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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12. 2016

덥다 더워!... 그래도 제주 여름바다는 아름답다

구좌읍 세화 바닷가를 바라보는 마음

덥다 덥다 해도 올해처럼 더운 계절을 지낸 기억이 별로 없다. 순간적인 더위야 여름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무더위가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해질녘의 세화바닷가


봄에 올여름은 지독히도 더울 것이라는 기상 예측을 귓등으로 듣고 말았는데 그 예측이 너무도 밉게 들어맞고 말았다.


씻고 사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에 요즘처럼 자주 씻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그 모양조차 낯설다. 날씨만이 아니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여 가고 있는 전력사용량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여전히 낯선 일이다. 


주말을 맞아 저녁 무렵 세화 바닷가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볕이 채 가시기 전이라 바다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락이고 있다. 


튜브에 매달려 마냥 신이난 아이들.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셀카를 찍고 있는 젊은 아가씨들, 나 자신은 소중하다며 굳굳이 혼자서 셀카봉을 누르는 고독의 화신들,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바닷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젊은 아줌마들, 멀리서 멋지 버터플라이를 해가며 여름 바다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건장한 남성 등  멀리 해안가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바다와 그 안에 첨벙 뛰어드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대단히 큰 일이다. 


내가 깔아놓은 자리 곁을 어린 꼬마 아가씨들이 연신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그 덕에 모래가 몸과 자리 위로 튀고 있지만 이를 탓하며 아이를 혼낼 수도 없는 노릇... 속으로 나마 그들이 쌓아놓은 모래성이 밑물에 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선에서 아이들에 대한 귀찮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도 보기에 좋다.


"기백이(아들놈의 이름)가 자식을 낳으면 그때 바닷가에서 데리고 놀면 좋겠다."

벌써 손주 봐줄 생각을 하며 바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라며 아내가 너스레를 떤다. 


세화 바닷가는 중간에 썰물이 되면서 중간에 물에 잠기지 않은 낮은 사구가  멀리 퍼져있다. 뒤로는 옆을 돌아 들어온 바닷물이 무릎 정도의 높이로 찰랑이고 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끝까지 버텨보자"


해가 져가는 순간과 발맞추며 바닷물이 조금씩 밑물로 바뀐다. 바다의 끝자락과 펴놓은 자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어느덧 속으로 되뇌었던 여자 꼬맹이들의 모래성이 조금씩 밑물에 밀려 형채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다와 우리와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고 돗자리를 걷는다. 바다에 나가 놀던 아이들이 하나씩 부모들의 외침에 안타까운 시간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태양은 힘겨운 열기를 내뿜으며 붉게  상기된 모습으로하루의 끝이 다가오는 모습을 각인시키려 한다. 노을이다. 어쩜 저렇게 새빨갛게 마지막인양 불태울까. 내일이면 어김없이 더 강열하게 타오를 텐데.


끝까지 앉아 자리를 사수하는 사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feel so good이 아무리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려도 해가 지고 물이 차는데야 별수가 없다. 뒤돌아보니 이미 바닷가 바위까지 물이 가득이다. 순간 어찌 해안까지 걷나. 무작정 걷다 보니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물이 찬다. 자칫하면 조난이라도 당할 기세다. 바지가 다 젖었다. 귀찮은 일이지만 충분히 무시할 만하다.


바다가 무더위에 맞추며 색깔을 변화시키는 순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더위를 먹은 탓인지 바다의 색깔이 평소의 짙은 파랑에서 한껏 힘을 뺀 듯 맑은 기운을 파란색에 물들였다. 옥색 바다와는 달리 맑은 수채화 색이다. 이 동네의 색은 오랜만이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평상시에 보던 세화 바다와 색이 다르다. 아마도 겨울바다와 바람이 강한 바다색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떨어지는 해는 멀리 행원 지구의 풍력발전기 너머로 천천히 제 몸을 숨긴다. 풍력발전기가 태양의 힘으로 돌아가는 느낌마저 준다. 영... 말이 안 된다. 

여름 제주는 더워도 너무 덮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이 그 더위를 능가하고 남음이 있다

무덤덤한 여름 바다에서 남국의 정열을 느낀다. 그 정열이 남해안 동해안과 달리 사람들에게 제주를 각인시키는 힘 이리라. 


매일 보는 바다여도 이 무더위에 굳건히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태양의 기억을 담는 그릇 역할을 세화 바다는 오늘도 톡톡히 해냈다. 저녁에는 새로운 느낌을 주리니 그때까지는 아스라한 내 인생의 한 구석을 붉게 물들이고 하루를 덮는다.


여름 제주는 더워도 너무 덮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이 그 더위를 능가하고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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