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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18. 2016

거문오름의 숨겨진 길은 왜 숨겨놨을까?

용암길과 골연못길_잔잔한 숲길 이상이 궁금한 용암동굴계의 전설

사실 궁금하기도 하다. 굳이 출입을 통제하면서까지 무엇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검은오름에 대한 기대는 그 궁금증을 풀기위한 방문의 성격이 강하다.


검은 오름을 왜 가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는 간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되면서 그 의미가 더 커졌으니 보전대상이 되는 것도 수긍이 된다. 그런데 오름으로의 감동은 얼마만큼일까.


1년마다 한 번씩 오름 길이 추가로 열린다니 사려니오름과 같은 무언가의 기대를 갖고 시간을 기다렸다

아침 날씨를 보면서 혹시나 비가 오면 못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서둘러 도착한 거문오름 주차장은 이미 만석으로 겨우 차를 세울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비비적거리는 사이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까지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트래킹 코스를 다녀볼 수 있는 기회다.

세계자연유산센터
탐방로 시작점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탐방로를 따라 그냥 걷기 시작했다. 팸플릿을 챙겨 오는 것조차 잊었다. 아차 싶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피하기 위한 서두름이었는데 이 지역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조차 무시하고 말았다. 시작점인 태극길은 나무 데크로 너무나 잘 정돈이 되어 있다. 중간에 정상이라는 표지까지 올라가도 좋은 풍경을 기다리는 조망은 없다. 조금은 상상과 다르다. 정상인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즐거운 트래킹을 생각하며 걷자고 다짐하다.


어디를 가나 조림해 놓은 삼나무 숲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졌다. 많이들도 심었다. 제주 어딜 가도 곳곳이 삼나무 숲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많은 조림을 해야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숲이 형성된 것은 좋은 일이겠거니 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정상이라는 표지까지 올라가도 좋은 풍경을 기다리는 조망은 없다. 정상인 게 더 이상할 정도다

나무데크를 따라 걷는데 앞에 가는 일행이 갈 길을 막는다. 수다를 떠는 것은 좋은데 남녀가 섞인 5명의 인원이 천천히 걸으며 뒷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도무지 수다를 떨며 걷느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데크에서 두 사람 몫의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힐링하러 온 숲길에서 짜증이 먼저 다가온다.  maria callas의 소프라노 음악을 들으며 숲의 기운을 북돋으려 애쓴다.


이윽고 나무데크 코스가 끝났다. 지금부터는 거무오름의 내부를 트래킹하거나 아니면 새로 열린 길을 가는 선택이다. 안내원이 거문오름 트래킹 코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1년 만에 열리는 용암길과 골연못길이 어느 방향인지를 묻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내 앞을 가로막았던 일행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다. 

아무런 조망도 할 수 없는 정상에는 정상이라는 푯말만 있을 뿐이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용암길로 들어서니 다소 조용해졌다. 아뿔싸! 이 앞에도 한 무리의 단체가 걷고 있다. 곧 뒤꽁무니와 내 걸음이 부딪힌다. 순간 내가 욕심을 내고 있음을 알겠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으니 그들 나름의 시간을 즐기도록 여유를 줘야 하는데 나만의 호젓함만을 기대하고 있다. 욕심이다. 숲의 세세한 현상에 주목을 못하고 있다. 풀과 나무 바위와 이끼가 어떻게 어우러져가며 공존하고 있는지 자연의 모습에 집중해야 한다. 

1년 만에 열리는 용암길과 골연못길이 어느 방향인지를 묻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내 앞을 가로막았던 일행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고 나니 한결 속도도 줄고 걸음걸이가 편해졌다. 이러자고 온 걸음인데 한순간 내 마음을 잃어버렸다. 별거 아닌 일에도 흥분하는 버릇이 아직도 남았는지 가끔은 자율신경처럼 흥분은 혼자서 움직인다.


용암길에서 시작된 숲은 깊은 정도는 아니나 적절한 원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있는 법. 이 숲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걷는 내내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왜 이길을 1년내내 출입을 금지시킬까?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일까?

어쩌면 원래의 목적 그대로 와봤다는 도장을 찍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풀과 나무 바위와 이끼 그 사이에 서로가 어떻게 어우러져가며 공존하고 있는지 자연의 모습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냥 하루 종일 걷기 위해 나왔으면 신선한 공기에 푸르름으로 가득한 숲길을 걸으며 힐링하면 될 일인데 너무 생각이 많다.  사실 오름 자체만으로는 거문오름의 특이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하에 자리 잡은 용암동굴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겠으나 그 위로 보이는 식생에 관한 한 여타 오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무지에 돈을 던지라! 


내가 걷는 이 길들의 밑바닥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동굴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있으리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나는 숲의 원시성을 좋아한다. 초록이 온 천지를 뒤덮고 나무가 울창하고 그곳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곳. 그래도 여전히 나무와 여타 생물들이 뒤엉켜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성하고 조율해가며 발전해 나가고 있는 곳. 인간의 흔적은 있으되 인간이 더이상 없는 곳. 그 느낌을 제주의 숲에서 본다. 특히나 살아있는 숲에는 그 느낌을 온전히 전해준다.


거문오름도 그 면에서 특히 1년간 닫혀있는 길을 가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 마음에 가까워진다. 음...숲은 숲이지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는 내가 이상한 일이다.

