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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5. 2016

습지가 있어 아름다운 선흘곶_동백동산

동백동산의  속살은 어떤 색일까?

거문오름을 방문하고 나니 시간이 아쉽다. 주위에 놓여있는 또 다른 숲을 찾아 나섰다. 동백동산. 선흘곶자왈의 대표적인 숲길이 생각났다. 얼마 전 다녀온 화순곶자왈과의 비교 혹은 다른 숲길과의 간단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길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입구는 의외로 널찍하고 훌륭한 방문자 센터를 가지고 있다. 입구도 명확하게 담까지 처져 있으니 입구와 출구를 잃어버릴 일은 없을 듯싶다.


안내원의 간단한 설명을 뒤로하고 입구로 진입. 모든 숲길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평범한 숲이라는 인상 이외에는 별다른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숲에 진입하기 전 마을의 집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고 마을을 설명하고 있는 전시대가 매우 인상적이다.

방문자 안내센터

동백동산은 다른 숲들과 달리 ~~ 곶자왈이라는 이름 대신에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사실 처음에는 추모공원쯤으로 생각했다. 지역의 공동묘지를 조성한 커다란 공원쯤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름만으로는 그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용만 요약하면 이와 같다. 선흘곶자왈이고 내륙습지가 주요한 특징이라는 것

<선흘곶은 용암이 지표를 흐른 대지위에 용암 언덕들이 생기고 그 깨진 돌무더기의 틈으로 양치류가 풍성하며 난대성 상록수가 울창한 숲이다.... 중략... 1948년 4.3의 광풍으로 주민들이 학살을 당한 슬픈 역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설명서가 2가지가 서있다. 우선은 선흘곶자왈에 대한 설명이고 다음은 동백동산 습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동백동산 습지는 곶자왈 숲 지역에 형성된 내륙습지로... 이 지역은 제주도에서 산림이 아닌 평지에 형성된 난대 상록활엽수림 지역으로는 가장 면적이 광활할 뿐 아니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고 국제적으로도 람사르습지로 등록하여 보호하고 있으니...>

내용만 요약하면 이와 같다. 선흘곶자왈이고 내륙습지가 주요한 특징이라는 것. 


습지에 대한 기대를 갖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내원의 말에 따라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자갈길로 시작된 탐방로는 초입부터 밑바닥에 많은 낙엽을 깔고 있었다. 이윽고는 수많은 낙엽이 돌을 뒤덮으며 길은 여지없이 가을의 숲길을 연상케 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나 뻔한 구르몽의 '낙엽'  한 구절이 생각났다. 왠 한여름 제주의 곶자왈에서 낙엽을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동백동산은 다른 나무나 습지보다는 낙엽이 더 인상적이었다. 저 낙엽이 언제 떨어져 저렇게 쌓여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처음의 예상과는 다른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시몬, 나무 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덥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물론 뒤로도 줄줄이 이어진 시구절이지만 생각지 않던 동백동산의 인상은 곳곳에서 드러난 숲의 인상적인 모습들로 관심을 빼앗기던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잘 멈추지 않았다.

왠 한여름 제주의 곶자왈에서 낙엽을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동백동산은 다른 나무나 습지보다는 낙엽이 더 인상적이었다

길 중간에 만난 약간의 꽃들과 빽빽하고 촘촘하게 자라나는 나무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수 있는 순간들 그리고 곳곳에 살살 조성된 자그마한 습지, 용암 언덕으로 이루어진 돌무더기, 뿌리가 뽑혀 기울어버린 슬픈 나무뿌리의 군상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우선적으로 나의 시선을 이끌었다.

계속해서 곶자왈을 다니다 보면 곶자왈의 특징을 오히려 잊게 된다. 나 스스로 열대우림을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곶자왈과 원시림을 동일시하는 순간 열대우림을 상상하는 연상작용이 일어난다.


그래서 인가. 낙엽이 계속 밟히는 동백동산이 처음에는 낯설다. 화순과 다른 곶자왈의 순간적인 인상으로 인해 특징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더 촘촘하게 잔나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곶자왈의 특징은 어쩌면 다양한 수종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촘촘한 나무들 사이에 들어서면 사실 바깥세상의 이모저모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숲만이 주는 따스함과 함께 숲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동시에 간직한 곳이 곶자왈이다.


동백동산은 오히려 무언가 싸늘함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게 이 숲의 두려움의 정체인가?


반이상을 돌아 나서자 동백동산의 대표 선수 격인 먼물깍이 눈앞에 다가선다. 순간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자연학습을 하러 온 것인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니 할 말도 많으리라 싶다.

숯을 짓는 곳에 지은 움막인 숲막.
동백동산의대표적인 숲의 모습

먼물깍 습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의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의미의 '깍'에서 먼물깍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과거 생활 용수나 가축 음용수로 이용하던 이곳은 물을 잘 통과시키지 않는 넓은 용암대지의 오목한 부분에 밋물이 채워져 만들어진 습지이다.


습지 앞에 쓰인 내용이다.

학문적인 내용을 떠나 이 숲 깊숙이 이같이 멋진 습지가 있으니 일단 고맙고 멋진 일이다. 빽빽한 원시 상록수들이 가득 차 있는 숲을 헤치고 헤매다 이 습지를 만난 사람은 처음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너무나 아름다워 마냥 기뻐했을까? 아님 이 곳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걱정했을까?

