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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ug 17. 2016

깊은 계곡의 강한 자극... 한라산 둘레길2_천아숲길

천아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게 해 주는 곳

금세 끝날 듯하던 돌오름길의 끝도 쉽지 않았지만 돌오름을 오르면서 다녀온 30분 정도의 시간이 계속 걷는 트레킹에는 조금이지만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호젓한 한라산 숲 속을 걷고자 하는 곳에서 지프차를 만나는 기분은 별로다. 괜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오름을 내려오고는 장비를 가다듬듯 의자에 앉아 쉼을 맞는다. 신발끈을 다시 매고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심기일전의 자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천아숲길이다. 내 앞에서 같이 쉬고 있더 노인네들이 나보다 먼저 걸음을 띠기 시작했는데 이분들의 걸음이 여간 빠르지 않다. 따라잡을 수가 없다. 따라잡은들 별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너무 잘 걸어가니 내심 마음이 꽁하다.


길은 임도라 그런지 널찍한 숲길의 느낌이 강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뒤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오래된 테라칸 짚이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내 앞을 가로질러 가버린다. 호젓한 한라산 숲 속을 걷고자 하는 곳에서 지프차를 만나는 기분은 별로다. 괜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높이까지 오른 조릿대와 덩쿨에 뒤덮힌 나무들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일단 천아숲길에 대한 설명
돌오름에서 천아수원지까지 10.9km의 구간으로 돌오름, 한대오름, 노로오름, 천아오름 등이 분포하고 있다.노로오름 인근 한라산 중턱 해발 1000 고지 일대에 검뱅듸, 오작지왓이라고 불리는 '숨은물 뱅듸'가 있고 무수천으로 흘러가는 수자원의 보고인 광령천이 내려오는 곳에 천아수원지가 있으며 인근에 어승생수원지가 있다.


혹시나 싶어 숲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만 이 지역이 영실 부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1100도로까지 나가는 길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표고농장이 있는 게 결정적인 이유겠거니 싶다.


오르막 임도가 나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흥이 떨어진다. 산을 오르듯 구비구비 오르는데 자동차도 족히 지날 수 있는 길이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추는 8월의 뙤약볕은 언제라도 나의 체력에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혹시라도 나무 그늘이 없는 곳에 도착하면 햇볕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지 인정사정없다. 등과 머리에서 땀이 주르륵, 주르륵이다.

드디어 다양한 임도와 어정쩡한 숲을 지나고 나니 한라산에서 흔히 나타나는 삼나무 숲이 나타난다. 이곳은 낯이 익다. 지난번 삼형제오름을 지나 길을 헤매 일 때 만났던 삼나무 숲이다. 그 당시 이 길을 따라 천아숲길을 걸었더라면 2시간 이상은 세이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암튼 이곳의 삼나무 숲은 멋진 느낌을 주기보다는 이상하게 잘라진 나무들이 많아 숲이 상쾌한 기분이 덜 하다. 다리의 피곤함이 점점 심해지는데 쉴만한 곳이 없다. 옆으로 개천의 흔적이 있는 때문인지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삼나무 숲에서 상쾌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한편은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몸에서는 피곤의 강도가 더 심해진다. 앉아 쉬고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아야 한다. 삼나무 숲이 끝날 때까지 가보기로 하는데 앞에 앉을 만한 나무 둥지가 보인다.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벗겨난 때문인지 빤질빤질한 게 앉기에 좋다. 얼마만인가. 배고프다. 김밤을 허겁지겁 먹는다.

삼나무 숲을 지나는데 많이 보던 풍경이다. 갑자기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한다.

'그래 여기는 노로오름에서 내려오면 둘레길과 만났던 장소다'

이제부터는 아는 길이다. 한참을 내려가면 1100 고지와 붉은오름으로 가는 길이 나올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니 한라산 둘레길 표지판만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


길을 걸으며 다양한 숲의 모습에 집중하려 한다. 바닥에 피어나는 작은 식물과 베어져 이끼가 가득한 그루터기와 돌, 그러나 무엇보다 숲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숲 속을 비추는 강렬한 태양빛으로 인한 현란한 초록 향연이다. 연두에서 짙은 초록에 이르기까지 빛에 의해 녹색은 현란한 춤을 춘다. 빛과 그림자의 조합을 통해.

이후로는 길이 너무 좋다. 임도가 이어지면서 도저히 숲길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널따란 길을 걷는다. 바닥에는 차들을 위한 잔돌들이 잔뜩 깔려있거나 콘크리트 위를 걸어야만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니 한라산 둘레길 표지판만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

길을 걸으며 가장 큰 아쉬움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숨은 물뱅듸'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가는 길도 알려주는 사람들도 없다. 언젠가는 숲 속에 숨겨진 습지를 찾아 보리라.


천아숲길이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한라산 둘레길에 대한 기대는 막판에 실망으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이 왔다. 앞으로 2km 앞이면 목적지다. 길은 갑자기 깊은 계곡길로 바뀐다. 이상하다. 그 넓은 임도는 온데간데없고 깊은 계곡길과 돌길 그리고 원시의 숲이 이어진다.


그제야 알았다. 왜 이 길을 천아 숲길이라고 명명했는지. 천아 숲길의 하이라이트는 이곳 천아수원지 부근이라는 사실을.. 커다란 바위들이 가득 찬 계곡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면서 천아 숲의 깊은 면모를 보게 된다.

계곡속에서 발견한 이끼 가득한 돌과 바위들. 색의 화려함이 장관이다.

등산 오는 남녀가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그들이 내려가는 줄 알았는데 올라오는 중이다. 이제 막 트래킹을 시작한 모양이다.


언제 먼길을 걸으려 하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살짝 옆을 보는데 계속 안에 잔뜩 쌓인 바위들이 이끼로 가득 덮인 모습이 보인다. 깜짝 놀랐다.  장관이다. 저렇게 많은 바위가 이끼에 덮여 모여 있으니 두려움이 앞선다. 영화 아바타의 숲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너무 짙은 초록이 가득 모여있으면 원시숲과 공포가 연상된다. 이번에는 멀리 나무 한그루가 독야청청 서있다. 예상치도 않은 풍광이다. 갑자기 천아숲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각을 바꾸고 나자 숲의 풍성함과 계곡의 깊음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에 이곳을 별도로 와볼 작정이다.

끝이 보인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는 순간 모든 걸음을 멈추고 표지판 앞에서 섰다. 누군가 낫을 꽂아 놓았다. 엽기적인 장면이다.


하루의 걸음을 마치고 차를 세워놓은 곳까지 걷는다. 아직도 1km는 더 걸어야 할 판이다. 아스팔트를 투덜투덜 걷는데 멀리 차가 보인다. 천아숲길의 길이 그렇게 끝났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싶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는 순간 모든 걸음을 멈추고 표지판 앞에서 섰다. 누군가 낫을 꽂아 놓았다

차를 타고 오는데 자꾸 다른 곳을 더 가고 싶어 진다.  돌아오는 길 관음사라는 팻말이 눈에 밟힌다. 갑자기 차의 핸들을 돌렸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끝>

천아숲길 주차장
한참을 걸어 내려온 계곡이 멀리 어둠에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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