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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14. 2017

제주 동쪽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_지미오름

제주 동쪽 바다를 이보다 더 잘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지미오름에 오르는 일은 어쩌면 더 이상 새로울 수 없는 제주의 당연한 현상이다. 올레길의 21코스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지만 일출의 명소로 이곳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출봉을 오르지만 일출봉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일은 일출봉에 올라야 아는 것이 아니다. 


에펠탑에 올라서 보는 파리도 아름답겠지만 에펠탑이 포함되어 있는 파리의 풍경이 더 의미를 가치는 이치와 같다. 일출봉도 마찬가지다. 일출봉에 올라서 보는 제주 동쪽 바다와 우도가 멋진 것이 아니라 우도와 일출봉이 있는 제주의 동쪽과 종달리의 넓은 평지를 함께 봐야 제주 동쪽 끝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 가치를 알게 해주는 곳이 지미봉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출봉을 오르지만 일출봉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일은 일출봉에 올라야 아는 것이 아니다

용눈이오름에서도 일출봉을 볼 수 있고 다랑쉬오름에서도 볼 수 있는 일출봉과 동쪽 바다가 왜 지미봉에서 더 가치가 있는가는 올라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터이다. 코앞에 떡 펼쳐진 그 풍경을...


"표고 166m 비고 160m쯤 되는 가파르게 경사진 북향으로 말굽진 분화구가 있는 오름... 이 곳에 서면 성산일출봉, 우도, 식산봉 등의 아름다운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설명 그대로 가파르게 경사진 등반로를 가지고 있다. 야자매트가 쉴 틈 없이 정상을 향해 내지르다 보면 언제쯤 뒤를 돌아봐야 하나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 초조함은 등 뒤로 펼쳐질 동쪽 바다와 일출봉 그리고 종달리의 넓은 밭이 들어올 풍경을 익히 알고 있는 터 그 풍광이 오늘은 어떻게 비칠지 기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목 내내 관심을 등 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가에 피어난 각종 꽃들에 애꿎은 핸드폰 카메라만 들이댄다. 꽃이 이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풍경에 대한 관심을 이겨낼 만큼 온 정성을 쏟기에는 아직은 부족하다. 

곧 피어나게 될 길거리의 수국이라면 모를까...

정상에 닿기 전 등을 돌렸다.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가 지옥에서 잘 따라오는지 살펴보기 위해 등을 돌려 죽어버린 아내를 찾아오는 데는 실패했지만 내가 등을 돌린 대가는 탄성 이외에는 더 이상 줄 것이 없다. 음유시인인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영원히 떠나보내 슬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날 좋은 지미봉은 공교롭게도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와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오 맑은 태양이 나의 가슴에 안기며

추억이 쌓은 푸른 바다로 떠나요

눈부신 흰 파도 꿈을 꾸는 이 모래빛

그대와 둘만의 축제의 노래를 

이 밤이 새도록, 아침이 밝아오도록

그대가 들려주는 정열의 사랑 노래를

오 솔레미오 영원한 내 사랑


노래의 일부분이지만 어울리는 가사라고 믿기로 했다.


정상에서 보는 동쪽 제주는 환상이라는 말 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 풍광을 꼭 기억하고 싶다면 지미봉을 와야 한다. 푸르름이야 좋은 날 바다를 바라보면 어디서나 감동이지만 20분만 투자하면 일출봉과 우도와 설문대할망이 빨래를 했다는 성산 앞바다의 맑은 물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알찬 기회가 지미봉 정상에서 기다린다.

날 좋은 지미봉은 공교롭게도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와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지미봉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내 건강이 이렇게 안 좋아졌나 하면서 숨을 헐떡이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아마도 조금 더 일찍 멋진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무리해서 속도를 냈던 모양이다. 아직도 어리석기는 매 한 가지다.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철들기 전에 이 같은 경치야 많이 보면 볼수록 좋은 일이다. 


사실 일출봉과 우도 그리고 푸르른 바다만 보인다면  지미봉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보는 경치와 큰 차별을 느낄 수 없다. 그 느낌의 화룡점정은 섬과 바다와 함께 펼쳐진 종달리 앞의 밭이 보여주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모양과 색감이라 할 수 있다.

그 느낌의 화룡점정은 섬과 바다와 함께 펼쳐진 종달리 앞의 밭이 보여주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모양과 색감이라 할 수 있다

종달리의 밭이 보여주는 색색의 다양함과 바다와의 대비, 그리고 여행에 대한 갈구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점점 사랑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동행이 있어 좋기도 하고 혼자와도 전혀 해롭지 않은 동쪽의 지미봉은 올레길 21코스에 있어 끝이 아니라 동쪽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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