이 자연 그대로의 습지가 가장 높은 사람이 살았을 궁궐의 뒤뜰과 같은 운치를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쁜 습지를 보면서 쓸데없는 걱정부터 앞선다. 어느 연못이나 호수를 보면서 이토록 묘한 여운을 간직하기가 쉽지 않은데 먼물깍은 그런 여운을 준다. 얼마 전 진해의 같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해수면 호수의 잔잔함이 월든을 생각나게 했던 순간과는 사뭇 다르다. 먼물깍은 오히려 경복궁이나 덕수궁의 연못 같은 더 인공적인 인상을 준다.  주변에 궁궐이나 멋진 한옥이 들어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자연 그대로의 습지가 가장 높은 사람이 살았을 궁궐의 뒤뜰과 같은 운치를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예부터 가장 중요시한 자연스러운 것이 주는 힘이 아닐까.


잠시 먼물깍의 풍경과 자태를 감상해 볼일이다. 

이곳에 도착한 지 한참이 됐는데도 발을 띠지 못하고 연못 주변만 계속해서 서성이고 있다. 왠지 모르게 이 습지를 떠나기가 싫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계속해서 걸었던 돌로 가득한 숲속길과 달리 문뜩 소담스러운 주변의 아기자기함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요함 속에 한동안은 파묻히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순간 내가 어디를 걷고 있다거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할 이유도 없이 그저 습지를 뺑뺑 돌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똑같은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 나 자신이 어린이와 같다.


참 좋은 자산을 동백동산과 선흘리는 가지고 있다.


이후 몇 개의 더 자그마한 습지를 만났지만 먼물깍만큼 크지도 혹은 인공적이거나 정적인 정서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런 경우가 어디 흔하기야 하랴.


도심 내 궁궐을 관광이라도 한 듯 이후 발걸음은 서서히 피곤함을 발바닥에 가득 채우면서도 마음은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쩌면 동백동산 처음의 숲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좀 더 촉촉한 숲을 보고 싶었다. 습지가 있는 곶자왈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또 하나의 화순곶자왈과 같은 습기 가득 차고 촉촉한 느낌의 숲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흘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른 낙엽이 온 숲을 가득 덮었고 나무들도 매우 빽빽한 느낌을 채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했볕은 숲 안에까지 충분히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숲이 순간순간 어둡고 빽빽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느낌도 주고 있었지만 대체로 동백동산의 숲은 습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메마른  느낌을 주고 있다. 아직도 차이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른 곶자왈과의 차이는 무얼까?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나는 동백동산과 다른 숲과의 차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우선 낙엽이 다른 곳에 비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북쪽 육지의 숲 속을 연상케 했다. 그로 인해 나무 밑에 자라나는 풀들이 다른 곳에 비해 적었다.


다른 곶자왈의 경우 양치식물이 가득 차거나 넝쿨과 풀들이 뒤엉켜 있어 나무 밑의 식생이 새롭고 다른 세계임을 느끼게 해주는데 비해 동백동산은 잔 나무들과 넝쿨식물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던 때문인가 나무 아래쪽 풀들의 식생이 상대적으로 발달이 덜 된 느낌이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순간적으로 느낀 느낌일 뿐이다. 그래도 곶자왈은 곶자왈이 아니던가 상대적인 느낌이지 절대적으로나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빽빽한 숲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나 역시 제주의 숲에 익숙해져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바로 동백동산의 숲의 나무들이 더 치밀해 보이는데 여전히 허전한 무엇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각 나무들을 둘러싼 넝쿨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빽빽한 숲임에도 불구하고 틈새가 보이는 느낌이 든 것이다. 다른 숲은 경우 나무를 타고 올라간 넝쿨의 파란 잎새들이 나무의 밀도가 적더라도 숲을 더 가득 찬 것으로 느끼도록 착시효과를 주고 있었다.


낙엽과 나무 밑 식생이 가득 차 있지 않은 느낌, 넝쿨의 부족 등이 합쳐져서 내가 느끼는 휑뎅그레함이 나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동백동산 당사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흘곶자왈이 썰렁한 느낌을 준다고?


나 역시 제주의 숲에 익숙해져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숲을 한 바퀴 다 돌 무렵 옆으로 빠져 들어가는 돌담길이 보인다. 흙통연못이라는 팻말도 시선을 잡는다. 먼물깍도 보았으니 이곳 연못 정도도 봐주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으로 들어가는데 주변이 어수선하고 쾌적하지 못하다. 연못은 그야말로 녹차라테의 극성을 보이는 모습. 연못에 떠있는 위태로운 돌 2개와 그 위에 아슬하게 자라고 있는 풀이 눈길을 잡는다. 혹시라도 이곳에 빠지는 날이면 죽겠다 싶다. 마음이 착잡하다. 인공못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버려진 못 주변의 황폐한 모습들이 사람들의 무심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어찌해야 하지 않을까...

녹조가 끼지만 않았어도 괜찮은 연못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통연못에서 빠져 나오는 길

그 길을 끝으로 제자리로 돌아왔고 동백동산은 의문점과 다시 오고픈 자연 습지의 여운을 남긴 채 나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다음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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