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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04. 2016

흙과 감자

감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아이를 키우면서 배운 동요인 '감자씨'가 생각난다.


감자씨


감자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 날 저물어 달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박골에

달빛이 내려와서

입맞혀주고있네  


이원수 님의 글에 백창우 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아이의 어린 시절 너무나 자주 틀어주던 때문인지 저절로 입에서 흥얼거리게 된 노래였다. 감자는 그렇게 동심과 함께 존재한다.


또 다른 한 가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대표적 상품은 물론 햄버거지만 감자튀김이 없는 햄버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운하다. 


감자는 일상에서 아주 가깝지만 내게는 현실 속의 완제품이나 낭만의 대상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 감자가 땅속에 묻혀 있으리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어떻게 캐내고 어떤 모양으로 출시되는지는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런 감자와 흙의 연결고리를 지난주 일요일 처음 경험했할 기회를 가졌다.


평대리의 지인과 함께 마을 관련 회의를 하던 중 일요일에 감자 수확이 있으니 감자 캐러 오라는 제안과 주변 모든 사람들의 동조로 졸지에 하루 노동이 예약됐다. 아침 7시에 평대초등학교 입구까지 나오란다. 6시에 집에서 나서야 했다. 나만의 노동이 다소 억울했는지 덥석 함께 사는 후배를 끌어들이는 무모함도 저지르고 말았다. 뒤늦게 괜히 끌어들였나 하는 미안함도 함께 동반하면서. 


도시에서 자란 인간들에게 이 같은 경험은 노동의 신성함 운운하는 것을 떠나 얼마나 내 육체가 노동과 괴리된 채 살아왔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한마디로 뭐 빠지게 힘들다.' 

감자가 땅속에 묻혀 있으리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어떻게 캐내고 어떤 모양으로 출시되는지는 관심 밖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는 상황에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작업이 끝난 후 한 다발의 감자를 받아왔지만 그 감자를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기분 역시 뿌듯하다. 마치 내가 농사를 지은 듯한 느낌이랄까.

통상 오전 일찍 시작하는 노가다(막일)는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낯선 시간이다.


9시 업무를 시작해 한번만 집중을 하면 점심시간이 된다. 여기서는 다르다. 한참을 열심히 일했는데 시간은 아직 오전의 초입이다. 아직 9시가 되지도 않았다. 11시쯤 됐으려나 싶은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게 아닐까. 지친 몸을 이끌고 먹는 새참 먹는 시간조차 공교롭게도 9시가 조금 넘어섰을 뿐이다. 


새참 이후 한낮이 가까워 오자 몸이 이상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서너 시간을 계속해서 노동을 해보지 않은 몸인지라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서서히 생각지 않았던 고통이 느껴진다.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고갈됐기 때문인가. 서서히 일의 효율이 떨어졌다는 것을 나 자신이 충분히 알겠다.


이제 몸이 한계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공교롭게도 어찌 알았는지 점심시간이다. 


탁월한 타이밍이다. 어찌 몸의 변화를 알았을까. 지금쯤 배가 고프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점심이 도착했다.  대학교 초년 시절 농촌활동을 하러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전형적인 농군처럼 보이는 이분...학교 선배이기도 한 분이다. 결코 농사꾼은 아닌데 감자 담는 속도를 보면 진짜 빠르다


이후 모내기를 가거나 밭이나 논에서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시간에 맞춰 일을 했던 기억이 있었던가. 아마도 일당을 받으려면 이렇게 일을 하면 되겠다 싶을 만큼 오늘과는 차이가 있다. 


점심시간은 사실 무지하게 짧은 느낌이다. 한잔의 막걸리와 그늘에서의 쉼이 있는 순간,  무엇보다 몸을 그늘에 눕혀놓고 하늘을 우러르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어느덧 일할 시간이다.

모든 산업이 농업에 맞춰져 있지 않은 시절에 살아서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몸으로 하는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약간의 쉼이 있는 시간에도 평생 잔머리를 굴리던 버릇은 멈추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할망들이 슬슬 밭으로 향한다. 할머니들에게 결코 게으름이란 단어가 없는 모양이다. 평생을 힘겹게 열심히 일한 모습이 몸에 배어있다. 쭈그리고 앉아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그들의 허리를 굽게 만들고 크지도 않은 몸이 더 오그라들어서인지 참 아담하고 왜소해 보인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강인하다. 


살면서 그런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힘겨운 생활과 함께 내 스스로의 교만함에 대해 자꾸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 다시 일할 시간이다.


2시가 넘어가자 몸은 서서히 지쳐가고 일의 속도는 급격히 줄어든다. 역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오수를 즐겨야 하지 밭에 가서 일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몸만 축나지 일의 효율성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 어떻게든 시간이 가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뙤약볕은 역시 어렵다.


그 시간을 넘기기가 무섭게 몸이 축난다 싶은 시점에 다행히 다섯 번째 밭의 감자 수확을 마쳤다. 와~ 게으름 피우지 않은 채 사람들이 모이니 일이 일찍 끝난다.

한낮에는 오수를 즐길 일이 밭에 가서 일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작업반장이신 밭주인과 안주인이 사람들을 용도별로 나눈다.