내가 걷는 이 길들의 밑바닥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동굴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있으리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아마 이곳은 용암동굴계가 아니었으면 여타의 다른 곳들처럼 일찌감치 주택지로 둔갑했을 것이다. 번영로에서 멀지 않은 데다가 송당 등과 연결되는 길이 바로 이어져 있어 주택지로서는 꽤나 괜찮아 보이는 장소다. 실제로 이곳을 벗어나면 많은 곳이 이미 주택단지로 채워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중간에 발견된 숲 가마터.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의 생동감이 점점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인간의 손을 닿지 않아서 인지 숲은 자신들만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려는 듯 평상시에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간간히 내비친다.


그럴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 보니만 다른 모습을 담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사람이 느끼는 것을 사진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한참을 걷는 중 앞의 일행이 깔깔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길은 내리막길인데 위의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온 넝쿨이 아래로 내려져 있어 타잔놀이 하기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아줌마들이 차례대로 매달려 보며 사진을 찍기에 몰입해 있다. 즐거운 모습이다.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사진 찍기가 다 끝나기를 기다린다. 더불어 주변의 숲의 생김새에 좀 더 깊게 몰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시 쳐다 보니 숨이 참 깊게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드디어 길은 숲을 벗어나 약간의 평지를 보여준다. 주변의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특별한 의미도 없는 장소일 테지만 숲 속에 갇혀있다가 탁 트인 곳에 나오면 마음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걷다 보면 다시 숲으로 이어지고 앞에 오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무슨 오름일까. 이곳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지라 생각나는 이름도 없다. 우진제비오름은 이곳과 방향이 다르니 아닌듯하고 모르겠다. 나중에야 지도를 확인해본 결과 웃밤오름이라는 곳이다. 찾아갈 수 있는 리스트에 명기된 적이 없는 오름이다. 다음에 다시 자세히 찾아봐야겠다.

갑자기 앞에 나타난 오름. 아마도 웃밤오름일 게다.

이윽과 용암동굴계에서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벵뒤굴에 도착했다. 길도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은 골연못길이고 오른쪽은 동굴 카페인 다희연으로 나가는 길이다. 생각해볼 일도 없이 골연못길로 방향을 틀었다. 벵뒤굴 입구는 철창으로 가려져 있어 사진을 찍거나 바라볼 일이 없다. 다만 설명을 읽을 뿐이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설명으로 학술적 궁금증은 해소가 됐다.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다양한 용암동굴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긴 장소를 흘러가며 용암이 만들어냈을 이야기는 상상이 더 설득력이 가는 내용이다. 실제로 확인해서 그 흔적을 오롯이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 4.5km의 동굴이며 작은 동굴들이 여러 갈래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형 동굴.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가 평평한 대지위를 흐르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합쳐지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


작은 동굴들인데 이 굴들의 존재를 어찌 알았을까. 파보거나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터인데. 갑자기 그 사실이 궁금해졌다.

곳곳에서 보게 되는 삼나무숲. 제주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중간에 연못을 만난다. 벵듸라고 해야 하겠지. 여전히 낯설고 익숙지 않은 단어다. 그러나 벵뒤라는 말이 제주에서는 맞는 말이다. 넓은 들판이라는 뜻의 벵듸는 제주 곳곳에 남아있다. 숲 속에 숨어있는 잔잔한 연못은 살며시 엿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호수가 아니고 물이 콸콸 넘치는 계곡이 아님에도 정적인 모습에서 다양한 식생이 자라는 모습은 안정된 삶의 단면과 차분한 침잠의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고요의 시간에 어울리는 모습니다.


이름하여 골연못. 이곳 길의 이름이 골연못길인 것은 순전히 이 연못때문이다. 다른 길의 모든 특징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갑자기 튀어나온 이 연못은 기대하지 않던 설레임을 주기도 한다. 

길은 점점 익숙한 길로 나서고 이윽고 언제 그랬냐 싶게 덜렁 집들이 나타난다. 문뜩 집 한 채가 눈에 띈다. 입구에 xx암이라는 팻말이 서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 내심 부럽기도 하거니와 낯선 풍경이다. 그렇게 거문오름의 트래킹은 갑작스런 끝을 맺었다. 그러고 보니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용암동굴계의 생성과정을 보고 나왔으면 더 좋았으련만 후회가 된다.

커다란 호수가 아니고 물이 콸콸 넘치는 계곡이 아님에도 정적인 모습에서 다양한 식생이 자라는 모습은 안정된 삶의 단면과 차분한 침잠의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다음에는 원래의 거문오름을 트래킹 하러 와야겠다. 분화구 내부를 둘러보는 일부터 먼저 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을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용암동굴계의 전설의 시작은 이름과 트래킹만으로는 만끽하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오름은 오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용암동굴을 걷는 게 아닌 바 잔잔한 숲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오름이 되어 버린다. 출입을 통제하며 숨겨놔야 했던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다. 숨겨진 길의 이면을 파악못한 나의 패배다.


나의 기대가 많았던 것을 탓하는 게 나을 듯싶다. 오히려 다음에는 제대로 된 해설과 함께 천천히 걷는 여유가 거문오름의 이름을 좀 더 깊게 아는 기회가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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