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각오가 새로워진다고 할까. 갑자기 지옥의 묵시록(Aphocalypse Now)으로 잘 알려진 베트남전 영화가 생각이 났다. 마틴 쉰과 마론 브란도의 명연기로 길이 남을 영화이기도 하지만 반전영화라는 원래의 의도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원시적 숲에 의해 변해가는 인간의 감성 묘사하던 내용을 내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영화는 정글의 묘한 원시적 분위기로 인해 강을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서서히 원시적인 감정과 행동 패턴으로 바뀌는 과정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배경은 전쟁이지만 전투가 중심인 흔한 전쟁영화는 아니다.


바위가 마치 쇠똥구리가 굴리는 분비물인 듯 온통 이끼와 풀이 가득 둘러싸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원작은 20세기 초 영국의 소설이다. 암흑의 오지(Heart of Darkness)라는 제목을 지닌 제3세계 문학으로 이름을 드높인 조셉 콘라드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도 삼성당에서 문고판으로 번역이 되어 출간된 적이 있다. 아직도 있는지 그 후 다르게 출판됐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의 원 무대는 서아프리카의 원시밀림이었지만 영화는 이를 베트남전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제주의 한 숲에서 1백여 년 전 영국 작가가 묘사했던 분위기와 느낌을 조금씩 체험해가고 있었다.


물론 원작의 느낌은 원시림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인간 본래의 공포를 느끼며 이를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서 발현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반면 곶자왈은 그런 느낌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발견할 수 있는 원시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있다고 느껴진다.

문명의 흔적 혹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솔직한 인간의 감정을 쳐다볼 수 있게 한다는데 방점이 두어진다.


화순 곶자왈의 초입은 발걸음을 옮긴 지 10여 분도 되지 않아 내가 걷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숲은 숲대로 우거진채 그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발걸음이 닿는 숲길은 분명 사람이 다닌 흔적임에도 길은 물론 주변의 바위 뒤덮인  이끼로  신비함을 자아낸다.

곶자왈의 가장 큰 매력은 걸음을 옮길수록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무언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원시적인 느낌이란 이런 것이리라. 숲이 넝쿨과 나무와 풀로 뒤덮여있으면서도 낯설지 않은 곳. 오래된 과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법한 곳. 이곳이 도로변에 바로 인접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곶자왈은 기온에 관한 한 예외적 현상을 만들어 낸다. 여름에는 어느 곳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숲이 주는 이다.

조그만 무덤이라도 쌓아놓은 듯한 돌무더기 위로 이끼가 잔뜩 낀 모습이 디딤돌처럼 널려있는 곳을 지나다 보니 마치 저 돌들이 살아서 움직이거나 그 안에서 새로운 생물이 알을 깨고 나올 듯하다. 원시적이라는 느낌이 주는 상상력은 언제 생각해봐도 발칙하다. 반문명적이라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발칙하다거나 자유분방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그 상상력이 빈곤하지만 저절로 드는 빈곤함의 상상력이 나쁘지는 않다.


오래된 과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법한 곳. 이곳이 도로변에 바로 인접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끼 낀 돌들을 보고 뚫고 지나갈 수 없을 듯한 숲을 지날 때마다 공교롭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의 정령이 살거나 할 것 같은 숲과 동일선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여기보다 위도가 낮은 일본이라 활엽수림의 느낌이 더 강해서 그러하리라.


한동안 걷고 나니 계속해서 돌을 쌓아 올린 담들이 보인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인공적인 돌담은 의미는 뭐지? 혹시 사람들이 살았던 순수한 흔적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지 친절하게 의미를 설명해준다. 옛적의 목축을 위해 소나 말들을 가두기 위해 사용됐던 담들이란다. 그 기능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러면 그렇겠지 싶다.

길은 길게 뻗치지 않고 숲 속을 빙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로 조금씩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지나다 보니 안내지도가 보인다. 아마도 최종 정착지는 전망대가 될 듯싶다. 전망대를 갔다가 원위치로 돌아오면 되지 싶다.


그 와중에 일제시대 만들어 놓은 진지동굴이 보인다. 일본인들은 참 대단하다. 이 숲 속의 한가운데도 본토 상륙작전 시 미국과 대치하기 위해 굴을 파고 준비하고 있었으니 실지로 원자폭탄으로 인해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수많은 전투의 흔적을 갖게 됐으리라.

멀리서 전망대가 보인다. 곶자왈 숲이라는 사실이 다른 오름처럼 정상이 높거나 힘들게 발걸음을 올려야 하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숲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다려진다.


숲을 빠져나온 길은 발길을 돌길 사이를 돌아 전망대 앞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내가 걸어온 숲들이 보인다.


어느 정도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멀지 않은 거리다. 아! 저 숲들을 뱅둘러서 이곳까지 왔구나. 전망대는 결국 차들이 다니는 길가에서 아주 가깝다. 전망대 아래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진짜로 소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말처럼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숲일 뿐이다. 그 안이 이토록 새로운 원시림의 분위기를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다.


날씨가 청명했으면 뒤편에 보이는 배경이 더욱 멋질 테지만 바다를 볼 수 없는 날씨는 안갯속에서 산방산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산방산은 배경 사진으로 참 좋은 자연물이다.


아래쪽에 차를 세워놓고 처음 들어왔던 입구가 보인다. 거리상으로 5분이면 충분히 직진해서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혹시나 싶어 돌아왔던 길을 되돌아 나선다. 그 길 역시 멀리 않아 가운데로 빨리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내가 걸어왔던 숲의 모습이다. 저 안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품고 있다.

산방산을 뒤로하고 들어왔던 길로 나가는데 어린 송아지 세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아직 내가 그 녀석들의 한가로운 산책을 방해하는 것이리라. 녀석들이 두려운지 내가 자신들에게 가까워지자 후다닥 뛰어 도망친다. 하필이면 도망친 자리가 내가 계속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결국 막판까지 몰리던 녀석들은 약간의 비탈진 길로 도망친다.


'나는 너희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속으로야 외쳐대고 있었지만 녀석들이 알리가 만무하다.


아 ! 저 숲들을 뱅둘러서 이곳까지 왔구나. 전망대는 결국 차들이 다니는 길가에서 아주 가깝다


곧바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옆으로 돌아가는 표시판이 있는 길로 통했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한 바퀴가 원시의 격정 속을 돌고 나온 느낌이다.


한 시간여의 길지 않은 걸음인데 마음은 이미 1백 년을 넘나 들었고 거리도 베트남과 서부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그 같은 힘을 제주만이 줄 수 있는 곶자왈은 품고 있다.


나는 아직 다른 곳을 가야 할 만큼 힘이 넘쳐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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