"여기 여기 삼촌은 남읍서.컨테이너 짜는 일을 해주시고 나머지는 차에 타고 다른 밭으러 가게마심"


마지막 500여 평 규모의 밭이 하나 남았다. 오전부터 일을 마친 밭이 2천 평 조금 부족하다 하니 500평 정도야 어렵지 않게 끝나리라 싶다. 


동떨어진 밭이라 트럭의 뒤편에 퍼질러 앉아 이동한다. 시골에서 일꾼이 이동하는 포즈다. 차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옷 속 깊숙이 스민다. 시원하다. 작업용 장갑을 벗자 손톱 속까지 흙이 잔뜩 끼어있다. 장갑도 소용이 없다. 


도착한 밭에서 힘 있게 새시작을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보자. 그런데 어찌 된 게 마지막 밭은 도대체 일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몸도 지쳐 효율도 떨어졌지만 결정적으로 함께 일하는 인원이 줄었다. 탁월한 속도를 보이는 할망의 반이 선별작업을 하고 있고 남자들도 컨테이너 짜는 작업에 동원되고 이리저리 추가 작업에 사람들이 투여되어 절대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줄었다. 몸은 지치고 일하는 사람이 줄어든 상황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다. 별로 넓다고 생각지 않은 밭에서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때 몸의 리듬에 맞춰 간식으로 수박이 나왔다. 새참은 어떤 이유로든 모든 것이 다 맛있다. 더구나 뙤약볕 아래의 밭에서 지친 몸을 식히는 시원한 수박은 그 맛을 표현하기 힘들 만큼 달콤하다.


이제는 더 이상 힘이 들어 될 때로 되라는 마음이 앞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몸이 의지를 따라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때 원군이 도착했다. 선별작업을 마친 사람들이 나머지 밭에 투여됐다. 언제 속도가 나지 않았냐 싶게 휘리릭 작업이 속도를 낸다. 쪽수의 힘이란 위대하다. 


막상 5시가 되기도 전에 일이 끝나고 보니 어이없게도 아쉽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지 이 감정은? 그새 밭일에 적응이 됐나?

특랙터와 수확한 감자를 담기 위한 콘테이너의 모습

이를 알아챈 걸까 밭주인이 컨테이너 싣는 것을 도와달라며 나를 차출한다. 

"내가 힘을 쓸 것처럼 보이나? 난 연약한 남잔데..."


보기에는 돌쇠처럼 보여도 힘쓰는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점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비틀거릴 수는 없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선별한 감자들도 컨테이너 별로 구분해서 트럭에 나누어 실었다. 공교롭게도 긴 시간 수확을 마쳤지만 그 결과는 사실 허무하리만치 별로다. 친환경농업을 한 때문인지 감자의 수확량이 눈에 띄게 적다. 더구나 상품성이 있는 사이즈인 큰 특대 사이즈와 작은 감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중간한 중간 사이즈가 대부분인데 상품성이 없단다. 중간 사이즈는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힘들게 일을 해놓고도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맘이 너무 아프다. 아무리 흉작인 상황이라 그렇다지만 인건비에 노동력을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원래 밭에서 나는 농사로는 돈이 안돼. 우리는 하우스에서 키운 거로 돈을 벌고 이건 그냥 하는 거야"

슬며시 물어본 내 질문에 주인이 답을 한다.


그리고는 너스레를 떠는 이 선수의 뒷말이 더 가관이다.


"시골에서는 무엇이든 농사를 지어야 사람 구실을 해. 아무리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인간 취급을 받지. 그게 농촌이야"


제주의 농촌이 갖는 노인들의 의식을 아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우야동동 농사를 지어야 마을에서는 사람 취급을 받는단다. 


"그럼 나도 여기 와서 살려면 농사지어야겠네"

"당연하지. 우리 하우스 주변에 1500평 있는데 뭐 심으면 좋을지 생각해봐. 네가 괜찮다고 하면 무조건 심을게. 네가 한번 해봐"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와 갑장인 밭주인은 농담이라도 내가 혹시나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있지 않을까 찔러보는 느낌이다. 이참에 농사나 지을까. 생각해보다 몸이 안 따라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금세 포기해 버린다. 그래도 제주에서는 농촌에서 살고 싶다.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인간 취급을 받지. 그게 농촌이야

이동 중에 트럭 뒤편에 앉아 작업을 정리하면서 참 묘한 생각이 든다. 내가 점점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 그리고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 오늘날 미국의 산업화 노동력의 주 원천과 미국인들의 주류를 형성케 했던 아일랜드의 대기근 등등... 감자와의 연관성이 떠오른다. 피쉬 앤 칩스에 이르기까지.


내가 역사나 상식으로 알게 된 수많은 감자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단 한 번도 감자가 흙과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감자의 리얼한 실체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나는 그저 감자라는 구황식물과 개념적인 의미만 알았을 뿐이다. 그런 감자가 오늘은 흙과 함께 내 삶으로 들어왔다. 손과 옷과 신발에 묻은 흙이 자연스럽고 정겹기까지 하다.


그냥 집에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시간. 사람들과 술 한잔이라도 하고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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